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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궁이 Apr 04. 2023

No pain, no gain

카메루니안

'바밀리께 족'은 카메룬에서 가장 부지런한 종족이며 경제권을 쥐고 있는 종족으로 알려져 있다. 여행하다 보면 여기저기 노는 땅이 많은데, 논밭이 경작되어 있는 곳은 틀림없이 바밀리께 족이 살 것이라고 확신해도 된다고 한다. 새벽부터 일어나 일터에 나가고 하루종일 일을 하는, 우리 민족과 닮은 점이 많은 종족. 

그들에게 시달리는 일도 많지만, 홀로 있는 이곳에서 내가 의지할 이웃, 동네 사람들이 바밀리께 족이다. 

바푸삼(Bafoussam)이 내 집 같고, 매일 만나는 사람들도 안 보이면 궁금하고 보고 싶은 정이 많이 생겼다. 


임지 발령 후 지난 3개월간 나는 현지인과 매일 프랑스어 공부를 하고 있고, 영어로 소통이 가능한 교회친구 윌리암스를 알게 되어 주말마다 작은 마을 진료도 다니기로 했다. 코이카 본부에는 의료물품 프로젝트를 신청하려고 현지 의료기기 상점들을 알아보는 중이며 병원에도 적응해 바쁜 시간들을 보내고 있다. 그리고 그 시간들을 보내며 기대하는 날이 있었는데, 그날이 바로 오늘이다. 

3개월마다 수도 야운데에 모여 생활비를 받는 날!!!


모든 아프리카 국가들이 그런지 모르겠지만, 이곳의 은행은 한국의 은행과 달리 목돈을 맡겼다가는 하루아침에 강도를 당해 몽땅 잃어버리기 십상이고, 지역 은행 간 거래(계좌이체, 송금 등)는 불가능하기에, 카메룬 코이카 봉사단원은 생활비를 직접 받아가는 것이 원칙이다. 가끔이지만, 차 강도사건(무장 강도가 장거리 버스를 불러 세우고 금품을 갈취하는 사건)도 종종 있기 때문에, 생활비를 지불하는 코이카 행정원과 현금을 들고 이동하는 봉사단원 모두 긴장되는 미션 중 하나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혼자 지내는 봉사단원에게는 이런 핑계로라도 타 지역 단원들도 만나고 한국사람들과 만날 수 있다는 것이 어둠 속의 한 줄기 빛이요, 마른 광야의 빗줄기 같은 위로의 미션이기도 해서 소풍날처럼 설레기도 한 것이다. 


버스 안에서


평소 출근하는 시간보다 더 일찍 오토바이 택시를 타고 터미널을 찾아갔다. 수도 야운데까지 5~6시간이 소요된다고 하니 아침 일찍 출발해야 낮시간에 사무소에 도착할 수 있을 것이다. 붉은 흙 가루가 사람들 발걸음을 따라 사방에서 흩날리고 건물이랄 것도 없어 보기엔 그냥 공터 같은데, 매표소 같은 창구와 20인승 정도로 보이는 작은 버스들이 몇 대 서 있는 것이 터미널인가 보다 하며 들어섰다. 여느 때처럼 나를 보고 '니홍'하며 인사하고 도망가는 아이들에게 큰소리로 "본 주흐네(Bonne journée., 좋은 하루~)"하고 인사하며 씩씩하게 걸었다. 

흙먼지 속에서 파라솔 하나 펼쳐놓은 작고 소박한 공간에서 고급레스토랑 뺨치게 맛있는 냄새가 솔솔 퍼진다. 달걀을 풀어 토마토와 양파를 잘게 썰어 넣고 MSG를 한 꼬집 추가 후 기름에 볶아내는 이 냄새는 너무 유혹이 심해 그 앞에 서서 고민하게 만드니, 그 주변에 모여 앉아 누구는 사 먹고, 누구는 냄새만으로 행복한 아침을 즐기는 듯하다. 통째로 빠삭하게 튀긴 생선, 간이 딱 맞은 오믈렛에 소스 다라쉬 또는 소스피망을 듬뿍 넣어 먹는 바게트 샌드위치, 구운 쁠랑뗑도 함께 보인다. 아침을 사 먹고 싶었지만, 가는 길에 배가 아플 것 같아서 망설이며 발길을 돌렸다. 

