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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아람 Jun 06. 2024

학창 시절 이야기 3

실패와 퇴보, 그리고 성숙

그 후로 성적은 계속 조금씩 떨어지기 시작했다. 나의 자부심도 땅끝까지 하락했다. 내가 겪고 있던 수많은 스트레스로 인해 더 이상 나 자신을 온전히 지탱하기가 힘들었다. 마치 유리가 깨지듯이 파열음을 내며 내 삶이 조금씩 부서지는 느낌이었다. 그 이후 나는 남은 고등학교 2년 동안, 성장한 느낌을 받은 적이 없다. 다만 꾸역꾸역 몰려오는 온갖 시험들-수행평가, 쪽지시험, 중간고사와 기말고사, 모의고사, 그리고 마지막, 수능-을 간신히 쳐내고 있을 뿐이었다. 내신은 1등급 대를 유지했지만, 공부로 인해 자부심이 상승하는 경험은 극히 적었다.


그리고 수능 때 외국어 영역에서 실수를 해서 2등급을 받았다. 그래서 나는 결국 내가 원하던 대학에 가지 못하고 서울의 모 대학에 입학했다. 나는 이 글을 통해 학벌주의를 조장하고 싶은 건 아니다. 다만 특정 학교를 목표로 열심히 노력했던 당시의 내겐 너무나 아쉬운 결과였고, 오랫동안 그 일로 인해 슬프고 괴로웠다.


나는 내 패인이 무엇이었을까 여러모로 생각해 보았다. 그리고 목표에 대한 몰두와 일상의 행복 사이에서 균형을 잘 잡지 못했다는 것이 내가 실패한 이유가 아니었을까 생각했다. 특히 3년이라는 기간은 결코 짧은 기간이 아니다. 입시는 장기전이다. 장기전일수록, 목표만 추구하고 나머지 모든 것을 포기하는 것은 옳지 않다. 꾸준히 가려면 자신을 계속 보살피면서 가야 한다. 나의 경우라면 공부시간을 좀 희생하더라도 피부과를 다니고, 나를 괴롭혔던 친구와의 관계를 용기 있게 끊고, 요가나 운동도 열심히 하며 자신을 강인하게 유지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나 자신을 보살피는 일이었을 것이다.


악에 받친 목표를 위한 몰입도 좋다. 인생에서 한 번쯤은 꼭 필요한 과정이다. 하지만 길게 가선 안된다. 내가 생각하기에는 최장 1년이다. 오로지 목표만 생각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잃는 게 더 많아진다. 목표만을 위해 소중한 것들을 다 놓치고 나면, 결국 목표조차도 흐릿해질 만큼 심적으로 괴로워질 것이다. 가깝고 먼 사람들과의 인간관계를 잘 다져놓는 것도 중요하다. 내가 잘못 갈 때 그들이 잡아줄 수도 있다. 또한 좋은 목표를 향해 서로 끌어주며 가야 한다.


생각해 보면, 이 시기의 나는 주로 주변 사람들과 경쟁을 하면서 스스로 힘을 냈던 것 같다. 오기를 부리며, 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노력했다. 그러나 오기의 ‘오’ 자는 ‘미울 오’ 자다. 질투와 미움으로 지탱되는 에너지를 뜻한다. 그런 것들은 마치 스테로이드와 같다. 약인데 독이다. 그러니 아주 조심스럽게 써야만 한다. 너무 남용하면 본래의 일상의 소중함과, 자기 자신의 모습을 완전히 잃어버릴 수도 있다.


그리고 내가 또 깨달은 것은, 인간관계에서 내가 상처 입는 게 차라리 낫지, 남에게 상처를 주는 것이 더 힘들다는 것이다. 남자아이들의 인사를 무시하면서 내 마음은 오히려 깊은 상처를 받았다. 지금 생각하건대 그때 차라리 내가 인사를 받아주고 남자애들이 내 얼굴을 보며 놀라거나 싫어하는 반응을 보였다면, 마음이 덜 아팠을 것 같다. 아무 이유도 모른 채 무시를 받게 된 그들이 얼마나 기분 나빴을지를 생각하면서 죄책감에 시달리느니 말이다.  


너무 극단적인 예지만 셰익스피어의 극 <맥베스>에 나오는 맥베스 부인을 보라. 자신에게 친절했던 던컨 왕을 살해하고, 그 죄책감을 계속 부인하다가 오히려 맥베스보다 먼저 미쳐버리지 않는가. 물론 일상에서 남의 마음에 상처를 주는 것이 그토록 큰 죄는 아니기에 죄책감이 그렇게 강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우리의 양심은 상대가 아픈 만큼 우리에게도 아픔을 선사한다는 것이다. 상대를 크게 상처 줄 때, 오히려 스스로 더 큰 아픔을 받을 수도 있다. 다른 누구가 아닌 우리 자신을 위해, 다른 사람들의 마음에 상처를 주지 말자.


요즘, 나는 목표를 만드는 것이 두렵다. 고등학생 때처럼 온 힘을 다해 노력했다가 실패하는 것이 두렵다. 하지만 이제 그러한 안 좋은 기억들을 완전히 놓아버리고 새로운 마음으로 도전할 때가 된 것 같다. 온몸을 던져 노력했다면 항상 성공할 거라는 생각은 어찌 보면 무척 오만하다. 때론 온 힘을 다했어도 실패할 수도 있는 거다. 그러면 나의 경험에 실패해 본 경력이 하나 더 추가될 뿐, 내 인생이 완전히 실패자의 인생으로 치부되는 것이 아니다. 성공과 실패는 둘 다 계속해서 내 삶에 등장할 것이다. 나는 또다시 온 힘을 다해 도전할 것이다.


우리에게 성공하거나 실패할 새로운 기회를 허락하자. 우리에겐 매일 아침, 새로운 해가 뜨니까 말이다.


-완




읽어주신 분들 모두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저는 일주일만 쉬고 돌아오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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