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순간부터는 나에 대한 이야기로 남았다.
아이를 키우는 일은 언제나 아이에 관한 이야기로 시작되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나에 대한 이야기로 남았다.
무엇을 가르쳤는지보다,
무엇을 내려놓았는지가 더 또렷하게 기억에 남았다.
공평해야 한다고 믿었던 기준,
옳음을 설명하려 애쓰던 말들,
완벽한 부모가 되겠다는 다짐까지.
아이와 함께한 시간은 그 믿음들을 하나씩 흔들어 놓았다.
처음에는 변화가 눈에 띄지 않았다.
다만 이전보다 덜 확신에 찬 사람이 되었고,
말하기 전에 한 번 더 멈추는 어른이 되었다.
아이의 속도를 재촉하던 손을 거두고,
설명하지 못한 감정을 그대로 두는 연습을 했다.
그 모든 선택은 아이를 위한 것처럼 보였지만,
사실은 나 자신을 다시 배우는 과정에 가까웠다.
부모가 되기 전의 나는 늘 정답을 찾으려 했다.
옳은 방향이 있고, 그 길을 잘 안내하면 된다고 믿었다.
하지만 아이는 정답보다 질문에 가까운 존재였다.
그 앞에서 나는 자주 망설였고, 그 망설임 속에서 이전에는 보지 못했던 나의 모습들을 마주했다.
조급해지는 순간, 불안해지는 이유, 쉽게 흔들리는 기준들까지.
아이를 키우며 나는 기다리는 법을 배웠고,
비교를 멈추는 연습을 했으며,
불안을 숨기지 않는 어른이 되는 법을 조금씩 익혔다.
그 과정에서 알게 된 건,
부모가 된다는 일이 단단해지는 방향으로만 나아가는 건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오히려 유연해지고,
덜 확신하며,
더 많이 돌아보는 쪽에 가까웠다.
완성된 어른이 되겠다는 목표는 어느새 사라졌다.
대신 흔들리면서도 다시 중심을 찾는 사람으로 남고 싶어졌다.
아이 앞에서 완벽한 모습보다는, 생각하고 고쳐 나가는 태도가 더 오래 남을 거라고 믿게 되었다.
실수 이후에 무엇을 선택하는지가 관계를 만든다는 사실도 그때서야 조금 이해할 수 있었다.
연재를 쓰는 동안 나는 아이의 성장보다 나의 변화를 더 자주 돌아보았다.
아이는 자신의 속도로 자라고 있었고,
나는 그 곁에서 조금 다른 어른이 되어가고 있었다.
부모가 된다는 건, 누군가를 키우는 동시에 자신의 미완성을 계속 마주하는 일이었다.
그 미완성은 부끄러움이 아니라, 계속 배울 수 있다는 증거처럼 느껴졌다.
지금의 나는 여전히 부족하다.
여전히 조급해지고,
여전히 불안해진다.
하지만 예전과 다른 점이 있다면,
그 감정들을 서둘러 정리하려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완성되지 않은 상태로도 관계를 이어갈 수 있다는 사실을,
아이를 통해 배웠기 때문이다.
나는 아이를 키우며 나 자신을 다시 키우고 있다.
그 과정은 조용하고 느리지만, 분명한 방향을 가지고 있다.
더 나은 부모가 되기보다는,
더 솔직한 어른으로 살아가는 쪽으로.
이 연재의 끝에서 내가 남기고 싶은 말이 있다면, 아마 이것일 것이다.
우리는 모두 완성되지 않은 채로 누군가의 곁에 서 있다.
그리고 그 상태로도 충분히, 함께 자라갈 수 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