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고 뜨거운 샤워

우울증 이야기 (4)

by 돌만두



가을이 가는 냄새가 나서 옷을 정리했다. 철 지난 옷을 버리러 나갔는데, 여름이 지나간 자리에서 바람 빠지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날이 추워지고 겨울이 가까워질 때는 늘 머리가 깨질 것 같은 우울이 온다.


환절기가 가져다주는 정서의 불안정함은 달갑지 않고, 비몽사몽 짧아진 해는 기분을 좀먹는 벌레다. 해가 떨어지려고 하는 오후 세 시의 강변을 걸으며 건조한 손과 무거운 머리를 느낀다. 여기저기 바삐 움직이지만 아무 일도 할 수 없으며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계절이기도 하다.


여름을 아끼는 사람에게 겨울은 하나의 증상일 텐데, 다들 어떻게 이런 추위와 더위 속에서 가을이라는 시간을 잘들 영위하고 있을까? 방심하면 꼼짝없이 손발이 얼어버리는 계절이 임박했는데, 이 지난함 아래서 어떻게, 작년에 입던 패딩을 걸치고 태연하게 살아 돌아오는 것인지.


가을은 여름이 수축되면서 태어나지만, 어떤 사람은 세상의 불화로부터 만들어진다. 모든 것을 끝장내 주리라는 일조량에 끙끙 앓으며 인간의 생물학적 취약성에 대해 생각한다. 아무래도 내 조상은 사냥에 재능이 없었던 것 같다. 아니면 동굴 안에 숨어버리는 마음이 어떤 것인지 알기나 하냐고 울기만 하는 종이 아니었을까.


감정에는 각자의 기능이 있다고 한다. 무서움은 우리로 하여금 도망가게 하고, 불안은 우리를 준비하게 하며, 분노는 반격하게 한다. 우울은 멈추라는 신호를 보내 주며, 슬픔은 우리가 무언가 중요한 것을 상실하고 있다고 말해 준다. 가을도 할 말이 있어서 여기 오는구나 싶어 버릴 옷가지를 들고 잠시 생각했다.


돌아가는 계절과 불안은 닮아 있다. 우리는 독 안에 든 쥐고, 우리를 가둔 지구는 거대한 회전을 반복한다. 모든 추위와 더위는 큰 문제의 작은 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이 사실은 지나치게 공평하다. 계절이 변하면서 느껴지는 상실감은 다른 고통에 비하면 오히려 날 것의 깨끗한 불안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누운 정신을 어찌할까. 아무리 겨울이 싫은들 질긴 목숨을 붙들어맸으니 하고 싶지 않은 것을 해야 하고, 원해서 하고 있지만 하지 말아야 하는 일을 멈추는 감각으로 살아야 할지 모른다. 막막한 리듬에 맞춰서, 알아서 눈치껏 자전하는 물체로 살아가는 것. 우리를 가둔 슬픈 독과 하나 되었음을 알고 매일 놓친 것들을 애도하면서, 은밀한 통제욕구를 놓아주어야지.


계절성 우울로 불완전한 정신을 향한 가혹함과 관용 사이를 갈팡질팡하며 느끼는 고통은 살면서 겪는 문제 중에서도 아주 작은 부분일 것이라 믿는다. 놓친 우산, 지나간 버스, 어느 추운 날이 가져온 고열 감기처럼 우리가 실패할 수 있음을 알고, 나는 날씨는커녕 아무것도 통제할 수 없음을 코웃음 치며 이해하고.


생은 간직하고 싶은 것들로부터 끊임없이 해리되는 것. 가을은 그렇게 매년 걷잡을 수 없는 본질을 알리러 온다. 하지만 옷을 빼앗길 준비를 해야겠다. 결백할 만큼 나약한 세계를 가진 인간이라는 것을 인정할 때 기상 관찰자로서의 나만이 변치 않은 채로 남아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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