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고 싶진 않은데 살고 싶지도 않음

우울증 이야기 (2)

by 돌만두



얼마 전에 깨달은 나의 로망은 들키지 않고 성공하는 것이다. 무지 더운 여름에 심리 상담에 갔다가 알게 되었다. 어느 회기에서 살기 싫은데 딱히 죽고 싶지도 않다는 비루한 얘기를 했었는데, 선생님이 왜 살기 싫은거냐고 묻길래 ‘이렇게’ 살기 싫어서 조금 죽고 싶다고 말했다. 그럼 ‘이렇게’ 사는 건 어떤 거고, 지금쯤 내가 되었어야 하는 사람은 어떤 사람이냐고 물어봐서 말문이 막혔다. 딱히 뭐가 되기를 바라진 않고 있어요. 근데 사는 게 사는 것 같지가 않아요. 이건 쫌 사는 게 아니에요. 근데 성공하고 싶어요.



그러자 선생님은, 내가 생각하기에 성공한 사람들은 어떤 과정을 겪냐고 물었다. 어… 끊임없이 실패하지 않을까요? 그런 과정이 있지 않을까요? 순간 이 말을 하면서 느꼈다. 나는 이 개고생을 들키지 않고, 추레한 옷을 보여줄 일 없이, 구겨지지 않은 얼굴로 태어나길 바란 것이다. 있을지 없을지 모르는 영광스러운 미래를 위한 고통 대신 민첩하게 남몰래 성공하는 것을 동경해 왔다. 그러면 안 되는 걸까?



이번엔 친구에게 물었다. 잘 풀리리라는 그런 기대만으로 어떻게 남은 생을 버틸 수 있는 거냐고. 그녀는 내일 죽을 수도 있으니까 오늘 소소한 행복을 느끼면서 산다고 했다. 맛있는 걸 먹고, 너를 만나고, 이야기하고, 평범한 일상으로 행복하다고. 정말 고마웠지만 좌절스러웠다. 기분안정제를 너무 오래 먹어서 행복 불감증에 걸린 것일까? 탄산을 많이 마시면 우울해진다는데, 요즘에 제로콜라를 너무 마셨나? 무엇을 통해 ‘지금 여기 있는 행복’을 찾을 수 있다는 말인가?



어떤 이유로 그냥 살 수 있는 거지? 인간이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다는 명제는 거대한 타의일 뿐인데. 타인은 지옥이고, 어딘가에 행복이 있다는 막연한 장막을 용기 내 뚫고 나가면 내일이라는 문이 나오고, 그 문을 열면 또 다른 문을 찾아가야 하는데… 어째서 즐거운 일이 있을까? 당장 내일 죽는다고 하면 난 그냥 이불에 누워 있을 텐데… 모든 생명은 소중하다니, 어떻게 그렇게 무책임한 말을…



보통의 사람들이 ‘그냥 오늘을 산다’라는 말은 내 모든 지식을 통틀어 이해해 보려고 그건 아랍어 표지판처럼 해독할 수 없는 것이었다. 내게 오늘을 산다는 것은, 믿었던 삶의 우연성에 날것의 배신감을 맛보는 일일 뿐인데. 어릴 때는 짐작하지 못했던 나의 처참한 돈벌이 능력, 저임금 노동, 커리어 실패에서부터 끊임없이 집을 치우고 이 몸뚱이를 보살피는 일상에서 느끼는 소소한 지루함이고. 뭔가를 계속 손보지 않으면 매번 실패하고 오독하는 삶이라니? 와! 제대로 도태됐다.



도태된 사람의 도리로서, 억울함을 주저앉히기 위해 많은 양의 책이 필요했고 강박적으로 독서를 했다. 남들이 꼬박꼬박 잘하는 일에 서투른 인간이지만, 그래도 괜찮다는 확인을 받고 싶었다. 거의 모든 책에서는 이 모든 생각이 뇌의 특성일 뿐이고, 인격에 하자가 있는 건 아니라고 했다. 선의의 순도 높은 텍스트가 건네는 글줄은 따뜻하게 느껴진다. 그래서 새벽에 야식을 찾는 사람처럼 활자를 폭식했다. 활자중독에 걸린 눈으로 올올이 풀어진 타인의 깨우침을 눈치채려 했다. 하지만 자기계발서에서 나오는 대부분의 조언은 나를 위한 것이 아니었다. 일단 내가 평범한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 깨달음은 너무도 강력해서 대부분의 사람은 우울증이 없다는 사실만 체감할 뿐. 우리나라 우울증 유병률이 3~5% 된다는데, 운 나쁘게도 당첨된 걸 어쩌나. (다음 편에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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