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기의 흔적
한 번 비가 내리기 시작하면 '노아의 홍수' 생각이 날 정도로 드넓은 하늘이 다 뚫린 듯 폭우가 쏟아진다. 거대한 먹구름 아래 펼쳐지는 하늘폭포, 지나다니는 사람들도 하나 둘 건물아래 몸을 피하고 천둥, 번개 함께 하는 대자연의 연주를 감상한다. 순식간에 온 세상이 잠길 것 같은데, 붉은 대지는 스펀지가 되어 거대한 폭우를 꿀떡꿀떡 빨아들인다. 적도의 뜨거움을 주신 조물주가 일 년에 한 계절은 그 열기를 식혀주려고 하늘문을 여는 거라 상상을 하며. 이 땅은 저주의 땅이 아니라 축복의 땅 일거라 믿으며.
(현지동료들은 그런 말을 한 적이 있는데, 자기네 조상이 잘못 살아서 저주를 받아 이렇게 가난하고 못 사는 거라고)
아스팔드도 흙바닥도 다 뚫어놓은 폭우가 멈추면 언제 그랬냐는 듯 적도의 뜨거운 햇살이 지면의 모든 물기를 순식간에 말려버린다. 이것이 바로 아프리카!!
폭우와 함께 공룡이 지나갔나 싶게 도로 중간중간 커다랗게 움푹 파이고 망가진 곳들로 우기는 흔적을 남기고 바람과 함께 건기가 얼굴을 내민다.
건기의 자기소개
수도 야운데를 지키는 선배들은 카메룬에도 사계절이 있다며, <소우기-우기-소건기-건기>라고 소개한 바 있다. 그중 소건기에 들어서는 듯 비가 점점 오지 않더니 비 오던 시간에 모래폭풍(사하라에서 불어오는)이 불어 사방을 뒤덮는다. 먼지바람 때문에 현지인들의 눈 건강이 좋지 않다. 먼지 낀 눈을 비벼서 생기는 상처, 상처 사이로 도지는 염증. 약은 고사하고 그 흔한 인공눈물도 없다. 그래서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디자인이 어떻건 간에 선글라스나 안경 뭐라도 쓰는데, 우스꽝스러운 애들 장난감 같은 선글라스를 쓰고도 우쭐대는 이들을 쉽게 볼 수 있다. 내가 쓰고 다니는 시커먼 선캡과 도수 높은 안경을 달라고 쫓아다니는 사람들을 만날 때면 아쉽다. 이럴 줄 알았으면 남대문에서 도매로 선캡 좀 떼오는 건데...
퇴근길엔 어김없이 온갖 흙먼지를 뒤집어쓰고 오는데, 앞이 안 보일 때도 있다. 입을 꾹 다물고 걷는데도 입안에 자꾸만 모레가 씹힌다. 크리넥스로 얼굴을 덮어 눌러보면 붉은 흙이 그득하게 묻어 나온다. 먼지 폴폴 날리는 입은 옷은 가만히 벗어서 현관 옆 의자에 걸어두고 3일씩 입는다. 매일 빨래하기엔 손빨래가 너무 귀찮아서 애벌 빨래통에 쌓아두고 주말에 몰아서 빨래를 하곤 하는데, 빨래를 하는 건지 붉은 물을 염색하는 건지 헷갈릴 정도로 여러 번 헹궈야만 제 빛깔을 되찾는 고된 노동 중 하나다. 건조된 옷은 다리미로 뜨겁게 다려야 하는 벌레(널어둔 빨래 목덜미 쪽에 알을 까고, 피부에 침입한 벌레가 진피에 파고들어 단백질을 뽑아먹고 기생한다) 예방절차가 있기에 빨래하고 다려 입기 쉬운 옷들만 꺼내 입고 다니는 중이다.
