무섭고 고마운
현관문에 저승사자가 서 있다.
큰 키는 천정까지 닿아있고 거대한 몸집은 도포를 입어 그런지 현관문 전체를 다 가리고 있었다.
'난 4대째 기독교인인데 네가 왜 왔어?' 하고 물었지만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저승이가 데려가든 천사가 데려가든
아직까지 그다지 한 일이 없는 것 같은데 벌써 데려가시나?
사람이 죽기 직전에 이런 일이 일어나는가?
순식간에 눈앞에 지난 세월이 수채화로 펼쳐졌다.
10대는 시골의 여름밤,
창밖에서 들려오던 풀벌레 소리, 찌르르르 귀뚜라미 울음처럼
싱그럽고 순수했다.
아직은 세상이 두렵고 그 광활함이 어디까지인지 모르는 미지였기로 뭉게구름처럼
이 꿈 저 꿈을 하늘에 띄웠다.
열정으로 가득했던 20대는
보기만 해도 설레는, 신나는 폭죽놀이 같았다.
새로운 세계를 알아갈수록 나의 세상도 넓어지고 멈추지 않는 에너지가
이 곳 저 곳 나를 데려가 주었다.
나의 30대는 초반은 봄처럼 따스하고 포근했다.
난생처음 내가 어여쁜 사람인 것도 알게 되고 그렇게 나를 봐주는 그를 만났다.
많은 것들이 꽃피우고 열매를 맺는 풍성한 시기였지만,
결혼 후 알게 된 나는 꼿꼿하여 부러질지언정 휘어지지 않는 고집 그 자체였다.
30대의 후반은 출산과 육아로 모난 것들이 깎여나가고 걸러지느라 아프고 외로웠다.
많은 날들을 길가에 버려진 아이처럼 소리 없이 울어댔다.
그리고 40대,
그 울던 아이가 자라
인생의 광풍에도 묵묵히 앞으로 내걷는 어른이 되어간다.
이제 정말 죽는 건가 생각하니
자기 취미에 취해 사네 이기적이네 어쩌네 하며 미웠던 남편이 여태껏 건강한 것과
나와의 결혼을 지켜준 것이 고맙고
사람에 치이고 일에 치인다며 매일같이 퇴사를 꿈꾸던 내 일이 소중했다.
잠 안 자고, 밥 잘 안 먹는 두 딸도 그저 곁에 있는 것만으로 감사하고
삐까번쩍이 아니라도 우리가 함께 할 집이 있음에 감사하고
사지멀쩡해서 어디든 가고 움직일 건강이 있음에 감사했다.
이제 다시는 삶을 이어가지 못하다니 너무 억울하고 아쉬웠다.
하루만 더 시간을 달라고, 아니 잘못 찾아온 것은 아니냐고 따지고 싶었다.
벌떡 일어서서 현관에 서서 꿈쩍도 않는 저승이를 뚫어져라 쳐다보았지만, 다가가지는 못했다.
"어리석은 인생이여, 한 치 앞도 모르는 자여. 오늘 밤 네 생명을 거두리라.
너는 네 입을 함부로 열지 말라."
아! 생각났다.
오늘 남편과 다투고 잠들면서
'하나님, 그냥 나를 데려가세요 세상에 미련 없으니, 제발 데려가주세요' 하며 잠들었다는 것을............
잠에서 깼다.
이런 꿈은 처음이다.
기회를 주신 삶, 정신 차릴게요.
다시는 그렇게 오지 마세요..............
40대가 몇 년 남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