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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사 May 04. 2021

영화 <사도>, 보기 전 알면 좋을 지식들 (2)

숙종 2편 - 사도는 개뿔 영조가 방금 태어난

이전까지 희빈 장씨와 인현왕후 민씨의 얘기를 했었지.

어쨌든, 인현왕후 민씨가 다시 왕후의 지위로 복위된 이후 장씨는 당연히 다시 희빈의 지위로 내려갔다(자세한 사정은 분량 문제 상 생략). 그리고 곧 자진하도록 명을 받고 사망한다.

이렇게 쓰니까 조금 급전개지만... 이유는 밑에 간단하게... 


밤에 임금이 비망기(備忘記)를 내려 이르기를, 
"대행 왕비가 병에 걸린 2년 동안에 희빈 장씨는 비단 한 번도 기거하지 아니하였을 뿐만 아니라, ‘중궁전(中宮殿)’이라고 하지도 않고 반드시 ‘민씨’라고 일컬었으며, 또 말하기를, ‘민씨는 실로 요사스러운 사람이다.’라고 하였다. 이뿐만이 아니다. 취선당의 서쪽에다 몰래 신당(神堂)을 설치하고, 매양 2, 3인의 비복(婢僕)들과 더불어 사람들을 물리치고 기도(祈禱)하되, 지극히 빈틈없이 일을 꾸몄다. 
이것을 참을 수가 있다면 무엇인들 참지 못하겠는가? 제주(濟州)에 유배(流配)시킨 죄인 장희재(張希載;희빈 장씨의 오빠)를 먼저 처형하여 빨리 나라의 형벌을 바로잡도록 하라." 하였다. 

이보다 앞서 대행 왕비가 병들어 누워 있을 때에 민진후 형제가 입시(入侍)하니, 
왕비가 하교하기를, "(중략)...궁중의 구법(舊法)에 의한다면 빈어에 속한 시녀들은 감히 대내 근처에 드나들 수가 없는데, 희빈에 속한 것들이 항상 나의 침전(寢殿)에 왕래하였으며, 심지어 창(窓)에 구멍을 뚫고 안을 엿보는 짓을 하기까지 하였다. 그러나 침전의 시녀들이 감히 꾸짖어 금하지 못하였으니, 일이 너무나도 한심했지만 어찌할 수가 없었다. 지금 나의 병 증세가 지극히 이상한데, 사람들이 모두 말하기를, ‘반드시 귀신의 재앙이 있다.’고 한다. ...(후략)" 하고, 이어서 눈물을 줄줄 흘렸다.  

이때에 이르러 무고(巫蠱)의 사건이 과연 발각되니, 외간(外間)에서는 혹 전하기를, "숙빈 최씨가 평상시에 왕비가 베푼 은혜를 추모하여, 통곡(痛哭)하는 마음을 이기지 못하고 임금에게 몰래 고하였다." 하였다.
숙종 "인현왕후 민씨가 아플 때 장씨는 한 번도 안 찾아갔더라. 나쁜사람. 왕후를 높여부르지도 않고 반말로 부르고 욕하고 그랬대. 저주하는 신당까지 꾸몄대. 먼저 유배했던 장씨 오빠 먼저 사형시켜라."
죽기 전 민씨 "장씨 궁녀들이 몰래 중궁전(왕비궁) 찾아와서 엿보고 왔다갔다해서 쫓아냈는데 완전 무엄. 그리고 나 아픈 이유가 사람들이 죄다 이거 어디서 저주받은 거 아니냐고 하더라."
이 기사 쓴 사관 "이 담에 진짜로 장씨가 저주한 게 증거가 들통나 완전 들켰는데, 세간 사람들은 이거 왕이 혼자서 안 게 아니라 숙빈 최씨가 민씨랑 친했는데 그래서 왕한테 고해서 들통난 거라 카더라"


숙종 27년 9월 23일의 일이다. 앞선 기록에서처럼 희빈 장씨가 왕비 민씨를 주술로 저주했다고 하며, 

왕비 민씨가 사망 전 저주를 받은 것 같다는 암시를 하는 하교를 내린다. 

특이한 점이, 이 기사의 마지막 구절에는 외간에 숙빈 최씨가 고했다는 소문이 돈다고 한다. 실록이라는 공식적인 기록으로 전하고 있으나, 최씨가 고했다~하는 내용보다는 밖에서 소문이 그러하던데 최씨가 고했단다~라는 뉘앙스가 더 강해 보인다. 


