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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궁이 Mar 22. 2023

적도의 하늘아래

카메루니안

카메루니안으로 시작하는 제 이야기는 2004년부터 2006년까지  <아프리카 카메룬>에서

KOICA봉사단원으로 살면서 기록해놓은 저의 일기장입니다. 아프리카에서 귀국하면 책으로 써보고 싶다고 늘 마음한켠 소망이 있었는데, 이렇게 브런치를 통해 제 이야기를 풀어놓게 되어 기쁩니다.





적도의 밤 하늘


아프리카 카메룬에 온지 거의 1년이 되어 간다.


한국국제협력단(KOICA) 소속 간호 봉사 단원으로 파견된 나.

원래라면 봉사 단원에게 종교 활동은 금지되어 있었지만, 개인 휴가를 이용해 지역 선교사님을 따라 동부 피그미족 마을 단기 선교에 동참했다. 의미 있는 휴가를 보내길 원하는 동기 2명과 선배 2명도 흔쾌히 합류해서 외롭지 않게 선교활동에 나설 수 있었다.

새벽부터 출발해 14시간 이상 걸린 일정. 카메룬 동쪽 끝에 있는 피그미족 마을에 도착해서는 선교팀에 마음을 연 현지인의 집 마당에 누웠다.


이게 꿈일까? 사방이 캄캄한 밤 하늘에 흐드러지게 빛나고 있는 별들이 금방이라도 얼굴로 쏟아져 내릴 것 같다. 보기만해도 가슴 벅찬 별들을 보니 피곤이 싹 사라진다. 적도의 하늘이라 이렇게 가까운 걸까? 아니면, 빌딩 하나 없이 펼쳐진 자연 속의 하늘은 가깝다고 착각하게 되는 걸까? 끝도 없이 펼쳐진 별 가득한 밤하늘을 보는 동안, 내 옆으로는 닭과 오리, 강아지와 돼지 염소들이 자유롭게 오갔다.


아프리카 대륙의 붉은 흙을 가르며 비포장 길을 달려오느라 여전히 머리가 흔들리는 것 같고, 겹겹이 껴입고 마스크까지 단단히 써봐도 소용없는 아프리카의 붉은 흙이 몸에 가득 쌓인 기분이다. 밀가루를 뒤집어쓴 것처럼 붉은 흙으로 뒤덮인 얼굴은 크리넥스 한 장에 탁본을 찍어낼 정도였다. 전기도 없는 데 손 씻을 물을 찾는 것은 더욱 무리다. 아프리카 생활에 익숙해진 우리는 너나할 것 없이 가방에서 물티슈와 클렌징 티슈를 꺼내 답답한 얼굴을 쓱쓱 문질러 닦았다. 불이 없어 다행이다. 간호사 직업병이 깔끔병인데! 차라리 보지 않는 게 약이라며 서로 말없이 먼지들을 닦아냈다.
 


한치 앞을 모르는, 자유로운 인생!


앞을 모르는 인생이 답답할 때가 많았다. 그런데 이제는 그런 인생이 재밌기도 하다. 1년 전 나는 이곳 카메룬에 올 것을 감히 상상할 수도 없었다. 신규 간호사로서 2년 차를 다 채워가는데도 후배들은 응급실에 정착하지 못하고 모두 도망치듯 나가버렸다.


선배들의 기분에 따라, 업무 시간 내내 활활 탈 수도 있었고 운이 좋은 날은 아무 탈없이 근무에 집중할 수 있었던 그 곳. 매일 잠자리에 들 때마다 멀리서 들리는 사이렌 소리로도 치가 떨리고 잠들기 힘들었던 그 괴로운 신규 간호사 시절이 까마득하게 느껴진다.


자기 기분에 따라서가 아니라 사회적 예의를 지키며 서로를 존중해 주고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는 지금의 자유가 믿어지지 않을 만큼 좋다. 어쩌면 나는 그 자유를 찾아 나라가 보내는 곳 어디든 가겠노라 다짐했는지도 모르겠다. 그 덕에 아무도 지원하지 않은 아프리카까지 날아오게 되었지만!
 


성대한 환영파티와 원숭이 고기


저녁식사는 마을 잔치처럼 성대했다. 불빛이 없어도 마을 여자들은 익숙하게 움직였다. 이전에 먼저 와 보셨던 선교사님들은 손님들을 위한 특별식을 준비한다고 미리 정보를 주셨다. 메뉴는 새끼 원숭이 고기였는데 귀한 손님에게만 내놓는 이곳의 전통이라고 했다.


아무리 힘들어도 맛있게 먹어야 한다며 함께 선교를 떠난 선후배와 서로를 격려하며 음식을 기다렸다. 사실 너무 배가 고파서 더한 것도 먹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음식이 나오자 불빛 아닌 별빛과 달빛에 의존해 겨우 건더기를 확인할 수 있었다. 내 그릇에는 꽤 큰 고깃덩어리가 들어가 있었는데 국물 맛은 괜찮았기에 씹어 보기로 용기를 냈다. 자동차 고무 타이어를 씹으면 이런 식감일까? 질긴 맛의 고기는 살보다도 뼈가 더 많이 보여, 손에 들고 하늘에 비춰 보기로 했다. 불길한 마음에 자세히 들여다 보니, 으아악! 원숭이 해골! 아니 아기 원숭이 해골이 눈에 보였다. 소리 지를 뻔한 내게 선교사님이 이곳 사람들이 주는 최고의 정성이라고 말씀하셨다. 불빛이 없는데도 현지인들의 하얀 이와 커다란 눈망울들이 내 표정을 모두 꿰뚫어 보고 있는 것 같았다. 애써 웃으며 맛있다고 엄지 손가락을 치켜 들자, 그들은 나를 보며 박수도 치고 서로 웃기도 하며 환호했다.


멀리서 온 손님, 귀한 손님이라서 이 어린 원숭이가 희생되었다는 것이 마음 아팠지만, 우리의 저녁식사를 기뻐하는 피그미족 사람들을 보니 마음이 찡했다. 그들은 하루에 한끼를 먹고 산다고 했다. 보통 잘 먹으면 두 끼고, 대부분은 한끼를 제대로 식사한다고. 자신의 몫 대신 손님을 대접했다는 사실에 울렁이는 속을 달래며 음식을 삼켰다. 김치찌개와 떡볶이, 김밥 생각이 간절했던 피그미 마을 단기 선교의 첫 식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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