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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궁이 Mar 28. 2023

생존 전략 III

카메루니안

내 기준을 버리는 것이 우선. 하지만, 최선은 아니다.


 <바푸삼 도립병원> 첫 출근이다.

내 방 창에 가득 찬 파아란 하늘과 흰 구름에 어울리는 참새소리에 상쾌한 아침을 시작한다. 이곳 바푸삼은 해발고도가 높아서 안개가 뒤덮인 바깥 풍경을 볼 때마다 마치 내가 산 정상에 있는 것처럼 평화롭고 신비롭다. '처음'이 주는 긴장과 설렘은 언제나 평소보다 일찍 몸을 깨우니, 약간의 여유를 부려 아침을 만끽해 본다. 에그스크램블 든든히 먹었으니, 자 이제 가 볼까? 태극마크가 달린 유니폼을 챙겨 입으니, 대한민국 파견 간호사로 이곳 병원에 출근하는 것이 실감 난다. '뭐든 열심히 하자!! 내가 아는 것을 많이 나누자!!'


오토바이 택시에 내려 돈을 지불하고 선캡을 젖혔다. 정문에 서서 병원을 바라보며 한 참을 서 있었다. '병원이 이렇게 평화롭다니' 밤낮없이 밀려들어오는 119 행렬이 나에게 익숙한 병원의 아침이라면, 너무 고요해서 병원이 아닌가 할 정도였다. 병원 가운데 큰 길만 시멘트로 길이 닦여있고,  건물 사이사이 옆 길은 붉은 흙의 비포장 길이었다. 정문 앞에서 아침 장사(바게트 빵에 고기를 넣어주거나 생선을 넣어주는 샌드위치, 바나나, 베니에)하는 상인들과 병원을 오가는 사람들이 신기한 듯 쳐다본다. 눈이 마주치면 씩씩하게 "봉주흐" 외치려 했는데, 속으로만 외치며 앞만 보고 바쁘게 걸어 들어갔다.


두근두근 떨리는 마음과 기대로 병원장님을 만나 인사하고 파견부서 '응급실'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벌써 응급실 입구에 나와 반갑게 맞아준 수간호사님은 남자였고, 작은 체구에 야무지고 깐깐한 인상이 응급실과 잘 어울렸다.  나를 데리고 응급실을 라운딩 하며 근무 중인 간호사들에게 소개를 시켰고 나는 그동안 열심히 외워왔던 불어로 자기소개를 했다.


"Bonjour, je suis infirmière coréenne et je m'appelle IH"/

안녕하세요. 한국에서 온 간호사 IH입니다. 


응급실은 병원 입구 바로 왼편에 있는 길쭉한 건물이었는데, 안에 들어서면 좁은 통로 왼편에 아주 오래된 침대가 서너 개씩 두 줄로 나열되어 있었고, 오른편에 간호사실이 작게 하나 있었다. 이 통로를 직진해서 지나면 큰 방이 나왔는데, 상처드레싱을 해 주거나 응급환자를 처치하는 곳이었다. 응급실 내부는 적갈색으로 페인트 되어 있었고 대부분 칠이 벗겨져 살짝만 건드려도 가루가 우수수 떨어질 것 같았다. 천장이 높긴 했지만, 거미줄이 아주 많았고, 파리떼의 자유로운 비행은 기본이었으며 간간히 환자 침대 주변에서도 보이는 바퀴벌레는 언제 봐도 심장이 멎을 것 같다. 바닥은 흙먼지가 구석구석 쌓였으며 전체적으로 병원이라 하기엔 너무 지저분했다.

그보다 놀라운 것은 응급실에 기본적으로 세팅되어 있는 기계들이 하나도 없다는 것이다. 그 흔한 심전도나 Vital sign(혈압, 맥박, 산소포화도)을 확인할 수 있는 모니터도 하나 없었다. 환자 베드 옆 까만 비닐봉지에 의료 물품(주사바늘, 수액)등이 처방전 종이와 함께 들어있을 뿐 간호사가 바쁘게 준비해야 할 수액 준비실 같은 것은 없었다. 수액라인 끝에 바늘(scalp vein)이 연결된 채로 환자의 침상 폴대 위에 걸려있는데(한국에서는, 주사를 빼면 곧바로 바늘을 분리해서 버리고 남은 수액도 감염되지 않도록 e-line을 교체해 두고 추후 재연결한다) 하마터면 한국에서 하던 대로 바늘을 분리하려고 꺼낼 뻔했다. 파견지에 오기 전에 선배들이 했던 말이 생각이 났다. 병원 입원 환자의 90%가 에이즈 합병증이라고 바늘에 찔리지 않도록 조심할 것을 당부한 게 생각났다. 그러면서도 분리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내 고집이 폴대에 매달려 있는 바늘을 가리켰지만, 아무도 나의 제스처를 알아듣지 못한 것 같다. 그게 여기서는 아무렇지 않은 일이기도 해서 그랬을 거다.

수간호사는 나를 환자들에게도 극진히 소개해 주었는데, 나에게 거는 기대가 큰 것 같았다. 인사를 하면서도 내 머릿속은 생각보다 더 많이 열악한 이 환경에서 어떻게 일을 해나갈지 고민을 시작하고 있었다.


