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은영 Jan 22. 2021

너를 사랑하기 위해 내가 포기한 것들

하얀 구름 둥실둥실

 무려 19년을 우물 안에서 살았다. 작은 동네, 한 다리 건너면 다 모르는 사람이 없는, 시내도 아닌 읍내가 익숙한 우물 안에서 살았다. 선택지가 거의 없다시피 하던 학교들 덕분에 새로운 사람 사귀는 법이 어색해 두려운 나를 우물에서 끌어낸 건 사람도, 배경도 아닌 19년을 살았던 아파트 쓰레기장에서 만난 하얀 고양이 한 마리였다.


 네가 집에 온 뒤로 많은 것들이 천천히 많이 바뀌기 시작했다. 공부라면 치를 떨던 내가 매일같이 공부하기 시작했다. '엄마, 사료 이런 거 먹이면 안 된대요.' '그릇은 도자기 써보는 것도 좋대요.' '화장실 뚜껑 없애주는 게 좋대요.' 학교가 끝나고 오는 길에 다이소에서 투명 수반을 하나 사고, 버스에서 종일 네이버 쇼핑 검색을 했다. 이런 낚싯대가 좋다고? 이 그릇이 좋다고? 용돈 쟁이 고등학생이었던 나는 그렇게 포기를 배워갔다.


 어느 날부터인가 너를 봐야 한다면서 학교가 끝난 후 놀지 않고 집으로 바로 가는 내 모습을 보았다.  네가 익숙해질 때쯤 슬슬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 친구들의 SNS. 다 같이 밤새 놀고, 같이 아침을 먹는 사진들과 쌓인 카톡과 디엠들. 놀자고 나를 붙잡는 손과 얼굴들.


 '어, 여기 뫄뫄 지나갔지.'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향수를 뿌리고 들고 다닐 정도로 좋아했다. 내 방에는 늘 디퓨저가 있었고, 마음이 힘든 날에는 캔들과 인센스 스틱에 불을 붙이고 감정을 환기시켰으며, 내 머리카락과 내 몸, 내 옷에선 향기가 공기처럼 났다. 나한테 좋은 향기 난다는 말만큼 기분 좋은 말이 없었다. 그런 내가 무취의 사람이 됐다.

 

 나는 혼자가 편한 사람이다. 간헐적이고 만성적인 우울로 누군가가 나의 바운더리를 함부로 들어온다는 걸 용납할 수도 그걸 이해하고 받아들일 에너지도 없던 사람이었다. 그 바운더리가 작은 내 방이라고 할지라도. 문을 닫으면 어디서 나타난 건지 문 앞에서 하얀 구름의 소리가 들린다. 문을 열어서 들여보내 준 후 문을 닫으면 또 문을 열란다. 이 요상한 성격 덕분에 내 방의 문은 닫히는 날이 일 년을 통 들어 일주일도 안 되는 것 같다.

 

 술에 취해 들어와도 나는 어김없이 네 앞에서 15분을 채워 낚싯대를 흔들었고 그 뒤에 화장실 변기와 긴밀한 이야기를 하게 된 날도 꽤 있었다.


 주변 사람들은 나를 떠올리면 초록색을 떠올릴 정도로 초록색을 좋아한다. 강박적으로 좋아하는 건 아니지만 정신을 차리고 보면 손에 가득한 초록 덩어리들. 그런 이유에서인지 초록색 생명을 좋아했다. 하지만 역시 쌍방의 사랑은 쉬운 일이 아니라고 내 손에 닿으면 생기를 잃고 바삭한 갈색의 무생명체가 되어버리곤 했기에 애초에 떠나보내기 쉬운 걸 품에 안자는 결심으로 잘라진 꽃을 좋아했다. 꽃다발도 좋고 송이도 좋고. 가끔 집에 오는 길에 하나씩 손에 들고 와 방에 두고 며칠씩은 쌍방의 가벼운 호감 정도로 무거운 세월의 사랑을 지워내고 있었다. 고등학교 졸업식이 끝난 후, 직접 디자인한 꽃다발은 5분간 나의 손에 들려있다가 우리 집 현관문도 아닌, 아파트 정문도 넘지 못했다. 왜냐하면 우리 집에는 네가 있었으니까.


 그래서 득 보다 실이 큰 이 관계에서 네가 밉냐고? 내가 너를 사랑하기 위해 포기한 것들은 내 세상의 일부였지만, 너는 내 전부니까 이 정도쯤이야. 내 돼지 고양이, 하얀 구름, 귀염둥이. 너를 위해 이런 건 아무것도 아니라고. 갑자기 이런 말이 생각난다. 네가 그렇게 귀여워봐라. 그래 봤자 겨우 우주 정복밖에 못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