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실제의 나는 생각보다 자주 흔들렸다.
부모가 되기 전에는 ‘좋은 부모’라는 말이 비교적 선명하게 느껴졌다.
아이에게 화내지 않고,
늘 일관된 태도를 유지하며,
감정적으로 흔들리지 않는 사람.
책과 글 속에서 만난 그 모습은 충분히 따라갈 수 있을 것 같았다.
노력의 문제라고 생각했다.
조금 더 참고, 조금 더 준비하면 될 일이라고 여겼다.
하지만 실제의 나는 생각보다 자주 흔들렸다.
피곤한 날에는 목소리가 먼저 높아졌고,
여유가 없을 때는 아이의 말이 귀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그러고 나면 늘 같은 순서가 반복되었다.
이미 지나간 상황을 떠올리며 혼자 반성하고,
다음엔 그러지 말자고 다짐하는 일.
좋은 부모가 되기 위한 다짐은 쌓여갔지만, 몸과 마음은 점점 무거워졌다.
완벽한 부모상을 좇던 시기에는 늘 부족하다는 기분이 따라다녔다.
아이를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생각과,
동시에 잘하고 있지 못하다는 느낌이 함께 존재했다.
그 간극에서 나는 쉽게 지쳤다.
아이를 사랑하는 마음과는 별개로,
부모 역할을 수행하는 내가 버거워지는 순간들이 있었다.
어느 날 아이와 사소한 일로 언성이 높아진 적이 있다.
상황은 금방 정리되었지만, 아이의 표정이 계속 마음에 남았다.
잠자리에 들기 전, 나는 조심스럽게 아이에게 말했다.
“아까는 엄마가 미안했어.”
그 말은 생각보다 입 밖으로 나오기까지 오래 걸렸다.
부모가 아이에게 사과하는 장면은, 여전히 어색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이는 짧게 고개를 끄덕였고,
그 대화는 그걸로 끝이었다.
특별한 감동도, 극적인 화해도 없었다.
다만 그날 이후, 나의 마음이 조금 달라졌다.
미안하다는 말을 했다는 사실보다, 그 말을 할 수 있었던 내가 낯설게 느껴졌다.
나는 그동안 부모로서의 권위 뒤에 숨어, 사과를 미뤄두고 있었던 건 아닐까.
사과는 관계를 약하게 만들지 않았다.
오히려 그 반대였다.
아이는 내 사과를 통해 내가 실수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되었고,
나는 아이 앞에서 조금 덜 긴장하게 되었다.
완벽하려 애쓰지 않아도 된다는 안도감은, 생각보다 큰 여백을 남겼다.
자주 미안해지는 사람은, 반드시 잘못만 하는 사람은 아니었다.
오히려 자신의 상태를 돌아볼 줄 아는 사람에 가까웠다.
나는 여전히 실수를 하지만, 그 실수를 외면하지 않으려 한다.
아이에게 옳은 모습을 보여주기보다,
흔들리면서도 다시 돌아오는 어른의 모습을 남기고 싶어졌다.
좋은 부모가 되는 일은 여전히 어렵다.
다만 이제는 그 기준이 조금 달라졌다.
아이 앞에서 실수하지 않는 사람이 아니라, 실수 이후의 태도를 숨기지 않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래서 나는 여전히 자주 미안해진다.
그 미안함이 아이에게 부담이 되지 않기를 바라면서,
동시에 관계를 단단하게 만드는 작은 진심이 되기를 바란다.
부모가 된다는 건, 아이를 가르치는 일인 동시에 나 자신을 다시 배우는 일이었다.
완벽함을 내려놓고 나서야 비로소 할 수 있게 된 말이 있다.
“미안해.”
그 말 하나로 모든 것이 해결되지는 않지만,
적어도 나는 그 말 앞에서 조금 더 솔직한 사람이 되었다.
그리고 그 정도의 변화라면, 지금의 나에게는 충분하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