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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사 May 06. 2021

영화 <사도>, 보기 전 알면 좋을 지식들 (4)

경종 2편- 연잉군으로 살아남기

왕의 동생인 내가 역적의 아이돌이자 반역수괴로 몰려버렸다?!의 주인공 연잉군...

노론의 아이돌인 그의 모가지는 노론의 모가지가 다 떨어져나가는 지금 어떻게 됐을까?


아이돌이고 나발이고 살아남고 싶은 의지로는 제일가는 연잉군은 목호룡이 고변을 한 바로 다다음날 사위(세제 자리 그만두겠다고) 선언을 한다.

세제가 목호룡의 초사(招辭) 아래 조항에 핍박하는 말이 있다 하여 크게 불안해 하며 조신(朝臣)의 숙배 단자(肅拜單子;임금께 인사를 올리는 글)를 물리치고, 사위(辭位)하려고 하기에 이르렀으므로 (...)

3월 29일의 기록이다. 목호룡의 고변을 받자마자 바닥에 바싹 붙어 싹싹 기고 있다. 물론 당연히 그가 이런 식으로 사위한 것은 원데이투데이가 아니다.

그는 세제로 책봉되었을 때도 못 하겠다 하고

+대리청정시키겠다 할 때도 못 하겠다 하고

+소론 측에서 모함이나 사건을 벌일 때도 못 하겠다 했다.


물론 이런 내용으로 연잉군은 의지박약... 이런 이야기를 하고자 한 것은 아니다. 

의지박약 아니야...!

그가 경종에게 할 수 있는 최대한으로 발발 기는 모습이 이 모습인 것뿐이다. 나는 왕 자리에 욕심 없고 그냥 소시민 왕자일 뿐이고 어쩌구저쩌구...를 상소 등등 구구절절한 말과 글이 아니라 행동으로 보일 수 있는 방법인 것. 연잉군이 못하겠다 안하겠다 난 욕심없다 라고 경종에게 호소하는 내용은 너무나 많아서 다 기사 끌어와서 말하다간 1만자 나오기 때문에 생략함.


목호룡의 공초 끝에 동궁을 핍박하는 단서가 되는 말이 있었으므로, 국청(鞫廳)의 추안(推案)에는 삭제해 버리고 기록하지 않았다. (중략)
여러 적의 무리가 스스로 위태하여 두렵게 여기는 마음으로 반역을 도모하였을 뿐이니, 그 무엇이 동궁에게 관계가 있겠으며, 또 무슨 밝힐 만한 심사가 있겠는가?

참고로 연잉군은 결국 즉위는 하게 되었기 때문에 기록 말미에는 이런 구구절절함이 들어 있다... 

영조 즉위 중에 경종실록 작업하니까 뭐 당연한 내용이기도 하다...

역적수괴가 될 뻔한 우리 전하를 경종실록으로부터 지켜야 하는 사관들


왕세제께서 지난번에 목호룡의 초사(招辭) 말단의 말을 불안한 단서로 여기셔서 심지어 궁료(宮僚)들에게 하령(下令)하시기에 이르렀습니다. 그때 신이 청대하여 아뢴 말을 삼가 생각하건대 기억하고 계실 것입니다. 그런데 서연(書筵)의 소대(召對)를 오랫동안 정지하고 계시니, 어찌 전날 일에 아직 풀리지 않은 것이 있어서 그런 것이 아니겠습니까? 신이 이번에 청대한 것은 오로지 이 일 때문입니다.

(중략)동궁(東宮)은 곧 전하의 개재(介弟;남의 아우의 존칭.)이신데, 옛말에 이르기를, ‘얻기 어려운 것이 형제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삼가 생각하건대 성상께서는 효우(孝友;부모에게 효성이 있고 형제에게 우애가 있음.) 하신 마음을 가지고 계시니, 지금 만약 ‘안심하고 서연(書筵)을 열라.’는 뜻으로 간곡하게 개유(開諭)하신다면, 동궁께서 어찌 우러러 본받지 않겠습니까? 삼가 바라건대 각별히 유념하소서." 하였다. 