시장에 나온 지 30분 정도밖에 안 되었는데, 얼굴이 후끈거린다. 건기 때 뜨거운 태양은 양볼에 나름 귀엽게 나열된 내 주근깨의 지평을 넓히고 겨우 한 시간 돌아다니고도 화상 입은 듯 시뻘겋게 얼굴부터 온몸을 구워버린다. 한국 돌아갈 때쯤 내 얼굴색은 현지인과 비슷해져 있을지 모른다. 붉게 물들다 못해 시커멓게 그을린 선배들의 얼굴처럼. 아무리 더워도 긴바지, 긴팔 남방을 주로 입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수박 하얀 껍질, 감자, 가지, 오이 등등 시원하게 썰어 얼굴에 올리고 마사지하지만 큰 효과는 없다.
나는 카메루니안
어제 오후부터 물이 안 나오더니 오늘은 하루종일 물이 나올 생각이 없나 보다.
이럴 줄 알고 모은 건 아닌데, 생수를 브리타 정수기에 걸러 먹느라 사놓은 2.5리터 Tangi(우리나라 삼다수 같은) 통이 몇 개 쌓였다. 밤에는 물이 좀 나오겠지, 그때 받아놓고 세수할 때 써야지. 퇴근길에 생수를 몇 개 더 사 왔다. 밤늦더라도 물이 나오면 씻으려고 클렌징티슈로 대충 얼굴을 닦고, 옷을 갈아입었다. 물이 나오리라 기대하며 밥 해 먹고, 벗어놓은 옷도 대충 세제를 풀어 애벌작업을 해 두었다. 선배들이 전해 준 미드시트콤 몇 개를 보고, 프랑스어 공부도 하고 이제 슬슬 졸리지만, 밤 12시 수도를 틀어 보았다.
어랏, 물이 안 나온다. 올 것이 왔나 보다. 기약 없는 단수......
병원 동료가 말해준 그곳에 물을 기르러 가야 할 때가 온 것인가? 주말 동안 씻고 지내려면 이 생수통을 배낭에 담아 물을 길어와야 한다. 내일 괜찮으면 같이 가자고 연락했는데, 병원 동료는 하루종일 문자에 답이 없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생수로 고양이 세수를 하고 생수통을 챙겨서 무작정 오토바이 택시에 올라 타 "물을 떠 올 수 있는 곳으로 가달라(Je vais chercher de l'eau)"고 했다. 처음엔 어디 가느냐고 묻더니, 여러 번 설명 후에야 고개를 끄덕인 기사는 한참을 달려 도심을 지나 외진 마을길 앞에 내려주었다. 그 길에 들어서는 사람들 손에 들린 물통을 보니, 제대로 찾아온 것 같다. 택시에서 내려 그 사람들 뒤를 따라 걸었다. 내 손에도 생수통이 들려있는 걸 본 현지인들은 나를 보며 엄지를 들어 보이며 Tu es déjà camerounais.(넌 이미 카메루니안) 하며 쓰럽다는 듯 "Ma petite sœur"(내 여동생아) 한다.
한참을 걸어 다리가 아픈데, 아직도 가야 한단다. 1시간은 넘게 걸어온 것 같다.
다시 돌아가기엔 많이 걸었고, 물도 담지 못해서 가던 길을 계속 걸었다. 2시간은 족히 걸은 것 같다. 저 멀리 사람들 무리가 보이기 시작하고 생각보다 작은 우물 같은 게 보인다. 줄을 서지 않는 현지인들은 무작정 그 주변에 자기가 가져온 물통을 내려두고 눈치껏 새치기를 하는 것 같다. 나는 예측할 수 없는 차례를 지키고 섰지만 눈치껏 한 걸음씩 다가가 현지인 사이에 껴서 우물 옆에 섰다. 애나 어른이나 온 가족 총동원해서 크고 작은 물통에 물을 담아간다.
그렇게 한참 사람구경을 하고 있는데, 저 앞에 한 아주머니가 나를 보고 손짓을 한다. 내가 이 마을로 길을 들어설 때 한동안 같이 걸었던 마망(Madam의 애칭. 현지인들은 엄마도 마망, 아줌마도 마망이라고 부른다)이다. 내 앞에 선 현지인들이 나보고 어서 앞으로 가라고 한다. 내가 여기서 반년 넘게 살고 있지만, 이런 배려를 받은 적이 있었나? 외국인이 물 뜨러 왔다고 나를 애처롭게 보며 웃어주는 현지인들에 둘러싸여 있는 지금 그동안의 피로가 다 날아가는 것 같다. 현지인들에게 받았던 그간 내 상처와 고충을 현지인에게서 치유를 받는 기분이다.
