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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우당 Jun 04. 2022

요양원 일지

Episode-1  그녀의 이야기 "우리집 알아?"

순이 어르신은 오늘도 삶의 어느 시절에 기억이 멈춰서 있을까?

내가 생활실에 올라가자 "언니, 언니" 하면서 걸음을 멈추고 나를 세운다. 몇 살이냐고 여쭈어 보니 오늘은 서른 살이라고 대답하신다. 기분에 따라 10살이 되기도 하고 스무 살이 되기도 하고 나이를 종잡을 수 없게 하신다. 결혼하셨냐고 다시 여쭈어보니 결혼은 하셨단다. 딸도 있단다. 기억이 스무 살에 멈추셨을 때는 결혼을 안 하셨단다. 남자 하나 소개해드리겠다고 어떤 남자가 좋겠냐고 여쭤보니 돈 잘 벌고 이해심 많은 남자였으면 좋겠단다. 거기에는 나도 동감하는 마음이 든다. 모든 결혼한 여자들의 마음인 것 같다. 하루 종일 걸어 다니시는 통에 다리도 아프실 것 같아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집에 가자고 손을 잡으니 우리 집 알아? 하고 되물으신다. 안다고 말씀드리니 자기는 집이 어딘지 모르겠단다. 내가 아니까 걱정 말라고 같이 가자고 하니까 가던 길을 되돌아서 따라나선다.

어르신들이 계시는 광장을 가로질러 순이 어르신이 생활하시는 202호 안으로 들어가며 여기가 언니 집이잖아 하고 말씀드리니 영 생뚱 한 얼굴을 하며 여기가 자기 집이냐고 아무도 없다고 중얼거리신다. 때때로 옆의 침대에 계시는 민순 어르신은 동생이 되기도 하시며 낯선 타인의 모습으로 그녀에게 기억되기도 한다.

순이 어르신이 계시는 방은 3인실로 오른쪽에는 몸이 아프셔서 하루 종일 침대에만 계시는  민순  어르신이 계시고 왼쪽 편에는 아들 손자만 면회 오면 늘 우시는 말순 어르신이 계신다. 순이 어르신의 머리맡에 있는 수납 장위에는  어르신의 이름이 쓰여있는 머리띠를 하고 있는 미키마우스가 자리하고 있다. 여기 이름 쓰여있다고 방정을 떨며 알려드렸더니 굳었던 얼굴이 약간 펴지며 살짝 미소를 짓고 이내 난 몰라 그러신다. 내가 여기에 온 후로  처음 미소 띤 얼굴을 보는 것 같다. 파킨슨까지 진행되어 표정이 무표정이시고 얼굴 근육이 수시로 움찔거리신다. 그래도 식사시간에는 밥을 달라고 하시고 또 잘 드시니 안심이 된다.

순이 어르신을 지키는 미니마우스

노인 장기 요양보험에서 순이 어르신에게 내려진 진단은 치매 3 등급이다. 치매는 다양한 얼굴로 인간의 삶을 갉아먹는다. 순이 어르신의 주요 치매 증상을 배회이며  물건을 훔치기도 하신단다. 다른 어르신의 칫솔이 주머니에서 많이 나온단다. 과장하면 한 백개는 나오는 모양이다. 하루 종일 걷고 또 걷고 한시도 가만히 앉아 계시질 않는다. 오늘은 자기 양말도 누가 가져가서 맨발로 밥 먹으러 나왔다고 투정이시다. 그래서 기분이 나쁘냐고 여쭤보니 이제 밥 먹을 거니까 아니란다. 식사는 묵묵히 잘 떠서 드신다. 다행이다.

우리가 젊은 시절에는 건강을 위해 하루 한 시간씩 걷기를 추천하고 산책을 즐겨했지만 노년의 치매로 인한 배회의 습성은 다리와 관절을 붓게 만들고 자신도 알 수 없는 그 수많은 길을 방황하고 계시는 것 같아 안타깝다.

과연 삶의 어느 순간이었을까?  

다다르지 못했던 어떤 아쉬움이 많아 저리 고단한 하루를 보내고 계실까?

묵묵히 걷고 또 걷고 간혹 요양보호사 샘들이 말도 걸고 손도 잡고 앉히기도 하고 집에 가자고도 하고.....

" 언니 친구 있어? 여기서 좋아하는 사람 있어요? " 하고 물으니 난 그런 거 없어하신다. 자기가 서른 살이라고 생각하시는 걸 보니 서른 살 때 좋은 일이 있었던 모양이다. 찬란했던 30대의 시절을 보내고 인생의 마지막 여정을 어느 종착역인지 조차도 모르고 저렇게 타인에 의지하여 하루를 보내고 계신다. 사실 실제 나이는 78세이시다. 요즘 100세 시대라고 하니 연세가 많이 드신 것도 아니다. 한창나이인 셈인데  이름이 뭐냐고 여쭤보니 자기 이름에 성을 바꾸고 자기 성에 이름을 바꾸고.... 쓸쓸해 보이고 영 마음이 짠하다.

추석 다음날 당직 순서가 되어 일하다 보니 순이 어르신이 옆에 말순 어르신이랑 또 새로 들어오신 이쁜 어르신이랑 담당 선생님이 밖으로 나오신다. 왜 나오시냐 여쭈어보니 세분이 배회가 너무 심하여 나가자고 조르시는 통에 볕도 좋고 바람도 상쾌하여 나오셨단다. 마침 순이 어르신이 나오셔서 나도 덩달아 잠시 해찰을 부리기로 마음먹고 산책길에 나있는 모정에서 준비해오신 밤이랑 간식을 드시면서 담소를 나누었다. 마음은 넉넉하시지 나한테 간식을 나누어주며 먹으라고 인심을 쓰신다. 한 여섯 살 아이들을 돌보는 심정으로 어르신을 대하면 동심으로 돌아간 듯 말동무도 되었다가 내 딸의 어릴 적 키울 때도 생각나고 그런다. 어르신들의 가족들은 천 길 낭떠러지처럼 가슴이 쿵 했다가 이내 삶의 파도 속에서 그들도 견뎌내느라 시간을 많이 내기가 어려워 저들 곁에 생각처럼 오래 머물 수 없으리라........

기억에서 멀어지더라도 늘 자식들을 기다리고 그러다가 또 문득 자식들의 존재도 잊어버리고 급기야는 자기가 누군지도 잊어버리고

요즘 여든 되신 내 어머니가 자주 눈에 밟힌다. 일도 바쁘고 학업도 바빠서 자주 못 들여다보니 죄송하기가 이를 대가 없다. 아직은 건강하시니 괜찮지만 어른들의 건강과 시간은 장담할 것이 아닌 것 같다. 내일은 꼭 시간을 내어 엄마한테 가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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