버스표를 사려고 돈을 내미니 아주머니가 인사도 안 받고 심드렁하게 표를 건넨다. 버스표에 좌석번호나 출발시간이 없어 물었더니, 세워진 버스 중 기사가 앉아있는 버스를 타라고 손으로 가리킨다. 출발 직전에 표를 받고 들여보내는 것이라 하니 오는 순서대로 줄이라도 서면 좋겠는데, 그 어디에도 버스 줄은 찾아볼 수가 없다. 아침을 먹고 있거나 그냥 봇다리짐 사이에 앉아 자기들끼리 이야기가 한창이다.


시간이 흘러 한 아저씨가 버스 문 앞에 서서 소리를 치자 그 주변에 사람들이 순식간에 몰려들었다. 이렇게 태워준다고? 일찍 온 것이 의미 없지만 이 버스를 놓치면 안 된다는 간절함으로 어떻게든 그 무리에 껴서 표를 들어 올렸다. 드디어  내 차례. 나를 맨 앞에 태워주려는 듯 기사와 표 받는 아저씨가 대화를 하더니 운전석 옆 자리에 앉으라 한다. 뭔가 특혜를 받는 것 같아 기분이 좋으면서도 앞서 탄 사람들에게 미안하기도 했다. 내가 앞자리에 앉으니, 뒤에 앉은 몇몇 여자들이 민원을 제기하고 따지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고 기사는 외국인이니까 이해하라고 하는 것 같은데, 이럴 땐 아직 프랑스어가 유창하지 않은 게 약이다. 자리에 앉아 배낭을 아래 내려두고 여유롭게 있는데, 내가 앉은 2인석에 아저씨 한 명, 아주머니 한 명  더 들어와 앉는다. 역시 버스도 승객 정원 없이 다 태우는가 보다. 결국 표라는 것이 한 자리값을 내고, 3분의 1 또는 4분의 1 자리를 얻어 타는 것이었다. 체급에 따라 상대적으로 왜소한 사람들은 더 좁은 자리에 불편한 여행을 해야 한다. 이러한 시스템에 대해 누구도 불평하지 않고 권리를 내세우지 않으며 버스에 끼여 앉더라도 맛있는 아침을 계속해서 즐길 수 있는 현지인들이 진짜 인생을 즐길 줄 아는 챔피언 같았다. 정원의 2배를 훨씬 넘긴 듯한 승객만큼 많은 짐을 지붕 위에 실어 줄로 꽁꽁 묶었는데, 그 높이가 차만 하다. 뒤뚱뒤뚱 묘기를 부리듯 차가 출발한다. 


내가 앉은자리는 확 트인 앞자리이지만, 3명이 함께 앉으니 내 몸은 있는 힘을 다해 버텨도 기어스틱에 자꾸만 배가 닿았다. 옆에 앉은 뚱뚱한 아줌마를 끌어안아야 운전석 침범을 안 할 것 같았다. 하지만, 초면에 그런 실례를 하고 싶지 않아, 최대한 애를 쓰고 앉아 생각했다. 차라리 앞자리 특혜 말고 뒤에 끼여 앉았다면 맘 놓고 숨을 쉴 텐데 하는 생각말이다. 사람이 참 간사하다, 앞자리라고 좋다 할 땐 언제고......

승객 대부분은 손에 음식이 들려있었는데 차 안이 식당처럼 음식 냄새가 가득했다. 옆자리 아줌마도 튀긴 생선을 뜯어먹어 기름에 번질번질해진 손으로 손뼉 치며 그 옆에 앉은 아저씨와 웃고 떠드는데, 웃을 때마다 출렁이는 살이 내 몸을 밀었고 그때마다 나는 기어 쪽으로 밀려나지 않으려 애를 쓰고 버텼다. 

