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아람 May 30. 2024

부익부가 가져온 폐해

채만식의 <태평천하>

오늘 살펴볼 작품은 채만식의 <태평천하>입니다. 대부분 이 작품의 이름을 들으면 아실 겁니다. 수능에 나오기도 할 만큼 한국문학사에서 중요한 작품이죠. 이 작품에서 채만식은 윤 직원 일가에게 벌어지는 하루 동안의 일을 다루면서, 만석지기 윤 직원과 그 가족의 모습을 통렬하게 풍자했는데요. 특히 주인공 윤직원 영감은 몹시 이기적이고 타락한 인간으로 등장합니다. 그럼 지금부터 좀 더 이 작품을 깊이 들여다 보겠습니다. 

      

이 작품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인 윤 직원(직원이라는 직함을 돈으로 샀습니다)은, 돈이라는 생물을 누구보다 잘 꿰뚫고 있는 인물입니다. 돈을 획득하고, 지키고, 불리는 데 도가 튼 인물이죠. 부친인 윤용규로부터 물려받은 삼천 석 가산을 윤 직원은 몇 배로 불려 만석꾼이 됩니다. 소작을 치기도 하고, 고리대금업을 하기도 합니다. 특히나 인상적인 건 그가 재산을 절약하는 방식입니다. 판소리를 너무도 사랑하는 그인데도 직접 집으로 소리꾼을 부를 생각은 엄두도 못 냅니다. 그의 생각에는 돈이 지나치게 들기 때문입니다. 다만 라디오를 하나 사서, 매일 판소리가 나오는 채널을 듣습니다. 그나마도 두어 시간이 아니라 30분밖에 안 들려준다며 애꿎은 비서를 마구 타박합니다. 억울한 비서는 방송국에 분풀이로 투서를 넣는 일이 반복됩니다. 모든 일이 이러니 돈이 집 밖으로 나올 구석이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윤 직원 영감은 일을 도울 사람을 뽑는 기준도 뚜렷합니다. 바보거나, 아니면 자기만큼 돈을 아끼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이 애야말로 윤 직원 영감한테는 대단히 보배스러운 도구입니다. 윤 직원 영감은 상노 아이놈을, 똑똑한 놈을 두는 법이 없습니다. 똑똑한 놈이면 으레껏 훔치훔치, 즉 태을도(도적질)를 한 대서 그러는 것입니다. ... 너무 멍청해서 데리고 부리기가 매우 갑갑한 때도 있기는 하지만, 그 대신 일 년 삼백예순날을 가도 동전 한푼은커녕 성냥 한 개비, 몰래 축내는 법이 없습니다. ... 해서 참말 둘도 구하기 어려운 보물인 것입니다. -애플북스, <태평천하> 42p     


이래 십 년, 대복이는 까딱없이 지내왔습니다. 참말로 윤 직원 영감한테는 깎아 맞췄어도 그렇게 손에 맞기는 어려울 만큼 성능이 두루딱딱이로 만점이었습니다. ... 가령 두부를 오늘 저녁에는 세 모만 사들여 보낼 예정이라면, 사는 마당에서는 두 모하고 반만 사고 싶습니다. 그러나 두부 반 모는 서울 장안을 온통 매고 다녀야 파는 데가 없으니까, 더 줄여서 두 모를 삽니다. ... 대복이라는 사람이 돈을 아끼는 그 솜씨가 무릇 이렇다는 일롑니다. 진실로 얼마나 충실한 사람입니까. -같은 책, 139p     


실로 윤 직원 영감은 모든 것이 다 돈을 위주로 돌아갑니다. 그리고 그 보답으로 돈이 자꾸자꾸 모입니다. 그래서 윤 직원 영감은 지금만큼 태평천하가 없다고 믿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다였다면, 참 좋았을 것입니다. 물론 현실은 그렇지가 않습니다.           





상호신뢰가 무너진 사회     


한편에 만석꾼 윤 직원 영감이 있다면, 그 반대편에는 상대적으로 돈이라는 자원이 결핍된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때 이 둘의 관계가 중요합니다. 부자가 빈자를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따라, 빈자가 부자를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따라 사회 분위기가 결정되니까요. 그럼 윤 직원 영감이 가난한 사람들을 어떻게 대하는지를 볼까요.     

