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 일도 아닌데 괜히 서두른 것 같다는 생각이었다.
아이를 키우기 전의 나는 속도가 빠른 편이라고 생각했다.
결정도 빠르고,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데 망설임이 없었다.
일이든 관계든 흐름이 막히는 걸 견디지 못했고, 기다림은 비효율에 가까운 태도라고 여겼다.
그래서 아이와 함께하는 시간에도 자연스럽게 어른의 속도를 기준으로 삼았다.
준비는 빨리, 판단은 즉시, 결과는 분명하게. 그게 아이를 돕는 길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아이의 하루는 늘 그 기준에서 어긋났다.
신발을 신는 데 시간이 오래 걸렸고, 질문에 바로 답하지 않았으며,
마음을 정리하는 데는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해 보였다.
나는 자주 다음을 재촉했고, 그럴 때마다 아이의 표정은 조금씩 닫혀갔다.
그 순간을 지나고 나면, 늘 비슷한 감정이 남았다.
아무 일도 아닌데 괜히 서두른 것 같다는 생각이었다.
조급함은 생각보다 쉽게 관계를 건드렸다.
빨리 하라는 말은 결국 아이의 속도를 부정하는 말이 되었고,
기다리지 못하는 태도는 아이에게 자신이 부족하다는 신호로 남았다.
나는 그 사실을 머리로는 알고 있었지만, 몸이 먼저 반응하는 습관은 쉽게 바뀌지 않았다.
기다린다는 건, 생각보다 많은 에너지를 요구하는 일이었다.
어느 날 아이가 한참을 망설이며 말을 꺼내려다 결국 포기한 적이 있다.
나는 그 이유를 나중에서야 알게 되었다.
내가 대답을 기다려주지 않았다는 사실을.
그날 이후, 나는 아이 앞에서 말을 멈추는 연습을 하기 시작했다.
바로 개입하지 않고, 상황을 정리하려 들지 않고, 잠시 머무르는 연습이었다.
기다림은 즉각적인 변화를 가져오지 않았다.
여전히 답답한 순간은 많았고, 내 속도는 자주 앞으로 나갔다.
하지만 기다리기로 마음먹은 날들이 쌓이자, 조금 다른 장면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아이는 자신의 방식으로 설명을 시작했고, 말이 느려도 끝까지 이어갔다.
나는 그 흐름을 끊지 않기 위해 숨을 고르게 되었다.
기다림이 주는 뜻밖의 안정감은, 아이보다 나에게 먼저 찾아왔다.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불안했던 순간들이, 가만히 있어도 괜찮은 시간으로 바뀌었다.
아이의 속도에 맞추는 일이 나를 늦추는 게 아니라, 오히려 나를 단단하게 만든다는 느낌이 들었다.
부모가 된다는 건, 아이를 앞세워 끌고 가는 일이 아니라
옆에 서서 같은 방향을 바라보는 일에 가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다림은 뒤처짐이 아니라, 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선택이었다.
나는 여전히 급한 사람이고, 여전히 실수를 한다.
하지만 적어도 아이 앞에서는 잠시 멈출 줄 아는 어른이 되고 싶어졌다.
아이 덕분에 나는 기다리는 법을 배웠다.
그 기다림은 아이를 위한 연습처럼 보였지만, 결국 나 자신을 위한 시간이 되었다.
속도를 늦춘 자리에서, 나는 이전보다 조금 더 안정된 사람이 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 변화는 생각보다 오래, 조용히 나를 따라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