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제야 나는 조금씩 말을 줄이기 시작했다.
아이를 키우기 전의 나는 말로 설명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이유를 알려주면 이해할 거라고 믿었고,
옳고 그름을 분명히 말해주면 아이는 자연스럽게 따라올 거라 여겼다.
어른이 된다는 건 그렇게 하나씩 배워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훈육이 필요할 때면 늘 말을 먼저 꺼냈다.
왜 그러면 안 되는지,
왜 이렇게 해야 하는지,
내가 알고 있는 가장 논리적인 방식으로 설명했다.
하지만 아이 앞에서 그 말들은 자주 힘을 잃었다.
아이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같은 상황은 반복되었다.
설명은 충분했는데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다.
그때마다 나는 말을 더 보탰다.
표현을 바꾸고,
예시를 들고,
목소리를 낮추거나 높였다.
옳은 말은 점점 많아졌지만,
아이와 나 사이의 거리는 조금씩 멀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어느 날은 아이가 내 말을 듣지 않는다는 사실보다,
내가 계속 말하고 있다는 사실이 더 크게 느껴졌다.
아이는 말없이 내 얼굴을 바라보고 있었고,
나는 그 시선을 외면한 채 여전히 설명을 이어가고 있었다.
그 순간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혹시 이 말들은 아이를 위한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을 안심시키기 위한 건 아닐까 하고.
아이에게 옳은 말을 하는 건 생각보다 쉬운 일이었다.
어른으로서 알고 있는 기준과 규칙을 전달하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말이 아이에게 닿는지는 전혀 다른 문제였다.
아이는 말의 내용보다 말하는 사람의 태도를 먼저 느끼고 있었다.
내가 조급해질수록, 아이는 더 닫혀갔다.
내가 옳음을 증명하려 할수록, 아이는 그 말에서 멀어졌다.
그제야 나는 조금씩 말을 줄이기 시작했다.
바로 설명하지 않고, 잠시 기다려보았다.
잘못된 행동을 바로잡기보다, 아이의 얼굴을 먼저 살폈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고민하기보다,
어떤 상태로 그 앞에 서 있는지가 더 중요하다는 걸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아이는 내가 무엇을 말하는지보다, 내가 어떤 어른으로 서 있는지를 보고 있었다.
말을 덜 하자, 신기하게도 아이의 반응이 달라졌다.
여전히 완벽하지는 않았지만, 이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다가왔다.
아이는 질문을 하기 시작했고, 자신의 감정을 말로 꺼내기 시작했다.
그때 나는 깨달았다.
옳은 말이 아이를 바꾸는 게 아니라,
아이가 말할 수 있는 여백이 관계를 바꾼다는 사실을.
부모가 된다는 건, 더 많은 답을 주는 사람이 되는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히려 답을 덜 말하고,
질문을 견딜 줄 아는 사람이 되는 일에 가까웠다.
아이는 아직 정리되지 않은 마음으로 세상을 배우고 있는데,
나는 너무 빨리 정리된 말만 건네고 있었던 건 아닐까.
요즘의 나는 예전보다 옳음을 덜 말한다.
대신 실수하는 모습을 숨기지 않고, 미안하다는 말을 아끼지 않는다.
아이 앞에서 완벽한 어른이 되려 하기보다, 생각하는 어른으로 남으려 애쓴다.
말보다 태도가 먼저 배운다는 사실은, 아이보다 나에게 더 큰 숙제처럼 남아 있다.
아이를 키우며 나는 여전히 많은 말을 하고 있다.
다만 그 말들은 이전과는 다른 방향을 향하고 있다.
옳음을 증명하기 위한 말이 아니라, 함께 머물기 위한 말에 가깝다.
아마도 아이는 그 말의 내용을 오래 기억하지는 않을 것이다.
대신, 그 말을 하던 어른의 얼굴과 온도를 기억하게 되지 않을까.
나는 그 정도면 충분하다고, 이제는 생각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