인력거에서 내려선 윤 직원 영감은, 저절로 떠억 벌어지는 두루마기 앞섶을 여미려고 하다가 도로 걷어 젖히고서, 간드러지게 허리띠에 가 매달린 새파란 염낭 끈을 풉니다. “인력거 쌕이(삯이) 몇 푼이당가?” ... “그저 처분해줍사요!” 인력거꾼은 담요로 팔짱 낀 허리를 굽실합니다. 좀 점잖다는 손님한테는 항투로 쓰는 말이지만, 이 풍신 좋은 어른께는 진심으로 하는 소립니다. 후히 생각해달라는 뜻이지요. “으응! 그리여잉? 그럼, 그냥 가소!” ... “……그리서 나넌 그렇기 처분대루, 응? …… 맘대루 말이네. 맘대루 허라구 하길래, 아 인력거 삯 안 주어도 갱기찮헌 종 알구서, 그냥 가라고 하였지!” - 20-22p     


온갖 약재를 먹어 살 많고 귀티 나는 윤 직원 영감은, 인력거꾼이 힘들게 언덕을 넘어 고래등 같은 집 앞까지 태워다주었는데도 돈 한 푼 줄 줄을 모릅니다. 인력거꾼이 알아서 달라는 말을 듣고 나서 “맘대로 하라니, 그럼 안 줘도 되겠지?”하는 윤직원입니다. 나중에 억지로 적은 돈을 쥐여주기는 했지만, 윤 직원의 마음 같아서는 정말 주고 싶지 않았던 게 확실합니다. 인력거꾼의 알아서 달라는 말이 값을 후하게 쳐달라는 말임을, 윤 직원은 정말 몰랐을까요? 분명 그렇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일이 계속 일어난다면, 아니 한 번이라도 일어난다면, 인력거꾼의 마음에는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뼈가 빠져라 일했는데도 정당한 보수를 받지 못할 뻔 했습니다. 너무나 억울한 일이겠지요. 이 날 이후 그의 마음에는 ‘있는 자들이 더하다’는 부자들을 향한 불신이 깊이 새겨지지 않을까요? 게다가 이 윤 직원 영감이 자린고비처럼 행동한 것은 하루 이틀이 아닙니다. 그가 마주하는 모든 가난한 사람들은 윤 직원 영감에 대해 매우 좋지 않은 감정을 가지고 있을 것이 틀림없습니다. 


하지만 배신하는 사람은 주로 배신당했던 사람입니다. 가난한 사람들이 윤 직원 영감에 대한 분노와 불신을 갖고 있다면, 윤 직원 영감 또한 만만치 않게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증오심과 적개심을 갖고 있습니다. 윤 직원이 젊을 때 화적떼가 쳐들어와 아버지 윤용규를 죽였기 때문입니다. 그때부터 윤 직원은 가난한 자들을 절대 믿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화적떼가 되어 집을 공격하지 못하도록 하는 일제 강점기의 치안 시스템을 추앙하게 되지요. 그리고 중일전쟁을 치르는 일본을, 올바른 전쟁을 하고 있다며 응원합니다. 


결론적으로 윤 직원은 사회의 상류층이지만, 가진 게 많을수록 사회에 더 큰 의무를 지는 윤리인 노블레스 오블리주와는 거리가 아주 먼 사람입니다. 그는 사회구성원 상호 간의 신뢰를 해치고 상대편의 이익을 전혀 고려하지 않음으로써 오히려 사회에 큰 해악을 끼치고 있습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우리만 빼놓고 어서 망해라!”를 당당히 외치던 사람이니 오죽할까요. 아버지를 잃은 그의 슬픔과 아픔을 이해할 수는 있지만, 그렇다고 그가 다른 사람들을 적으로 대할 자격을 얻은 것은 아니지요.           





마음의 평화가 없는 가정 


그럼 윤 직원이 그토록 소중히 생각하는 돈은, 그의 가정에는 어떠한 영향을 주었을까요? “우리만 빼놓고 어서 망해라!”를 외쳤던 윤 직원입니다. 여기서 ‘우리’라함은 그의 가족을 뜻하겠지요. 그토록 소중한 가족이지만, 어쩐지 윤 직원에게는 가족 또한 굉장히 힘이 듭니다. 윤 직원과 그 식구들은 매일 싸움을 밥 먹듯이 하는데, 특히 윤 직원과 며느리 고 씨는 쌈닭이 따로 없습니다. 다음은 둘의 싸움 장면입니다.     

