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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아람 Jun 05. 2024

학창 시절 이야기 2

혼란의 사춘기

내가 수학의 정석을 홀로 읽으며 당면한 문제는, 수학의 정석이 고도로 함축적이고 학문적인 언어라는 점이었다. 분명 읽긴 읽었는데 무슨 말인지를 몰랐다. 이런 일은 독서 인생 16년 만에 처음이었다. 수학 기호가 보통 함축적인가. 그에 딸린 설명도 매우 시적(?)이었다. 그러니까 핵심만 딱 적혀있고, 미사여구가 거의 없었다.      

나는 골머리를 싸매며 하나하나 해독에 들어갔다. 예제 문제는 3분의 1 정도 맞혔다. 지금 생각해 보면 당연한 일이었는데, 나는 매우 큰 충격을 받았고, 고등학교에서 진도를 잘 따라가지 못하는 내 모습이 저절로 상상되었다. 친구 E는 수학의 정석 고1 편을 이미 다 뗐다고 들었기에 더 그러했다. 더욱 스트레스를 받으며 매일 공부에 매달렸다.     


그러다 보니 피부가 슬금슬금 안 좋아지기 시작했다. 주로 심한 스트레스 때문이었다. 하지만 나는 신경 쓰지 않았다. 반드시 좋은 성적을 받아 내가 원하는 대학에 가고 싶었다. 그러므로 지금은 공부에 집중하는 일이 더 중요했다. 나는 여자라면 누구나 갖고 있는 아름다움에 대한 욕망도 잠시 내려놓았다. 어떻게든 목표를 이루는 게 더 중요했다.      


방학이 거의 끝나갔다. 나는 마침내 정석 40강을 다 볼 수 있었다. 이상한 것이, 앞에서는 이해가 안 되어서 그냥 훑고 넘어갔던 것이, 뒤로 갈수록 이해가 되었다. 그러면 앞으로 돌아가서 설명을 다시 읽어 보았다. 문제도 다시 풀었다. 그러면 대개 맞히는 경우가 많았다. 좋은 현상이었지만, 앞으로 되돌아가야만 하니 시간이 많이 부족했다. 어찌 됐든 개학 전날, 겨우겨우 40강을 마쳤다. 머리가 개운했다. 자부심도 느껴졌다.

    

그런데 이제 개학을 해서 학교에 갈 일이 걱정이었다. 이제 얼굴은 꼴이 말이 아닐 정도로 피부가 안 좋았다. 사춘기 특유의 여드름으로 울긋불긋했다. 그제야 여자로서의 마음이 확 올라왔다. 그전까지 나름 친구들 사이에서 인기도 많았었는데, 같은 고등학교에 올라갈 친구들의 얼굴을 보기가 너무 창피했다. 부끄러워 딱 죽고 싶을 정도였다. 어찌 됐든 학교에 갈 수밖에 없었다.      


고등학교 여학생들은 외모를 많이 본다. 당시 내 외모는 내가 봐도 예쁘다고 하긴 어려웠다. 피부 때문에 내 성격은 급격히 소심하게 변했다. 공부라는 목적의식이 나를 버티게 해주는 유일한 것이었다. 그 와중에 나와 중학교 3학년 때 같은 반이었던 남자아이들이 나에게 인사한 적이 있었다. D는 나와 다른 고등학교에 갔는데, 밤중에 멀리서 나를 어떻게 알아봤는지 내 이름을 불렀다. 나는 가까이 가서 인사하고 싶지 않았다. 가로등이 두려웠다. 내 얼룩덜룩한 얼굴이 보일 테니까 말이다.      


그래서 나는 모른 척하고 걸음을 빨리 했다. D가 다시 한번 나를 불렀지만 나는 그냥 무시하고 지나갔다. 집에 돌아오니 마음이 엉망이었다. 미안함과 죄책감으로 범벅이 되었다. 또 다른 남자아이 K는 무려 세 번을 날 불렀다. K는 나와 같은 학교였기 때문에, 학교 현관에서 한 번, 복도에서 마주쳤을 때 한 번, 마지막은 식당에서 한 번 불렀다. 그런데 나는 정말로, 정말로 K에게 얼굴을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조금 호감이 있는 애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최대한 몸을 돌리고 무시했다. 매번 친구들하고 얘기하는 척을 했다.   

  

K는 아마 상처를 좀 받았을 거라고 짐작한다. 하지만 내가 받은 상처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였다. 좋아하던 애에게 인사조차 건넬 수 없는 내가 너무나 싫었고, 지나친 죄책감으로 괴로워했다. 어느 정도였느냐 하면 나를 끈질기게 부른 K가 원망스러울 지경이었다. K가 부르지 않았다면 내가 그토록 무시할 일도 없었을 텐데. 아마 K는 그때 일을 다 잊었을 테지만, 나는 고등학교를 다니던 내내 계속 K가 마음에 걸렸다. 몇 년이 지나도 그대로였다. 너무나도 미안했다.      


한편 반에서는 나를 괴롭히는 여자애가 있었다. 날 괴롭히던 그 애, Q는 자격지심과 질투심이 많은 아이였다고 생각된다. 내 모든 것을 사사건건 따지고 들었다. 예를 들면 함께 짝이 되어 같은 책상에 앉을 때였다. 나는 오른쪽에 앉아 있었고 그애는 왼쪽에 앉아 있었다. 그런데 내가 내 자리의 왼쪽, 즉 책상 가운데쯤에 책을 쌓아놓았다. 그러자 그애는 화를 냈다. 자신과 거리를 두며 멀어지려 한다고 말이다. 나는 어이가 없었다. 책을 놓을 곳이 없어서 쌓아놓은 것뿐인데 말이다.     


그런 일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처음엔 화가 나고 황당해하던 나는 계속 그런 일이 반복되자 움츠러들기 시작했다. 내가 얼굴이 깨끗했다면 본래 있던 자신감이 그대로 남아있었을 거고, 그런 애한테 정신적으로 지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나는 스스로가 부끄러웠고, 매번 나를 상처 주거나 수치스럽게 하는 Q에게 말 한마디 제대로 하지 못했다.      


친했던 남자아이들과 모두 연이 끊어지고, 내 외모로 인해 여자애들이 모두 날 무시했던 그때는 부모님과도 사이가 많이 안 좋았다. 특히 아버지께선 내게 사사건건 잔소리를 많이 하셨는데, 안 그래도 지칠 대로 지친 내 마음은 그걸 잘 받아들이지 못했다. 그런 와중에 입시 스트레스도 고스란히 내 몫이었다. 하지만 결코 공부를 놓지는 않았다. 아니, 공부만이 나를 버티게 해주는 유일한 것이었다.      


오만가지 스트레스를 받으며 꾸역꾸역 공부하던 1학년 2학기 마지막 모의고사에서, 나는 전국에서 46등을 했다. 나는 무척 기뻤다. 이대로 쭉 이어간다면 내가 원하는 대학에 갈 수도 있는 성적이었다. 하지만 그 당시 나와 사이가 안 좋았던 아버지께선 내 성적에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셨다. “더 열심히 해라”가 내가 들은 말이었다. 나중에 이 모든 일을 털어놓았을 때, 우리 아버지께선 내가 혹시라도 너무 오만해질까 봐 하셨던 말씀이었다고 하셨다. 나도 이제는 이해가 간다. 그러나 “정말 잘했다”라며 부모님의 환하게 웃는 모습만을 생각하며 공부해 왔던 내게, 그 일은 너무나도 큰 상처가 되었다.      


어쩌면 그건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큰 상처였다.      


-3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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