(중략) 임금이 말하기를, "좋다."하였다.
전하 목호룡 이후 서연 소대(왕세자 교육)도 안 여시구 좀 그래용... 세제께서는 목호룡 사건에서 당신 이름 거론된다고 불안해 죽겠다구 계속 그러시자나용....안그래도 이러케 불안하다구 눈칫밥 계속먹고있던데진짜로 역모는 별관련없으신것같구...서연이라도 열라고 말이라도 한번 해주시면 안될까용.....ㅎㅎㅠㅠ

경종 2년 4월 9일의 일이다. 

소론 완론(온건파)의 영수, 영의정 조태구가 나름대로 중재하는 부분이다. 

연잉군이... 안타까워 보이긴 했나 보다... 이 사람은 세제의 대리청정도 꾸준히 반대한 사람임에도 이런 말을...

본문의 상황

이쯤 되니까 점점 영화 <사도>의 배경지식이라는 제목이 무색해지고 있는데...여기까지도 어쨌든 들어놓으면 다 쓸모있다. 영화에서 언급 될 것이다.

진짜임.


그리고 이 부분은 영화 작중에 언급되는 부분이 잘 보이기 때문에(자극적이라서 그런지 자주 나와서 그런지) 더 중요하다. 영조가 평생 꼬리표로 달게 된 기록이라, 남의 입에서든 영조의 입에서든 들릴 일이다. 

어쨌든, 경종은 즉위 4년즈음 들어 급격히 건강이 악화되기 시작한다. 조금 과장을 더하자면 더 손쓸 틈도 없이. 경종은 8월 말 사망하는데, 7월 중의 기록에는 임금에게 병환이 있어 약방에서 날마다 문진한다 하니 그 전조가 보인다. 하지만 기록이 잦지는 않다. 대충 제목만 볼 때는 한두 번? 그러나 8월 2일에 들어 임금의 병이 위급해졌다는 기록이 시작된다. 이때부터 진행이 빨라진다. 이때 실록에서는 경종이 세자 시절부터 계속된 우환이 있어 마음의 병이 몸의 병을 키웠다는 진단을 한다.

21세기의 내가 봐도 맞는 것 같기는 하다 불쌍한 경종...


임금의 병환이 계속 여러 날 동안 낫지 않아 수라 올리는 것마저 싫어하였는데, 이에 이르러서는 또 한열(寒熱)의 징후가 있어 약방(藥房)에서 입진(入診)하고 약을 의논하여 시진탕(柴陳湯)을 지어 올렸다. 임금이 동궁(東宮)에 있을 때부터 걱정과 두려움이 쌓여 마침내 형용하기 어려운 병을 이루었고, 해를 지낼수록 깊은 고질이 되었으며, 더운 열기가 위로 올라와서 때로는 혼미한 증상도 있었다.
전하 컨디션이 별로라 밥도 안 드시던데 열까지 나시더라. 약방에서 약 드렸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간중간 혼수상태 오시기도 함. 
근데 아마 세자시절부터 눈칫밥 드셔서 속에 병 쌓으신 것도 영향 있을 듯... 

경종 4년 8월 2일의 기록이다. 

3일에는 여기서 말한 한열이 더욱 심해진다는 기록이 있다.

8일에도 이가 그치지 않는다 함. 

16일부터는 거의 병환에 관한 기사뿐이다.

그리고 이 날짜에서 거의 열흘도 되지 않아 경종이 승하한다. 


약방에서 입진(入診)하고 여러 의원들이 임금에게 어제 게장을 진어하고 이어서 생감을 진어한 것은 의가(醫家)에서 매우 꺼려하는 것이라 하여, 두시탕(豆豉湯) 및 곽향정기산(藿香正氣散)을 진어하도록 청하였다.
약방에서 진단했는데 어제 게장이랑 생감 먹인거 건강에 최악이라더라. 어쨌든 이런저런 약을 드렸음.

