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 최정호 선생님 35주기 묘 방문
새로 찾은 최정호 선생님 관련 자료 소개
최정호 선생님 관련 기사, 영상
2023년 6월 5일은 1세대 한글 디자이너 최정호(1916-1988) 선생님의 35주기가 되는 날입니다. 최정호 선생님은 동아출판사체, 삼화인쇄체, 동아일보제목체 등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부리, 민부리체의 토대를 만드신 분입니다.
AGTI에서는 그의 업적과 노고를 기리기 위해 ‘AG 따옴표레터’를 통해 참가자 신청을 받아 스승의 날 무렵 AGTI 연구원들과 함께 무덤 방문을 했습니다. 이날 특별히 ‘한글 디자이너 최정호’ 책을 공동집필한 노은유 박사가 자리를 함께 하였습니다.
최정호 선생님의 무덤은 파주 ‘재단법인하늘나라공원’ 안쪽의 한적하고 고요한 볕이 잘 드는 곳에 자리하고 계십니다. 최정호 선생님의 무덤의 오른쪽에는 부인, 왼쪽에는 어머님의 묘도 나란히 모여 있습니다.
묘비 뒷면에는 “한글 모양을 아름답게 다듬으시는데 한평생을 바치시고 이제 여기 잠드시다.”라는 문구와 함께 가족들의 이름이 새겨져 있습니다. 가져온 꽃을 화병에 꽂고 가벼운 묵념으로 35주기를 추모했습니다.
AGTI는 최정호 원도 자료들을 추가로 발견했는데요, 그 속에는 2022년 11월에 발표한 초특태명조를 포함한 미공개 원도들과 최정호 선생님이 과거에 쓰셨던 이력서, 그리고 지읒의 형태에 대한 의견을 담은 수기 등이 있었습니다.
‘지읒' 꼴에 대한 건의
이날 AGTI가 새로 공개한 자료의 내용은 ‘지읒’ 꼴에 관한 것입니다. 당시 갈래지읒과 꺾임지읒에 관한 논쟁인데, 문교 당국이 갈래지읒은 틀린 것이고 꺾임지읒이 맞는 것으로 결정한 중요한 사건입니다.
이런 결정으로 인해 만들어둔 갈래지읒 원도는 못 쓰게 됐으니 꺾임지읒으로 새로 그려달라는 요청을 최정호 선생님께 드렸고, 그가 5쪽에 걸쳐 올바른 지읒의 형태에 대해 설명한 것입니다.
본래 꺾임지읒과 갈래지읒은 손으로 또박또박 썼느냐, 흘려 썼느냐의 차이로 나온 결과인데, 이것을 흑백 논리로 갈라버린 국어 편수관들의 주장은 잘못됐음을 지적했습니다.
덧붙여 국민학교 교과서 전부에 꺾임지읒만을 사용하고 있는 것은 잘못된 것임을 지적하며 한글 창제 때의 형태인 갈래지읒이 붓의 영향으로 꺾임 지읒으로 변해온 과정에 대한 가르침을 국민학교의 교재에 실어야 한다고 주장하시며 편지를 마무리했습니다.
그 외에도 최정호 선생님이 손으로 직접 쓰신 이력서를 볼 수 있었는데요, ‘전쟁 말기 통제로 폐업', ‘해방, 재개업', ‘6.25 사변으로 인한 중단’과 같이 지금은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고된 상황에서 글자를 멋지으셨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나의 경험, 나의 시도 5
AGTI는 잡지 ‘꾸밈 19호(1979년 8월)’도 새로 발견하였습니다. 최정호 선생님이 연재하신 ‘나의 경험, 나의 시도 5’를 소개해 드리며 다양한 글꼴 형태를 탐구하신 생각을 엿보려 합니다.
최정호 선생님은 실용적인 본문 글꼴을 만드시면서도, 특정 내용이 돋보이기 위한 변형체(궁서체, 환테일체, 그래픽체, 신명조체 등)에 대한 필요성 역시 강조하셨습니다.
“변형체는 반드시 본체를 압도하여 사용하는 것이 아니다. 변형체는 전체 인쇄 물량에 대해서 1할 미만에 해당되므로 그 1할에 해당하는 것에 목적을 두고 인쇄물 자체의 활자를 돋보이도록, 즉 광고물 내용을 호소하기 위해서 쓰는 것이다. 지금까지 명조와 고딕의 두 가지 체가 9할 이상 사용되고 있으나 인쇄물의 용도가 다양해짐에 따라 호소력 있는 서체도 다양해져야 하겠다.”
“우선 변형체를 시도할 때 어떻게 바리에이션(Variation)을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떠한 기틀 아래서 했는지가 중요하다. … 변형체에서는 근본적으로 자체를 이해하고 그것을 기본으로 삼아 바리에이션(Variation)을 시도하는 것이 좋겠다.”
“지금 쓰고 있는 명조도 엄밀히 얘기하면 명조가 아니다. 명조라는 것은 한문에서의 명조체를 붙인 것인데, 이것은 잘못된 것이다. 구태여 명조체로 불릴 수 있는 것은 지금 나와 있는 신명조체가 정말 명조의 필력을 따올 것으로, 명칭이 뒤바뀐 것이다. 앞으로 누구든 계속 새로운 글자를 써내겠지만 그 글자의 명칭을 우리 나름대로 정확하게 붙이는 것이 바람직하다 하겠다.”
이렇게 글자의 올바른 명칭, 글자의 다양성 등 한글이 나아가야 하는 방향에 대한 선생님의 생각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생각에 그치지 않고 ‘나의 경험, 나의 시도'라는 글을 통해 또 다른 시도의 발판이 되길 바라신 깊은 뜻을 알 수 있었습니다.
마무리로 최정호 선생님과 관련해서 여러 매체에서 다뤘던 인터뷰, 소개 내용을 링크로 담아 소개해 드립니다. AGTI는 앞으로도 최정호 선생님이 남기신 유산을 연구하고, 글꼴을 멋지어 선생님의 정신을 이어가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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