 

“그러닝개루 징손주까지 본 이가 그래, 손자까지 본 메누리 년더러 육장 짝 찢을 년이네, 오두가 나서 싸돌아댕기네 허구, 구십을 놀리너만? 그건 잘허넌 짓이구만? 똥 묻은 개가 저(겨) 묻는 개 나무래지!”

“쌍년이라 헐 수 읎어! 천하 쌍놈, 우리게 판백이 아전 고준평이 딸자식이, 워너니 그렇지 별수 있겄냐!” 

“아이구! 그, 드럽구 칙살스런 양반! 그런 알량헌 양반허구넌 안 바꾸어…… 양반, 흥! ……양반이 어디 가서 모다 급살 맞어 죽구 읎덩갑만…… 대체 은제 적버텀 그렇게 도도헌 양반인고? 읍내 아전덜한티 잽혀가서 볼기 맞이먼서 소인 살려줍시사 허던 건 누군고? 그게 양반이여? 그 밑구녁 들칠수룩 구린내만 나더만?” -100p     

사용하는 욕설의 모습을 보면 거의 가족이라기보다 원수지간입니다. 원래 싸움을 하면 상대의 가장 큰 약점은 입에 올리지 않는 법인데, 양반 이름을 산 윤 직원 영감의 최고 약점을 훅 치고 들어오는 며느리 고씨입니다. 그러다 싸움은 흐지부지가 되고, 윤 직원 영감은 홀로 “두구 보자”라고 씩씩대며 화를 풉니다. 


다른 며느리들은 이렇게 대놓고 싸움은 안 걸지만, 모두 인색한 윤 직원 영감에 대해 불만이 많습니다. 만석꾼 며느리가 아니라 하녀라는 겁니다. 그들은 모두 영양상태가 안 좋아 파리한 얼굴들을 하고 있고, 옷도 제대로 사주지 않아 옷장은 텅텅 비어있습니다. 몸이 안 좋을 때 고기 한 점 못 얻어먹을 정도로 윤 직원의 눈칫밥이 엄청납니다.


윤 직원이 아끼는 아들 창식과 손자 종수는 다 밖에 나가서 첩이나 기생을 두고 살면서, 매일 노름판을 벌입니다. 돈은 윤 직원 앞으로 달아두면 그만입니다. 아들 창식은 손자 둘을 두었다는 공로로 계속 돈을 타 쓰고 있고, 손자 종수는 군수를 하겠다며 정치운동 핑계를 대면서 돈을 타서 씁니다. 그리고 다시 노름판으로 달려갑니다. 윤 직원을 (할)아버지로서 존경하기보다는, 돈 주는 기계로 알고 있는 모양입니다. 


다른 손자 종학은 일본에 유학을 가 있는데, 똑똑하고 영리해서 매양 윤 직원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책의 결말 부분에서 사회주의 운동을 했다는 죄목으로 경찰에 잡힙니다. 윤 직원은 그런 손자에게 일본 경찰보다 더 분노합니다. 할아비가 이렇게 열심히 돈을 모아서 살고 있는데 부자 돈 뺏아가는 사회주의 부랑당패에 참여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윤 직원의 총애를 받던 종학도 결국 할아버지의 비리를 꿰뚫어 보고 사회주의 운동에 참여한 것입니다. 윤 직원에게 행동으로 반기를 든 것이지요. 


윤 직원의 가정이 사랑과 존경, 마음의 평화가 가득하다고 말할 수는 없겠습니다.    




      

도덕불감증에 파묻힌 개인    

 

그렇다고 윤 직원 영감의 개인적인 사생활을 보자면, 그것 또한 할 말이 없습니다. 아니, 할 말이 너무 많아 차마 입을 다문다는 게 맞을 겁니다. 그는 원래 첩을 여러 명 두고 살았는데, 최근에는 어린 여자아이들에게 눈독을 들이고 있습니다. 가끔 윤 직원 집에 놀러오는 춘심이도 그 중 하나입니다.    

  

“춘심아?”

“네에?”

“너어…… 저어…… 내 말, 들을래?”

“무슨 말을, 요?”

묻기는 물으면서도 생글생글 웃는 게 벌써 눈치는 챈 모양입니다. 윤 직원 영감은, 오냐 인제야 옳게 되었느니라고 일단의 자신이 생겼습니다. 

