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관문을 여는 일에 오백 번 실패한대도

예민한 사람의 이야기

by 돌만두



예민한 사람들은 혼자를 좋아한다. 그 가치를 온몸으로 느낄 줄 안다. 골목길을 빨리 걷고, 내가 원하는 속도로 밥을 먹고, 방문을 닫고 폭신한 곳에 누워 재미난 걸 찾아 하염없이 보는 것을 좋아한다. 그들은 두려움조차도 온전히 감각하려는 고집이 있다. 낯선 미용실을 갈 바에 집에서 셀프염색을 하는 마음이다. 하지만 면접, 출근, 오래전에 잡은 약속 같은 것들은 피한다고 사라지지 않는다. 내키지 않는 나를 매번 내보내서 세상에 끼워 넣어야 한다는 것을 안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는 관념에 꼬리를 무는 의문들과 함께.



바깥세상에는 낯선 자극이 비처럼 내린다. 익숙하지 않은 감각에 축축하니 가까운 사람에게도 너그럽지 못해 마음의 날을 세운다. 그래서 만성적으로 타인과 손절하고 싶은 충동이 있다. 그 충동은 자신을 방 안에 가두려는 모양새가 된다. 조그만 것도 거슬리니 나도 내가 거슬리기 시작한다. 괜히 나대지 않았으면 일어나지 않았을 일이라고, 근데 그냥 태어나지 않는 게 제일 좋았을 거라고. 기분 나빴던 일을 자꾸 꺼내보면서 복수도 상상으로 한다. 해로운 생각이 일상을 파먹게 둔다. 시간은 앞으로 가는데 생각은 지하로 간다. 그렇게 살다 보면 도저히 밖에 나갈 엄두가 안 난다. 이 사람은 게으른 것이 아니라, 생존을 위해 자신을 집에 수납한 것이다. 누구나 이렇게 될 수 있다는 말이다.



어렸을 때 부모, 친구들과 좋은 관계를 맺어온 사람은 커서도 혼자 잘 지낸다. 반면 방치되고 돌봄을 받지 못한 사람은, 혼자는 잘 있지만 사람들과 같이 있지를 못한다. 경계를 만드는 모든 일에 익숙하지 않기 때문에, 나와 타인 사이에 존재하는 울타리를 만들 수 없다. 경계를 종잡을 수 없으니 마음이 놓이지 않는다. 벽이 없는 집에서 사는 것과 같다. 트라우마의 기억을 지닌 사람은 나조차 나를 지킬 수 없다는 무력감이 깊이 가라앉아 있다. 그래서 밖에 나갈 때마다 온몸을 감싼 투명한 막 같은 불안을 느낀다. 자신을 보호하는 게 가장 먼저이기 때문에 사람을 잘 믿지 못하고 쉽게 긴장한다. 마치 새끼를 잃어버린 어미처럼 곤두서있다.



그러다 누군가 조금 마음에 들면, 그 인간의 밑바닥까지 포용하려고 한다.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끊임없이 이상화한다. 혼자서는 충족할 수 없는 결핍을 안고 불온한 의존을 향해 가는 불나방이 된다. 감정이든 시간이든 돈이든 몸이든 한 번에 바가지로 퍼주고, 바가지로 안 되면 트럭으로 퍼주려고 한다. 문제는 이런 고행을 제때 멈추지 못하는 것에 있다. 외로울 때 쇼핑하고, 배고플 때 장 본다. 경험상 이 세 가지 문제는 비슷한 시기에 온다. 누구랑 조금 삐끗했을 뿐인데 엉뚱한 곳에 돈을 쓰고, 그러다 잊고 싶은 기억을 만들고, 인터넷이든 어디든 세상과 단절될 수 있는 곳으로 간다.



세상을 왕따시킬 자유와 나를 망칠 자유, 둘의 경계는 뿌옇고 모호하다. 그래서 매번 방문을 닫는 아이로 돌아가는 것은 괜찮지 않다. 스스로를 지킬 수 있는 힘은, 흘러가는 기분에 내 중심이 휘둘리도록 두지 않는 것에 있다. 못 돼먹은 사람에게 받은 상처가 있다면 꺼내서 버릴 만큼의 체력을 만들면 된다. 나를 지켜줄 울타리를 만드는 일, 우리는 체력이 없다고 그걸 영원히 할 수 없는 것으로 오해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예민해서 쉽게 상처받는 사람들에겐 좋은 사람들과 좋은 시간을 보내는 것이 중요하다. 그렇게 치유된다. 당연하게도 그럴 자격이 있기 때문에.



아파도 괜찮은 강아지가 없는 것처럼, 아파도 되는 사람은 없다. 돈을 주고 다정한 우주를 살 수는 없지만 내가 나를 향해 다정한 것은 무한리필이 가능하다. 그런 세계가 있다. 믿기만 한다면 가능한 공간이 있다. 어디에도 없지만 그저 나의 마음속에 있다. 내가 나의 강아지를 사랑한다면 방에 고립시키지 말고 기꺼이 돌보아야 한다. 눈과 귀를 닦아주고, 아프면 병원에 데려가고, 바깥공기를 쐬여주고. 이것들을 꼭 해야만 하는지를 의심한다고 해서 걔를 양치시켜야 한다는 사실은 바뀌지 않는다. 나라고 다르지 않다. 이 땅에 발이 붙어있는 이상 우주의 힘으로 살아있기를 택했으니까. 우주가 시작한 게임을 엎을 수는 없다. 어쨌든 사람은 혼자선 살아갈 수 없고, 우리는 주어진 카드로 게임을 해야 한다.



세상과의 우아한 애착에 실패했다고 울지 않아도 된다. 아픈 과거에 아직도 아파한다면 그 기억을 채칼로 썰어버리는 상상을 하고, 다시는 그 맛을 곱씹으면서 두려워하지 마라. 어떤 나쁜 감정도 나를 정의할 수 없다. 신자가 신의 존재를 믿듯이, 나는 강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믿어야 한다. 그래야 스스로를 돌볼 수 있다. 어떤 상처가 있든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문 밖으로 나가 좋은 관계를 맺을 용기이다. 나는 간절히 바란다. 현관문을 여는 일에 오백 번 실패한대도, 실패와 기쁨이 공존하는 세상으로 기꺼이 발길을 돌릴 능숙함이 함께하기를. 알을 깨고 나오려는 사람들에게, 수없이 넘어져도 손 닿는 곳에 용기가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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