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낳고 나서야,나의 어린 시절을 다시 보게 되었다

어느새 나는 아이가 아니라 어린 시절의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by 완성되지않은어른

아이를 키우기 전까지 나는 내 어린 시절을 비교적 단순하게 정리해두고 살았다.


부족한 것도 있었고, 충분했던 것도 있었지만 이미 지나간 시간이라고 생각했다.

그 기억들은 더 이상 현재의 나와 크게 상관없는 이야기처럼 느껴졌다.

부모가 되기 전까지는, 과거를 굳이 다시 들여다볼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그런데 아이를 키우기 시작하면서, 오래 묻어두었던 장면들이 불쑥불쑥 떠오르기 시작했다.


아이가 울음을 터뜨리는 순간,

말없이 등을 돌리는 순간,

이유 없이 투정을 부리는 순간마다


낯설지 않은 감정이 겹쳐졌다.


그 감정의 출처를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나는 아이가 아니라 어린 시절의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특히 이해되지 않았던 장면들이 다시 떠올랐다.


왜 그때 부모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을까,

왜 그런 선택을 했을까,

왜 나의 마음을 더 살피지 못했을까.


예전에는 서운함으로만 남아 있던 기억들이,

부모가 된 지금에 와서는 전혀 다른 얼굴로 다가왔다.


그날의 부모는


아마도 나처럼 피곤했을 것이고,

나처럼 망설였을 것이며,

나처럼 최선과 차선 사이에서


흔들렸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를 재우다 문득 멈춰 선 적이 있다.

조용한 방 안에서 아이의 숨소리를 듣고 있는데,

어릴 적 내 방의 공기가 떠올랐다.


그때 나는 부모가 밖에서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전혀 알지 못했다.


그저 기다리는 아이였고, 지금의 나는 그 기다림을 견디는 어른이 되었다.

같은 공간이었지만, 서 있던 위치는 전혀 달랐다.


이해는 갑작스럽게 찾아오지 않았다.

오히려 아주 작은 순간들 속에서 조금씩 쌓였다.


아이에게 해준 말이 곧바로 내 마음을 찔러 되돌아올 때,

아이를 달래다 나 스스로를 다독이게 될 때,


나는 세대가 바뀌어도 감정의 방식은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되었다.


다만 표현하는 언어와 선택하는 방식만이 조금씩 달라질 뿐이었다.


부모를 이해하게 되었다고 해서 과거의 모든 감정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여전히 서운한 기억은 남아 있고, 설명되지 않는 감정도 있다.

하지만 이제는 그 기억들을 조금 더 넓은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부모 역시 처음이었고, 준비되지 않은 채 어른이 되었을 뿐이라는 사실을 인정하게 되었다.


아이를 키우며 나는 자주 나 자신의 어린 시절을 만난다.


그때의 내가 무엇을 원했는지,

무엇이 부족했는지,

무엇을 말하지 못했는지를 조금씩 알게 된다.


그리고 그 깨달음은 자연스럽게 현재의 육아로 이어진다.

아이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어쩌면 과거의 나에게 가장 먼저 건네고 싶은 말일지도 모른다.


세대는 이어지지만, 감정은 반복된다.


다만 그 반복 속에서 무엇을 남길지는 지금의 내가 선택할 수 있다.

나는 여전히 완벽한 부모는 아니지만, 적어도

아이를 통해 나 자신의 과거를 외면하지 않는 어른이 되었다.


아이를 낳고 나서야 비로소, 나는 나의 어린 시절을 다시 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시간은 생각보다 조용하지만, 오래 남는 변화로 다가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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