보통 나이트 근무는 한 명이 담당하고, 아침 근무는 수간호사 포함해서 3명이 일한다. 저녁근무는 2명이서 하고 나는 아침 9시부터 오후 4시까지 근무하기로 했다. 시니컬한 표정, 한마디 인사도 없이 이 사람이 "동양에서 온 실습학생이냐"며 수간호사와 대화를 나누고 다른 간호사들에게 나를 한국도 아닌 중국에서 온 실습학생이라고 인계하는 나이트담당 간호사는 한국에서도 본 적이 있는 것 같다. (꼭 그런 캐릭터가 있단 말이지) 밤사이에 있었던 일들과 업무와 관련되지 않은 일들도 쉬지 않고 이야기한다. 내가 온 것이 반드시 대수로울 일은 아니나, 실습학생은 아니니까, 나는 눈치껏 Day 간호사를 찾아 인사하고 준비할 것들에 대해 물었다. 남자 간호사였는데, 자기를 따라다니며 보라 하였다. 뭔가 믿음직하고 위풍당당한 느낌의 이 선생님께 응급실 인계를 꼼꼼히 들을 수 있을 것 같다.


남자 간호사(장폴, Jean Paul)를 따라다니며 병원 환경에 대해 여러 가지 문화 충격을 적잖이 받았다. 첫날 나에게 주어진 임무는 두 명의 환자 혈관주사를 다시 연결하는 것이었는데, 폴대 위에 걸려있는 환자가 쓰다 빼놓은 나비바늘(Scalp needle)을 다시 재사용한다는 것은 도저히 나로서는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도의적으로든 인간적으로든 무엇으로든 그건 안될 일이었다. 내가 가져온 가방에서 두 개의 실리콘 바늘 (Jelco)을 꺼내 들었다. 토니켓으로 팔뚝을 묶고 주먹을 쥐라 하고 전완근을 살피며 가장 굵고 튼튼한 정맥혈관을 찾아 톡톡톡 두드리고 있는데, 남자간호사가 지금 뭐 하냐는 표정으로 나를 불렀다. 내가 어깨를 으쓱하며 '왜?' 하며 계속하려는데, 자기가 시범을 보여주겠단다. 그리고는 폴대에 걸려있는 나비바늘( 그 위로 바퀴벌레가 벌써 몇 번을 지나갔을지 모를)을 손에 들고 환자의 손가락에 바늘을 꽂았다. 그야말로 데롱데롱바늘이 매달려있는 상태로 라인과 연결할 때 벌써 공기가 2cc는 들어간 거 같다. 손가락이라니 오래 유지되기 힘든 말초혈관에 수액바늘을 꽂는구나 환자는 얼마나 아플지...... 아프면서 두 눈 꼭 감고 참아내는 환자에게 너무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아... 도무지 보고 있기가 어렵다.' 두 번째는 내가 하기로 하고, 나는 한국에서 가져온 바늘을 사용하겠다고 미리 설명했다. 스킨 테이프도 촥촥촥 뜯어 내 손등에 하나 붙이고 환자의 손목 위 굵은 혈관에 주사를 놓았다. 쇠바늘은 혈관을 뚫어 들어가도록 가이드한 후 빠져나오는 실리콘 바늘이어서 주사를 놓고 쇠바늘은 꺼냈는데, 남아있는 실리콘 바늘에서 혈액이 역류되는 것을 보고 남자 간호사는 깜짝 놀랐다. 나는 얼른 피가 새지 않게 엄지손가락으로 주사 부위를 눌렀고, 재빨리 수액라인을 연결했다. 수액이 잘 주입되는 것을 확인하고 주사부위가 부어오르지 않는지 확인하였다. 촥촥촥 스킨테이프로 주사를 고정시켰다. 눈에 보이지 않는 혈관에 주사를 놓은 나를 보며 장폴의 눈빛이 달라졌다. 그리고 그는 간호사 실로 돌아왔을 때 그 바늘을 어떻게 사용하는지와 어떻게 혈관이 보이지 않는 데다 주사를 한 거냐고 몇 개만 줄 수 있는지 계속해서 물었다. 나는 영어를 못 알아듣는 그에게 최대한의 불어를 사용하여 설명하였고, 바늘은 내가 가지고 온 여분의 것을 모두 주었다.


점심시간을 이용해 다른 지역에 파견된 간호사 선배에게 이런 상황을 전하고 듣게 된 정보는 새 바늘을 사 올 수 없는 환자나 보호자는 어쩔 수가 없단다. 2004년 현재 병원에는 의료물품을 무료로 제공하지 않는다는 것. 모든 의료물품은 환자가 시장에서 사 와야 한다. 주삿바늘, 약, 수액, 수액세트 등등 모두 다. 간단한 상처 소독도 간호사가 처방지에 필요한 것들을 써 주고 그 물품을 사 오면 처치를 한다. 먹는 약도 간호사가 처방하기도 한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대부분의 간호사들이 미리 시장에서 도매로 사서, 약과 물품을 환자에게 웃돈을 얹어 팔아 부업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어쩐지 다른 간호사들이 내가 그 물품들을 사용한 것을 꼬집으며 공짜로 놔주었다고 입을 삐죽거리더라. 그도 그럴 것이 환자들 사이에서도 외국인 간호사 한 명이 와서 무료로 물품을 써서 치료해 준다 소문이 나면 기존 간호사들의 생계가 타격이 클 것이었다.


오늘 근무 첫날, 시간은 어찌어찌 흘러갔지만 모든 순간이 딜레마였고 어려움의 연속이었다. 내가 알고 있는 기준과 업무에 대한 고집이 현지에서 내 역할과 임무를 다하는데 방해가 되지 않도록 현지의 여건을 충분히 생각하고 이 환경에서 일하는 나의 동료들의 입장도 충분히 고려해야만 한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나를 통해 대한민국의 의료서비스를 경험할 환자들이다.


여기 와서 제일 진지해졌던 날의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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