그리고 숙빈 최씨는 연잉군(영조)의 친모다. 

무수리 출신으로(?) 후궁 자리까지 올라선 여인. 숙빈 최씨의 출신은 무수리로 널리 알려져 있지만 정말로 무수리인지는 확실하지 않고 아마 그 정도로 낮은(=나인과 상궁처럼 정식 품계도 없는) 지위의 천인이었던 것은 확실해 보인다. 그리고이 당시 숙빈 최씨는 희빈 장씨의 뒤를 이어 숙종의 제일 가는 총애를 받은 후궁. 아마 이 소문대로 숙종에게 장씨의 기행을 고한 것이 최씨라면 숙종이 그 얘기를 믿을 것은 조금 납득이 간다. 

쨌던간, 이 카더라로만 하면 경종의 어머니의 사망에 대해서는 영조의 어머니가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 그리고 이 기사가 나온 후 다다음주, 10월 초에 장씨는 죽는다. 


희빈 장씨가 내전(內殿;중전 민씨)을 질투하고 원망하여 몰래 모해하려고 도모하여, 신당(神堂)을 궁궐
의 안팎에 설치하고 밤낮으로 기축(祈祝)하며 흉악하고 더러운 물건을 두 대궐에다 묻은 것이 낭자할 뿐만 아니라 그 정상이 죄다 드러났으니, 신인(神人)이 함께 분개하는 바이다. 이것을 그대로 둔다면, 후일에 뜻을 얻게 되었을 때, 국가의 근심이 실로 형언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전대 역사에 보더라도 어찌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으랴? 지금 나는 종사를 위하고 세자를 위하여 이처럼 부득이한 일을 하니, 어찌 즐겨 하는 일이겠는가? 장씨는 전의 비망기에 의하여 하여금 자진(自盡)하게 하라.
=장씨가 다시 빈으로 내려가니까 민씨 질투하고 저주했는데 그거 다 들켰더라...
이런 애가 후궁 자리에 있어도 되나?안 될 것 같음... 지금 이정돈데 냅두면 나중에 어케되겠니? 지금 세자인 얘 아들은 이걸 보고 뭘 배우겠음? 세자 위해서라도 알아서 자살하게 해라
이 유명한 짤은 KBS2드라마 <장희빈>의 짤입니다... 

숙종 27년 10월 8일의 기록이다. 중전 인현왕후 민씨를 질투하고 신당을 차려 주술적으로 저주를 내렸으니, 세자를 위해서라도 희빈의 지위를 박탈하고 자진(자결)하도록 한 내용이다. 

오잉 근데 우리가 알고 있는 장씨는 ... 그러니까 드라마에 나온 장씨는, 자살이라기엔 사약을 먹고 죽었다 대부분. 분명 사도 얘기로 시작했지만 이왕 삼천포로 샌 김에 참고로 딴소리를 좀 하자면... 서인 입장에서 쓰인 <인현왕후전>에서는 장씨가 강제로 사사되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하지만 승정원일기와 조선왕조실록을 보면 자살(자진)하게 했단 기록을 보아 저 짤처럼 강제로 사사시켰다는 가능성은 희박할 듯. 하지만 내용적인 면으로는 꽤 자극적이고&대중적이기 때문에&인현왕후전이 민간에서 많이 읽혀서(결국 대중적이어서) 사사라는 소재가 희빈 장씨 이야기에 자주 쓰인 게 아닐까 싶다. 


이렇게 희빈 장씨가 사망한 이후 세자(경종)은 세자의 지위 상 법적으로는 왕후의 아들이어야 했기 때문에, 인현왕후의 양자로 입적되어 남은 세자 생활을 보낸다. 둘의 사이가 좋았든 나빴든 이렇게 보면 좀 껄끄러운 족보다. 그리고 희빈 장씨의 죽음에는 숙빈 최씨가 깊게 관여했다... 는 카더라가 있는 상태에서 세자와 나이차이가 별로 안 나며 숙종의 총애도 한몸에 받는 똘똘한 남자 동생인 왕자 연잉군은 무럭무럭 자란다... to be continued...


그래 이 얘기를 하기 위해 숙종 소제목을 붙였다.

사도 얘기는 개뿔... 영조 태어난 얘기도 못 했다... 경종만 잠깐 나왔다...

하지만 정말로 난 재밌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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