승객들의 신나는 분위기에 힘입어 기사는 카메룬 최신가요 테이프를 플레이했고, 요란한 음악에 몸을 흔드는 사람들과 왁자지껄 떠드는 사람들의 소리로 가득한 버스 안 풍경이 창밖의 단조로운 풍경과 대조되어 펼쳐진다. 창밖은 평화롭기 그지없는 아프리카의 새파란 하늘에 하얀 뭉게구름 그리고 끝없는 지평선에 들판이 보이고, 내 귀는 고문을 당하는 중이다. 


피할 수 없다면 즐겨야 한다. 


버스 타면 숙면하는 나는 여기서도 어김없이 출발 몇 분만에 쿨쿨 잠들었다. 한 참 잔 것 같은데, 종아리에 뭔가 기어 다니는 느낌이 들어 깼다. 파리가 워낙 많으니, 잠결에 파리인가 보다 하며 휘휘 젓고 다리를 털었는데, 이게 날아가지 않고 허벅지로 쑥 타고 올라오는 것이 느껴졌다. 그 순간 잠이 확 깨면서 반바지 아래 내 다리를 쳐다봤는데, 믿을 수가 없다. 파리일 거라 믿었던 그것들이 다 바퀴벌레다. 출근길 택시에서 목격했던 바퀴들이 버스에도 있다니! 내 눈으로 보는 이 광경을 사람들이 믿을까 하면서 고개를 숙여 들여다보았다. 손톱만 한 작은 애들부터 손가락 한마디만 한 바퀴벌레가 발아래 버스바닥에서 바쁘게 돌아다니고 있고, 내 다리를 타고 올라오는 것은 물론 옆에 앉은 아줌마의 치마 속으로도 자유롭게 드나들고 있다. 게다가 작고 빠른 그것들은 버스 바닥뿐 아니라, 천장에서도 내려오고 앞, 뒤, 옆, 모든 곳에 안 다니는 곳이 없다. 그 짧은 순간이 지나고 나는 소리를 지르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비좁은 자리에 일어서서 내 몸을 털어내고 "꺄악 꺄악" 소리를 지르니, 버스 안을 가득 채운 음악이 멈추고 사람들이 나에게 집중했다. 

" 뿌꾸와(Pourquoi? 왜 그래?)" 하며 묻는 그들에게 발 밑 바퀴벌레를 가리키며 계속 소리를 질렀다. 맨 앞자리에 일어서서 알 수 없는 춤을 추듯 몸을 흔들고 있는 나를 보며 어떤 이들은 손뼉 치며 웃고, 누군가는 너네 나라는 안 이런다고? 다 똑같지 유난이라고 조소했으며, 더 적극적인 이는 바퀴는 아무런 해를 끼치지 않는다며, 모기는 말라리아를 옮기고 파리도 세균을 옮기지만, 바퀴벌레가 무슨 짓을 했냐? 며 진지하게 물었다. 눈물이 날 것 같은 바퀴벌레 패닉 상태에서 나는 그 놈들이 내 몸 근처에 오려고 할 때마다 소리를 지르며 한 참을 갔다. 내 옆에 앉은 아줌마가, 내 허벅지를 툭툭 치며 괜찮다고, 몇 마리를 손으로 탁탁 때려잡아주었다. 처음으로 내가 여기에 왜 왔을까? 왜 나는 이런 각오도 안된 채 이곳에 온 것일까? 자책하며 내 눈은 벌레들의 움직임을 추적하기 바빴다. 차가 '부웅' 하고 출발하면 바닥 아래로 싹 사라지고, 차가 덜덜덜 속도를 낮추어 오르막을 달리면, 우르르 쏟아져 나와 흘린 음식 주변을 돌아다니는 이 친구들과 함께 하는 여행길을 앞으로 1년 이상 다녀야 한다 생각하니 머리가 아파왔다. 


