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불안은 구체적인 형태를 갖추지 않았다.
아이를 키우며 가장 자주 마주하는 감정은 사랑이나 기쁨이 아니라, 설명하기 어려운 불안이었다.
분명히 큰일이 일어난 것도 아니고,
당장 해결해야 할 문제가 있는 것도 아닌데 마음 한쪽이 늘 조용히 긴장해 있었다.
아이가 잠들어 있어도,
웃고 있어도,
그 불안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마치 언제든 불려 나갈 준비를 하고 있는 사람처럼,
나는 늘 한 발 앞서 걱정하고 있었다.
그 불안은 구체적인 형태를 갖추지 않았다.
다치지 않을까,
뒤처지지 않을까,
혹시 내가 놓치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질문들이 막연하게 떠올랐다.
답을 찾을 수 없는 질문들이었고, 그래서 더 오래 마음에 머물렀다.
나는 그 불안을 없애기 위해 더 많이 알고, 더 많이 준비하려 했다.
통제할 수 있는 범위를 넓히면 불안도 줄어들 거라고 믿었다.
하지만 아이는 늘 내 예상 밖으로 자랐다.
계획했던 방식대로 움직이지 않았고, 설명해둔 방향으로만 가지 않았다.
그럴 때마다 불안은 형태를 바꿔 다시 나타났다.
이번에는 내가 잘하고 있는지에 대한 의심으로.
부모가 된다는 건,
모든 상황에 대비하는 사람이 되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그제야 조금씩 알게 되었다.
어느 순간부터 나는 불안을 감추는 데 익숙해져 있었다.
아이 앞에서는 괜찮은 얼굴을 하고, 걱정은 혼자 삼켰다.
불안을 드러내면 아이에게 짐이 될 것 같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게 쌓인 감정은 결국 다른 모습으로 흘러나왔다.
사소한 일에 예민해지고, 필요 이상으로 개입하게 되는 날들이 늘어갔다.
불안을 숨기지 않는 어른이 된다는 건,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었다.
불안을 그대로 말한다는 건, 통제하지 못하는 상태를 인정하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천천히 그 사실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아이를 완벽하게 지킬 수 없고, 모든 선택의 결과를 예측할 수도 없다는 것을.
그 인정은 패배처럼 느껴졌지만, 동시에 숨이 트이는 순간이기도 했다.
아이에게 불안을 설명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만 불안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으려 애쓰는 어른의 모습은 남길 수 있다고 느꼈다.
불안이 없어서가 아니라, 불안과 함께 살아가는 태도 말이다.
나는 아이 앞에서 모든 것을 알고 있는 사람일 필요는 없었다.
대신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면 충분했다.
부모가 된다는 건,
불안을 없애는 일이 아니라 그 불안을 안고 하루를 살아내는 일이었다.
여전히 나는 아이를 생각하며 걱정한다.
다만 그 걱정이 나를 앞서가게 두지 않으려 한다.
불안이 방향을 정하게 하기보다, 잠시 곁에 머물도록 두는 연습을 하고 있다.
설명되지 않는 불안은 여전히 내 곁에 있다.
하지만 그 불안 덕분에 나는 조금 더 조심스러운 사람이 되었고, 조금 더 솔직한 어른이 되었다.
아이를 키우며 나는 불안을 다루는 법을 배우고 있다.
숨기지 않고,
부정하지 않고,
그렇다고 끌려가지도 않으면서.
그 연습은 오늘도 계속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