“내 말, 들을 티여?”

“아, 무슨 말이세요?”

윤 직원 영감은 히죽 한 번 더 웃고는 슬며시 팔을 꼬느면서 

“요녀언! 이루 와!”

하고 덥석 허리를 안아 들입니다. 마음 터억 놓고서 그러지요, 시방…….

아, 그랬는데 웬걸, 고년이 별안간

“아이 망측해라!”

하고 소리를 빽 지르면서 그만 빠져 달아나질 않는다구요. -171p     


윤 직원 영감의 나이는 일흔두 살입니다. 올해 열다섯인 춘심이는 증손자인 경손이와 나이가 똑같습니다. 손주도 아니고 증손주뻘의 아이를 탐내고 있는 것입니다. 아무리 돈이 많고 아무리 건강하다고 해도 허용되지 않을 선이 있는 법입니다. 윤 직원도 자신의 이런 행동이 옳지 않은 것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춘심이에게 부모에게 이르지 말라고 하는 것을 보니 말이지요. 하지만 결코 자신의 욕망을 포기할 수는 없는 윤 직원입니다. 


사정이 이러하니 가정의 분위기가 어느 정도 이해가 가는 면도 있습니다. 윤 직원이 비도덕적으로 행동하니까 아들이건 손자건 며느리건, 모두 그를 존경할 수 없는 것이지요. 윤 직원은 세상의 도덕을 머리로 모르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그것을 자신이 지켜야 한다고 마음으로 느끼지는 못합니다. 돈이라는 힘, 모두가 알아주는 만석지기 부자라는 사실이, 그로 하여금 넘어서는 안 될 선까지 넘게 하는 원동력이 된 것입니다.  




         

지나친 긍정과 지나친 부정 사이   

  

오늘날, 우리는 돈을 찬양하는 사회에 살고 있는 것 같습니다. 동시에 ‘돈을 잘 아는 사람’을 우리는 숭배합니다. 그들이 그들만큼이나 돈을 잘 버는 법을 우리에게 알려줄 것이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거부들의 자기계발서는 눈 깜짝할 사이에 팔리고, 경제인들의 유튜브는 엄청난 조회수를 기록합니다. 우리는 돈을 벌기 위해 얼마든지 배울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만약 윤 직원이 오늘날 대한민국에 살고 있다면 어떨까요? 그는 아마 부동산 거부이자 전문가로서 강의를 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더 많은 부를 창출하겠지요. 하지만 그의 삶을 본받고 싶은 이는 많지 않을 것입니다. 구성원 간 신뢰를 깨뜨리고, 가정도 붕괴되고, 개인적 삶조차 도덕적 타락으로 얼룩진 그의 삶을 말입니다. 


부자라고 다 타락하는 것은 결코 아니겠지요. 하지만 더 큰 힘을 소유하는 것은 더 세밀한 균형을 요구합니다. 그의 말, 그의 행동 하나에 다른 사람들이 요동을 치게 됩니다. 그 큰 힘으로 다른 사람들을 해치지 않기 위해서라도 그는 자신을 조정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동시에 그는 무엇이든 할 수 있고 무엇이든 얻을 수 있습니다. 손만 뻗으면 가질 수 있는 것들이 넘쳐납니다. 그래서 자꾸 잊어버리기가 쉽습니다. 다른 사람들의 존재를,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그래서 돈이라는 힘을 아주 많이 가진 사람은 사실 행복해지기가 좀 더 어렵습니다. 행복은 혼자만 소유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다른 사람들과 함께 가는 것 그 자체이기 때문입니다. 아주 마음이 강하고 맑은 사람이 아니라면, 많은 돈을 갖고도 타락하지 않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돈을 무조건 배척하는 것이 옳을까요? 하지만 현대 사회에서 어쨌든 먹고 살기 위해서는 ‘황금 보기를 돌 같이’하는 것은 유리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럼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돈에 대한 지나친 긍정과, 지나친 부정 사이에서 답을 찾아야만 할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한 작품을 더 보도록 할까요. 가난 때문에 살인을 한 청년이 나오는 작품입니다.



2023.6.29



예전에 시리즈로 기획했던 글입니다.

내일은 독후감이 아니라 에세이로 돌아오겠습니다!:) 

작가의 이전글 남과 여에 대한 짧은 글 2편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