버스에 갇힌 건 아니지만 이 패닉 속에서 나는 자리를 벗어날 수 없다. 남은 몇 시간 동안 계속 춤을 추던지, 바퀴를 파리 정도로 인정하자며 최면을 걸어 내 몸을 기어 다니든 말든 해야 할 것이다. 살면서  이렇게 많은 그리고 다양한 크기의 바퀴벌레를 본 것은 처음이었다. 하지만, 놀란 나를 진정시켜 주고, 내 주변 눈에 띄는 바퀴들을 손으로 때려잡아준 몸과 마음이 넉넉한 아줌마의 따뜻한 친절을 접하며 부끄럽고 미안해졌다. 내 자리의 절반이상을 차지하고 앉은 아주머니를 원망했던 마음은 온데간데없이 고마움 가득해졌고, 어떻게 하면 아무렇지 않아 질까? 어떻게 하면 나도 손으로 때려잡을 수 있을까 생각했다. 옆에 앉은 아주머니께, "Merci et Dejole"메흐 씨 마망, 데졸레"(고마워요. 미안해요)를 반복하며 불안정한 마음을 살짝 기대었다. 그렇게 아줌마를 끌어안고 졸다 깨다를 반복하니 드디어 야운데에 도착했다. 소풍 가는 날처럼 설렘으로 시작한 하루가 바퀴벌레로 지친 하루가 되어간다. 하지만, 나는 이제 카메루니 안. 피할 수 없다면 즐기는 법을 찾아야 한다. 할 수 있다를 외치며 벌레 가득한 버스를 탈출하듯 튕겨 나왔다. 다짐이 무색하게 탈출하자마자 온몸을 털고 가방을 털고 가방 지퍼마다 열어 확인하고서 택시 정류장을 찾았다. 

야운데는 수도여서 그런지 터미널도 크고 한눈에 들어오지 않아 정신이 없다. 택시를 타고 사무소를 찾아가야 하는데 두리번거리며 고민하는 중에, 한 사내가 내 가방을 들고 달려간다. "안돼 내 가방, 내놔" 하며 죽을힘을 다해 뒤쫓아갔다. 그는 터미널 밖에 무질서하게 세워진 택시 중 하나에 내 가방을 던져 넣고 , 그 택시를 타라고 그리고 자기가 짐을 들어줬으니 돈을 달라고 한다. 슬슬 짜증이 올라온다. 누가 짐을 들어달라고 했냐고, 네가 가지고 달려갔지, 내가 들어달라고 했냐고 따져야 하는데, 영어밖에 안 나온다. 끝까지 돈을 달라는 그에게 나는 줄 수 없다(Non, Pourquoi? 내가 왜?)외치며 택시를 탔다. 끈질기게 돈을 요구하는 그를 뒤로하고 출발! 그리고 택시는 코이카 사무소로 향했다. 어디에서 왔느냐, 어디에 사느냐를 묻고 답하는 동안 기사는 나에게 "벌써 바밀리께가 다 되었네요. " 한다. 이런 상황에도 현지인과 맞서 돈을 뺏기지 않는 나의 기백과 고집을 보고 하는 말일까? 이런 상황에서 항상 후회한다. 그냥 줄걸 그랬나......


다 저녁이 돼서야 사무소에 도착했다. 3개월치 생활비를 받기가 이렇게 힘들다니, 벌써 돌아갈 일이 걱정이다. 우리는 모이자마자 지난 몇 개월간 지내며 겪은 일, 수도까지 올라오는 길에 있었던 무용담을 전하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다. 그래도 무사히 건강하게 다시 만나니 얼마나 감사하냐며 잠자리에 든다. 

모두 비슷한 일들을 겪으며 이곳을 이해하고 알아가며 적응해 가는 중이다. 영어권이 두 지역, 프랑스어권이 일곱 지역 각자 사는 동네에서 현지인화 되어가는 모습들이 재미있다. 

때로는 배우며, 때로는 베풀며 어른이 되어가는 중이다. 


No pain no ga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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