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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궁이 Apr 08. 2023

사랑의 묘약

카메루니안

응급이 없는 응급실 

  

바푸삼 응급실, 내가 만나는 대부분의 환자는 교통사고 환자가 가장 많고 그다음으로는 이유를 알 수 없는 고름(종기) 환자다. 교통사고는 한 번 나면 크게 나는데 119나 911 같은 응급구조 시스템이 없기에 사고현장에서 환자가 직접 걸어서 오고, 택시에 실려오고, 사람들 등에 업혀오거나 들것에 실려오거나 하는데, 머리를 많이 다쳐서 온다. 그래서 심폐소생이 필요한 응급 환자는 사실 그 자리에 죽거나 죽어간다. 사람을 가득 태운 자동차나 버스에 안전벨트가 없고 승객의 안전관리가 전혀 안되고 있으니 어쩌면 당연한 결과일지 모른다. 머리를 다친 환자라면, 기본 X-ray부터 CT도 찍고 출혈 가능성과 진단을 위한 스크리닝 검사가 필수인데, 여기서는 기본 혈액검사도 안 하고 눈에 보이는 출혈만 붕대로 감싸 지혈한 채 퇴원시킨다. 


때로 의식을 잃은 심각한 환자는 중환자실로 이송을 하지만, 응급의학과는 물론 신경외과 등 전문의(전공의는 물론이고)가 없기 때문에 운명을 하늘에 맡긴 채 아무 조치 없이 며칠 사이 죽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 병원에도 레지던트가 있지만, 단 1명뿐이라 수술실이나 중환자실에 주로 있고, 응급실에는 거의 오지 않는다. 그래서 큰 상처의 경우 간호사들이 마취도 하지 않은 채 엉망으로 봉합을 하는데, 면허 있는 간호사가 거의 없기 때문에 현지의 의료 수준과 의료 인력이 얼마나 열악한지 한국 동료들은 말을 해도 믿지 못할 것이다. 


발령 후 처음 한 두 달 동안은 너무 괴로웠다. 환자가 죽어가는 것을 그냥 보고만 있는 응급실 간호사와 병원이라는 곳의 무능함, 내가 의사였다면 더 적극적으로 살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나 자신에 대한 무력함, 현지 환경과 국가시스템의 열악함에 무력해지곤 했다. 한국이었으면 살려낼 사람들이 아무런 의료조치도 받지 못한 채 병원 바닥에서 죽어가는 현장에서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지 막막하고 가슴이 답답했다. 환자 가족과 함께 우는 날이 더 많았다. 그들 사이에서 뭐라도 해보려고 이리저리 애쓰는 나를 본 수간호사가 응급실 안쪽 방 하나를 가리키며 상처 소독을 도맡아달라 하였다. 

'그래 내가 할 수 있는 작은 것부터라도 하자'고 마음먹었다. 




만병통치약


이제 6개월이 지나고 있다.

오전마다 오는 환자가 많이 늘었는데, 오늘은 스페인 신부님이 꼬들꼬들해진 무릎을 보여주며 고맙다는 인사를 하러 들르셨다. "Merci beaucoup" 내가 발라준 연고가 C'est bon!! 이라며 나를 보며 엄지를 들어 올리신다. 


몇 주 전 상처환자 소독을 해주고 있는데, 한 외국인이 현지인과 함께 들어왔다. 스페인 선교사라고 소개하며 피가 흥건하게 스며 나오는 바지를 걷어올려 살점이 뜯겨나간 무릎을 보여주었다. 오토바이 택시를 타고 가다가 사고를 당했다고 한다. 큰 부상은 아니어서 다행이지만, 포장도로라 해도 우기에 스콜 한번 지나가면 아스팔트 군데군데 커다란 구멍이 생기거나 도로가 망가져버린다. 쓰레기나 폐기물이 아무 곳에나 던져져 있어서 오토바이 낙상 시 2차 충격이나, 날카로운 것들에 자상을 입는 경우도 흔하다. 

신부님을 의자에 앉히고 쭈그려 앉아 상처부위를 살폈다. 찢어진 바지 사이로 진흙과 피가 섞여 흐르고 있다.  NS(Normal saline; 생리식염수)로 상처부위를 씻었다. K대학병원 응급실에서 3년간 어시스트하면서 봐온 짬으로 시야확보를 위해 최대한 상처부위를 깨끗하게 씻어내고 보니, 덜렁이는 살점아래 반짝이는 큰 유리 조각이 보인다. 캘리를 꺼내 들고 살에 박힌 유리를 조심조심 꺼냈다. 하나, 둘, 셋...... 큰 거 2개에 작은 유리 조각 6개 이상 나왔다. 저 덜렁이는 살점을 한국이었으면 한 땀이라도 꿰매줬을 텐데, 충분히 씻어 소독한 후에 뜯겨나간 살점을 본래 자리에 덮고 그 위에 후시딘을 도포하고 거즈를 잔뜩 대어 붕대를 감았고, 심한 찰과상 피부도 소독 후 '후시딘'을 듬뿍 발라주었다. 한국에서 가져온 NSAID 진통제를 몇 알 드리며, 동시에 기도했다. 내가 하고 있는 이 미약한 소독 위에 하나님의 치료의 은혜가 덧입혀지도록.  

