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매를 키우며, 비교는 어른의 언어라는 걸 알았다

아이들은 태어날 때부터 달랐다.

by 완성되지않은어른

남매를 키우다 보면 비교는 생각보다 쉽게 등장한다.

누가 더 빠른지,

누가 더 잘하는지,

누가 더 말을 잘 듣는지.


나는 비교하지 않겠다고 여러 번 다짐했지만,

말보다 먼저 마음이 움직였다.

같은 상황에서도 아이들의 반응이 다를 때면,

기준을 세우고 싶은 마음이 고개를 들었다.

공평함이라는 이름으로,

사실은 비교에 기대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아이들은 태어날 때부터 달랐다.

같은 공간에서 자라지만,

관심을 두는 방향도 다르고 감정을 처리하는 방식도 달랐다.

그 차이는 자연스러웠다.


문제는 그 차이를 해석하는 어른의 시선이었다.

나는 종종 한 아이의 모습을 기준으로 다른 아이를 바라보고 있었다.

“누나는 이쯤 했었는데”,

“동생은 조금 더 잘하잖아”

같은 말들이 머릿속을 스쳤다.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아도, 그 비교는 태도로 전해졌다.


아이들 사이에는 어른이 모르는 질서가 있었다.

놀이의 규칙을 정하는 방식,

다툼을 끝내는 타이밍,

양보와 고집의 균형까지.


어른의 눈에는 혼란처럼 보이던 장면들이,

아이들 사이에서는 자연스럽게 흘러갔다.

내가 개입하지 않았을 때, 아이들은 종종 스스로 정리했다.

그 모습을 보며 생각했다.

혹시 비교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도구가 아니라,

어른의 불안을 가리기 위한 언어가 아닐까 하고.


비교가 시작되는 지점은 늘 어른이었다.

아이들은 서로를 경쟁 상대로 규정하지 않았다.

다만 각자의 방식으로 관계를 맺고 있었다.


비교는 아이들 사이에서가 아니라, 어른의 해석에서 만들어졌다.

나는 그 사실을 인정하는 데 시간이 걸렸다.

비교를 멈춘다는 건, 통제의 일부를 내려놓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관찰자가 되어보기로 했다.

바로 개입하지 않고,

평가하지 않고,

결론을 서두르지 않는 자리로 물러섰다.


아이들의 관계를 문제로 보지 않고, 과정으로 바라보려 애썼다.

그 자리에서 나는 아이들보다 나 자신을 더 많이 보게 되었다.

언제 내가 불안해지는지,

어떤 순간에 기준을 들이대는지,

그 습관이 어디서 왔는지를.


관찰은 쉬운 선택이 아니었다.

가만히 지켜보는 일은 책임을 회피하는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었다.

하지만 아이들은 그 시간 속에서 자신들만의 속도로 균형을 찾아갔다.

다투기도 하고, 금세 웃기도 했다.

그 변화는 어른의 비교가 아니라, 아이들의 경험에서 나왔다.


남매를 키우며 나는 알게 되었다.

비교를 멈춘 자리에 남는 것은 공백이 아니라, 관계를 바라볼 여유라는 것을.


아이들은 서로 다르다는 사실만으로 충분했다.

그 다름을 문제로 만들지 않는 태도가, 내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역할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도 나는 완전히 비교에서 자유롭지 않다.

다만 그 비교가 입 밖으로 나오기 전에, 한 번 더 멈추려 한다.

아이들의 관계를 해석하는 사람이 아니라, 지켜보는 어른으로 남기 위해서다.


남매를 키우는 시간 속에서, 나는 비교를 내려놓는 연습을 하고 있다.

그 연습은 아이들을 위한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 나 자신을 조금 덜 불안하게 만드는 일이기도 하다.



작가의 이전글아이 덕분에 나는 기다리는 법을 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