경종 4년 8월 21일의 기록이다.

이 기사에서는 게장과 생감의 조합이 한의학적으로 구리단 것을 알 수 있다. 16세기 명나라에서 이시진이 지은 본초강목에도 게를 감과 함께 먹으면 복통을 유발한다고 하는 기록이 있다. 하지만 누가 올리자고 했는지는 나와있지 않다. 전날 게장과 생감을 진어했다고만 할 뿐이다. 


저  우측 하단 초라한 주황색 네모가 한자로 게장이다...

혹시나 승정원일기에 기록이 있을까 하고 가 봤는데, 국문 번역은 없어서 와앙 울고 도망쳤다.


하지만 당시에는 이 생감과 게장을 진어한 것이 바로 연잉군이었다는 소문이 돈 모양이다. 

시간이 한참 지나 영조 31년 모반 사건에 연루된 '신치운'이란 자를 국문한 기록을 보면, 신치운은 영조에게 "신은 갑진년(영조 즉위년)부터 게장을 먹지 않았으니 이것이 바로 신의 역심(逆心;반역을 꾀하는 마음)"이라 하였다. 영조가 게장으로 경종을 죽이고 즉위를 했으니 본인은 영조에게 반대하는 마음으로 게장을 먹지 않았다는 의미인 듯. 당시부터 독살설에 대한 소문이 돈 것은 확실해 보인다. 


그리고 영조는 이 얘기 듣고 와앙 울었다.

근데 사실 영조는 유리멘탈이라기엔 좀 그렇긴 한데,,,하여튼 왤케 많이 울어?


어쨌든... 이 사건에 대해서는 영조 대 얘기할 때 다시 다룰 것임. 

그리고 결정적인 것은 부자와 인삼차 얘기에서 나온다. 

여기서 부자와 인삼은 세제가 직접 이야기했기 때문에 조금 결정적이다.

세제가 울면서 말하기를, "인삼과 부자를 급히 쓰도록 하라."하였고, 
이광좌가 삼다(參茶;인삼차)를 올려 임금이 두 번 복용하였다. 

이공윤(李公胤)이 이광좌에게 이르기를, "삼다를 많이 쓰지 말라. 내가 처방한 약을 진어하고 다시 삼다를 올리게 되면 기(氣)를 능히 움직여 돌리지 못할 것이다."하니, 

세제(世弟)가 말하기를,"사람이란 본시 자기의 의견(意見)을 세울 곳이 있긴 하나, 지금이 어떤 때인데 꼭 자기의 의견을 세우려고 인삼 약제를 쓰지 못하도록 하는가?"하였다. 

조금 지나자 임금의 안시(眼視)가 다소 안정되고 콧등이 다시 따뜻하여졌다. 세제가 또 말하기를,"내가 의약(醫藥)의 이치를 알지 못하나, 그래도 인삼과 부자가 양기를 능히 회복시키는 것만은 안다."하였다.

경종 4년 8월 24일의 일이다. 

세제가 부자와 인삼을 처방했고->의관이 반대했고->결국 부자와 인삼을 처방하긴 했다. 

결과적으로는 경종의 상태가 다소 상태가 좋아졌다 한다.

그리고 경종은 다음 날 죽는다.


병환에 대한 내용은 아예 없고 환취정에서 승하했다는 언급만 있다. 게장&감도 그렇지만 부자와 인삼차가 결정적이어 보이긴 함(주관적). 

어쨌든 이때도 소문은 소문일 뿐이고 별 문제는 없이 세제는 조선의 21대 왕으로 즉위하는데 ...더보기

분량조절 실패로 영조와 정조에 대한 내용은 다음 글에 쓰려고 한다. 

본격 사도 영업하는데 절반 넘어서까지 사도는 태어나지도 않은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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