신부님은 일주일 꼬박 매일 오셨고, 매일 상처부위 소독을 해드렸다. 후시딘 역시 듬뿍 발라드렸다. 군대에서는 빨간약이 만병통치약이라더니, 아프리카에서 후시딘이 그런 약이 되어가고 있다. 

상처엔 역시 후시딘. 


이후 신부님 때문인지는 몰라도 알 수 없는 상처와 고름을 가진 많은 사람들이 오전 시간에 응급실에 온다.  오늘도 신부님이 오시기 전 8세 여자아이가 사고로 귀가 찢어져 왔다. 앙앙 울어도 되는데, 눈물만 주룩주룩 흐르는 아이를 보니 마음이 짠하다. 이럴 때 쓰려고 사탕도 몇 개 가지고 다닌다. 사탕을 까서 먹이니 무서운 마음이 좀 진정되나 보다. 엄마가 아이를 안고 의자에 앉았다. 옆에서 상처부위를 깨끗이 소독해 주고 후시딘을 바른 후 거즈로 감싸 단단히 붙여주었다. 소독을 마친 환자를 간호사실로 보내면 수간호사가 처방전에 필요한 진통제나 기본 항생제를 써서 준다. 대부분의 처방이 'Paracetamol'(진통제)이다. 그러면 시장에 가서 약을 짓거나 돈이 없으면 처방전만 들고 퇴원한다. 여기서 주로 쓰이는 진통제, 항생제, 듀오덤과 후시딘까지 함께 한국에 요청해 둔 상태이다. 코이카가 아닌 병원 동료와 교회의 의료선교부에 약을 보내달라고 부탁했다. 


오후엔 보통 환자가 없는데, 젊은 남자가 절뚝이며 들어온다. 뼈를 다쳤다면 수술실로 가서 외과 의사를 만나야 한다고 말하려는 순간, 내 앞에서 거침없이 바지를 내리고 사타구니에 500원 크기만 한 종기를 보여주며 아프다고 했다. 솔직히 종기 보다 더 놀란 것은 사실 난 지금까지 남자의 알몸 그러니까 일하는 동안도 병원에서 시신을 본 적도 없기 때문에 우왕좌왕 당황했다. 간호사 장폴은 능글맞게 날 보며 낄낄 대며, 환자가 베드에 눕도록 와서 도와주었다. 놀라지 않은 척 상처부위만 볼 수 있게 서랍장에서 수술공포를 꺼내와 덮었다. 종기를 손으로 눌러보니 단단한데 약간 말랑한 고름이 차 있는 것처럼 보인다. 메스를 가져와서 살짝 겉을 쨌다. 그 사이로 피가 새어 나오고 노란 고름이 살짝 보인다. 좀 더 깊이 찔러 봤다. 쑤욱 쑤욱 빠져나오는 딱딱해진 고름덩어리를 캘리로 집어내고 끈적한 고름을 짜냈다. 작은 종기도 아플 텐데, 얼마나 아팠으면 다리를 절었을까? 이를 악물고 땀을 흘리며 참는 환자를 보니 최대한 다 빠질 때까지 빨리 짜주어야 할 것 같아 간호사 장폴에게 붙들어 달라고 하고 세게 짜냈다. 500원이 다 빠져나올 때까지. 

그리고 베타딘을 소독해 주고 소염제를 하루치 담아 주었다. 약 포장기가 없어서 깨끗한 A4종이를 정사각형으로 잘라서 가지고 다닌다. 옛날식 방법으로 약을 종이에 싸서 담아 주고 필요하면 또 오라고 했다.


이유를 알 수 없는 피부염과 고름, 종기 환자가 많은 것은 에이즈 감염자가 많은 곳이기 때문에 합병증일 수도 있고 위생이 열악해서 생기는 것일 수도 있다. 때로는 심하게 괴사 된 피부에 벌레가 알을 낳아 온 환자도 오기 때문에 내가 하는 소독과 처치가 얼마나 도움이 될지 모르지만, 매일 오는 환자들을 정성껏 돌보며 은근히 후시딘을 의지하는 수밖에 없다. 사랑의 묘약 후시딘으로도 치료가 되고, 소염진통제로도 많은 상처와 통증이 호전되고 있음에 감사하는 날들을 보내고 있다. 


어느덧 나는 중국 변방의 간호학과 실습생이 아닌, 상처 소독 간호사로 자리를 잡은 것 같다. 비용을 받지 않고 처치를 하는 것에 현지 간호사들의 반발이 있었지만, 가난한 환자들만 나에게 보내서 최소한의 처치라도 받게 하는 것에 서로가 동의하고 무료봉사를 눈감기로 한 듯하다. 의료인이면서 환자를 대상으로 돈을 벌겠다는 태도가 당황스럽지만, 그들의 열악한 현실(수입이 일정치 않고, 간호사는 의사에 비해 돈을 거의 못 받는)을 생각하면 '봉사와 섬김'또는 의료인의 '헌신과 사명'이라는 높은 가치만 고집할 수는 없다. 

내가 와 있는 2년 동안이 아닌 그 이후가 더 중요하기에 현지 간호사, 의사들과의 관계는 정말 중요하다. 환자를 우선하지만, 현지의 의료인을 도울 수 있는 봉사가 되어야 한다고 매일 다짐하고 있다. 그래서 가끔은 내 물품을 달라고 할 때 언제든지 나눠주면서 그들의 헛헛함을 달래주고 있다. 


어디 가서 장사하지 말고 환자한테 꼭 써달라는 간절함 가득한 악수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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