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의 감각이 실패에 있음

성인 ADHD 이야기 (1)

by 돌만두




무언가를 평가하는 자리가 있었다. 시험 당일에 정해진 주제로 작품을 만들어 심사를 받는 자리였는데, 어렵게 얻은 기회였다. 근데 시작부터 실수를 했다. 아주 등신 같은 실수였다. 문제는 그 부분이 점점 커져서 이쪽을 메우면 저쪽이 무너지고, 저쪽을 메우면 이쪽이 무너졌다. 8시간 내내 그 자리에 꼼짝없이 서서 짱구를 굴려댔지만 결국 완성할 수는 없었다. 중요한 기회를 박살내버렸다는 생각에 손을 달달달달 떨기만 했던 것 같다.



저녁이 되어서야 마주한 심사관들은 당연히 지적을 했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실수가 문제가 아니라 애초에 잘못 이해한 게 더 큰 문제였다. 짜파게티 끓일 물에 제일 먼저 스프를 넣어버린 정도로 어처구니없는 실수였다. 끔찍하도록 타당한 비판이 이어졌다. 당장 도망치고 싶었다. 목이 마르고 오줌이 마려웠다. 여기서 울면 돌이킬 수 없을 만큼 창피해진다는 생각에 창밖으로 뛰어내리고 싶었다. 좀 너무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6개월을 준비했는데 이런 짓을 했다고? 아니 애초에 이걸 배운 게 사람이 아니라 바보천치였다면 모든 게 납득 가능해지는 거 아닌가?



눈을 너무 부릅뜨고 있어서인지 시야가 흐렸다. 억지로 울음을 참고 있다는 사실이 너무 쪽팔려서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그러다 눈을 가격당한 사람처럼 얼굴을 부여잡고 울었다. 그들은 당황한 기색을 숨기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말을 멈추지는 않았다. 맞아요, 완성하지 못한 건 실격이에요. 저도 알아요. 하나도 억울하지 않아요.라고 대답하고 싶었지만, 그들은 마치 뭘 잘했다고 울어? 같은 표정을 하고 있어서 끝내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러게··· 우는 사람들은 보통 뭘 잘했다고 우는 것일까? 일단 죄송하다고 할까? 복도로 뛰어나갈까? 아니면 저 앞에 가서 대가리를 박을까?



잘하려고 할수록 더 많은 실수를 한다. 간절하면 간절할수록 더 큰 잘못을 한다. 이 기회가 너무 절실했는데 그래서였을지 모른다. 간절하지 않은 것도 문제가 되지만, 나 같은 경우는 간절해도 문제가 된다. 애타게 바라는 행위는 돌이킬 수 없는 실수를 하겠다는 말에 가깝다. 남들이 유튜브에서 괜찮다고 말하는 실수는 내가 저지르는 실수들과 같지 않다. 밥을 먹다가 옷에 짬뽕 국물을 묻히는 정도를 실수라고 할 수 있는 거지, 매번 바닥에 짬뽕을 그릇째로 엎어버리는 알바생을 마냥 괜찮다고 할 수는 없다. 그런 사람은 정신과의사를 제외하고는 누구도 편들어 주지 못한다. 용서받을 수 있는 실수와 용납조차 안되는 잘못은 절대적으로 다르기 때문이다. 보통 전자를 같은 곳에서 여러번 반복하면 후자가 된다. 그건 먹고 사는 문제에 치명적이다.



유리문을 밀고 건물을 나오면서, 나는 어떤 서비스를 종료하고 싶은 강력한 충동을 느꼈다. 난생처음 깊숙한 곳에서 올라오는 강렬한 감정이었다. 이럴 때면 나를 아끼는 사람들이 ‘에이, 사람이 실수할 수도 있지’라는 말을 건네곤 했다. 하지만 그런 위로는 나의 존엄을 지켜줄 수 없다는 사실이 명명백백히 드러나고 있었다. 이 악순환의 고리를 끊는 방법은 어쩌면 실수를 고치는 것이 아니라 존재 자체를 손봐야 하는 문제일지도 몰라. 집에 가는 길이었다. 당시 어떤 결심을 했는데, 그 결심은 여기서 말할 수 없는 것이다.



대부분 이런 식으로 내가 무엇이 되고 싶은가에 대해 하루도 빠짐없이 고민했지만, 그 선택지는 너무도 궁색했다. 전공을 바꾸고 적성을 찾는 문제와는 다른 차원의 문제였다. 왜? 실수를 고치는 일뿐만 아니라 나 자신을 없애버리는 일에도 최종적으로 실패하고 말았으니까. 다시 한다고 해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꼼짝없이 살아야만 한다. 제시간에 눈을 떠서 밖에 나가 벌어먹고 사는 일은, 나를 지금까지 살려둔 죗값을 치르는 일이다. 아, 한숨이 나온다. 진작에 깨달아야 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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