정말 감동이다. 잊지 못할 순간이다. Merci beaucoup(고마워요)
내 물통을 달라고 하더니 하나, 둘 담아주었다. 배낭에도 4개나 더 있는데, 기다리는 현지인들을 보니 가져온 물통을 다 꺼내기는 미안했다. 그래서 6개 중 3개만 담고 3개는 꺼내지 않았다. 생수 3통, 7.5리터로 어떻게 나눠 써야 하지, 머리는 못 감겠지?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당장 화장실 물이라도 내릴 수 있으면 됐다 싶어 배낭에 물을 담은 3통을 넣고 빈 생수통은 엄마 따라온 귀여운 꼬맹이 남매 하나씩, 그리고 그 엄마한테 하나를 주었다. 누나와 함께 나란히 물을 담고 물통을 채운 꼬맹이가 너무 귀엽고 한편으로는 짠하다. 꼬맹이 남자아이는 내가 무서운가 보다. 시커멓고 꾀죄죄한 아이는 하얀 눈이 땡글땡글 커다랗고 나랑 눈이 마주치자 그렁그렁 눈물이 차오르고 옆에 있는 누나를 붙들고 그 뒤로 숨는다. 마치 귀신을 본 것처럼 눈을 질끈 감고 말이다. 요 녀석 눈높이에 맞춰 앉아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는데, 공포가 극에 달했는지 아앙~울어버린다. 주변 현지인들도 웃고 나도 웃고.
물이 안 나와서 이 멀리까지 엄마, 누나랑 물을 기르러 온 꼬꼬마. 한국이었으면 이 나이 아이들이 이런 노동? 은 안 할 텐데...... 돌아오는 길에 내가 들어주겠다고 꼬맹이를 쫓아다녔는데, 계속 도망간다. 아이들 엄마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마을을 다녀보니 대부분 그렇듯, 이 엄마도 남편은 아이들만 낳고 어디론가 떠나버렸고 엄마가 마을에 남아 아이들과 산다고 한다. 돈을 벌어야 하는데, 바나나를 따다가 팔거나 돈이 좀 모이면 밀가루를 사서 빵을 만들어 나가 판다고 한다. '일부다처제'인 이곳의 남자들은 여기저기 다니는 곳에서 여자를 만나 아이를 만들고 다른 곳으로 이동하는 자유로운 인생인 반면, 아이를 키워야 하는 여자들은 매우 가난하고 혹독한 삶을 산다.
이러한 결과를 <모계사회>라고 하는 건 현지 여성들에겐 가혹한 말이라는 생각이 든다.
우기땐 건기생각, 건기땐 우기생각
일주일째 물이 안 나온다. 클렌징 티슈도 거의 다 써간다.
아 근데 피부가 도자기처럼 부들부들하다. 안 씻었더니 피부 속 세균들이 자연정화해 주는 건가? 부모님께 물려받은 초긍정마인드가 아니었다면, 이 더러운 꼴을 하루도 참기가 힘들었을 텐데 사람이 이렇게 간사하다. 현지 적응을 이리 잘하니, 현지인들이 카메룬 남편을 만나서 여기 살라고 하겠지?
집에서는 화장실을 아끼고 아껴서 밤에만 가고 있다. 최대한 병원에서 해결하려고 하지만, 병원 푸세식 화장실은 구더기 한가득이라 무서워서 볼 일을 볼 수가 없다. 제어할 수 없는 신호가 오지 않는 한 하루종일 안 먹고 최대한 안 움직이며 버티고 있다. 이럴 줄 알았다면, 커다란 고무통을 사두고 우기 때 물을 받아두는 건데, 두 번째 우기가 오면 꼭 물탱크를 준비해야지.
우기, 그 습습하고 축축하던 시절 상쾌했던 샤워가 그립다.
물이 얼마나 그리운지 , 폭우가 얼마나 그리운지
우기땐 또 건기를 그리워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