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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원영 Jul 11. 2018

행주의 행방

그것이 거기에만 있어야 하는 이유

엄마가 세상을 뜬 후, 아빠는 부쩍 더 우울하고 예민해졌다. 초기엔 나도 아빠도 감상적이 되어 같이 살자 했는데, 조금 지나니 같이 못 살겠다고 주에 두어번 집안일하고 먹거리 챙기러 오라고 한 쪽은 아빠였다. 당시로서 그 이유는 충분히 납득할만했다. 아빠는 상실감에 휩싸여 있었고, 엄마가 부재한 집에 내가 ‘밀고 들어오는’ 것을 원치 않았으며, 엄마의 흔적이 남은 물건들이 없어지는 것을 극도로 꺼렸다. 모든 것이 복잡하고 골치 아프니 집 비우고 이사 들어오는 전과정이 감당되지 않는다고도 했다. 마음이 바닥을 내리찍고 있을 때이니 그럴만도 하여, 나 역시 동의했다. 하지만 시간이 좀 흐르니 다른 문제가 표면으로 올라오기 시작했다. 엄마를 그리워하는 것이나, 상실감과 우울감보다 더 근본적이면서 강력한 무언가가 아빠에게서 비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그건 바로 ‘강박’이었다.



남편 없이(나는 주말 부부 생활을 하고 있다) 아기를 키우면서 가끔 보모의 도움을 받아 운동을 하러 가거나 아빠 집에 방문하는 나에겐 휴식이란게 없었다. 그래도 아빠가 딱해 먹거리며 뭐며 챙겨가도 아빠는 대부분 거부했다. 살맛이 안 나니 입맛도 없어 당신이 조금 드시는 몇몇 음식을 제외하곤 인상부터 쓰며 입에 대는 시늉조차 하지 않았다. 몸도 마르고 기운도 없는데도 못 먹겠다며 거부를 하니 방도가 없었다. 그것도 큰 문제인데, 분노발작처럼 울분을 터뜨리는 것도 괴로운 일이었다. 우울증이지 싶어 병원에 가자해도 듣질 않았다. 이도 저도 다 싫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집안일을 하는 내게도 역정을 냈다. 내가 왔다 가면 물건이 어딨는지 모르겠다거나, 아무데나 물건을 놓아서 당신이 정말 ‘고통스럽다’는 것이다. 아빠는 모든 표현이 과장되고 극단적이었다. 고통, 죽고 싶다, 절박 등 긴장과 불안이 잔뜩 배어든 단어를 즐겨 쓰며 상태를 과장하여 상대의 관심을 끌려는 습성이 예전부터 있었다. 물건이라는 것도 행주가 당신이 늘 놓는 위치가 아니면 ‘고통’이었다. 행주가 싱크대 위에 있으면 된 것이 아닌가? 나는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이에 대해 아빠는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내가 기억이 잘 안 나고 옛날같지가 않아서 늘 두는 곳에 물건을 둬야지 안 그러면 머리가 아프고 못 찾는다. 너는 모른다. 내 나이가 되면 알거다.



처음엔 치매인게 아닐까 덜컥 겁이 났다. 그런데 어린 시절 살던 동네 번짓수까지 기억하는 것을 보면 그것도 아니었다. 치매는 기억하려고 애쓰고 망각을 부인하지만, 우울증은 기억 나지 않는 것을 과장하고 이를 자꾸 어필한다하여 안심은 했다. 나 역시 엄마를 잃고 우울감과 싸우고 있었고, 우리 모두는 우울한 것이 정상인 시기를 각자의 성향대로 겪어내는 중이었다. 난 이 와중에도 오로지 당신의 괴로움만 호소하며 저주라도 하듯(너도 나중에 이렇게 될거야) 자길 몰라주는 것에 대한 서운함을 표하는 아빠의 자기중심성에 두 손 두 발을 다 들었다. 하지만 원래 그렇기도 했고, 그 기저에는 전쟁을 겪어내며 파충류뇌, 포유류뇌, 인간뇌까지 모두 불안정하기 짝이 없는 트라우마 상태의 의식이 있음을 알기에 순간순간 열은 받아도 연민의 마음을 낼 수 있었다. 그러다가 또 나만 봐달라는 요구와 ‘같이 괴롭자’는 것만 같은 하소연에 지치면 욱하기도 하는 등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대체 왜 그 행주가 그리도 중요하단 말인가. 물건 하나라도 흐트리지 않고 어떻게 청소를 하나. 물건 버리는 것도 멋대로 버리지 말라며 타박을 하는데, 내가 버리려던 물건은 일회용 용기 따위였다. 몹시 쓸모없는 쓰레기조차도 자기 맘대로 해야만 했다.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었다. 그러다가 어느날, 조금이지만 아빠의 상태를 이해할만한 단서를 발견했다. 그것은 바로 ‘지적과 수정’ 그 자체에 있었다. 행주나 그릇 따위의 문제가 아니었다. 그건 그냥 빗대어 드러난 사물일 뿐이었다. 내가 행주를 ‘더 편리하고 옳은 장소’에 두거나, ‘불필요한 것을 가려내어 버리는’ 행위는 아빠건 엄마건 당신들이 여태 해온 방식을 ‘잘못되었으니 내 식대로 고치겠다’는 메세지를 갖고 있었다. 불안지수가 높아 예민한 아빠는 무의식중에 그 메세지를 더 크게 받아들인 것이다. 아빠에게 내가 하는 행위는 그것이 아무리 당신을 돌보는 것이라 하더라도, ‘이제 당신은 무력하고 오답투성이인 존재니 내가 하잔대로 합시다. 이제 당신은 힘이 없고 권력은 내게 있습니다.’같은 위기로 다가갔을지도 모른다. 안 그래도 몸은 나날이 아빠에게 그 사실을 강렬히 알려온다. 매일 기억은 증발하고, 다리에 힘이 풀려 오래 걷질 못해 ‘이제 당신은 몸에 대한 영향력을 거의 잃고 죽어가고 있소.’라고 말하는 것 같아 두려운데, 막 대해도 괜찮았던(?) 어린 자식에게 행사하던 힘까지 사그라드는 것 같으니 행주니 그릇이니 따위에서도 ‘내 규칙을 따르라’는 강짜를 놓게 되는 것이다. 성숙하고 온화한 어른이 아니었던 아빠의 일면이 극단적으로 유치하게 튀어나온 단면이다. 그래서 결국, 아빠는 나와 살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딸이 힘들까봐,라는 이유도 있었겠지만, 생활 패턴이 너무 달라 스트레스라는 이유가 컸다. 나 역시 마찬가지라 지금까지도 주 2-3회 정도 방문하고 있다.


하지만 당신이 도저히 안되겠다 싶어지면 먼저 포기할 날이 올거라 생각한다. 이 역시 ‘자기 결정’이어야 만족할 양반이지만, 자기가 힘들어 등떠밀리듯 포기해야할 것들이 생기는 그 과정이 아빠에겐 말 그대로 ‘고통’일 것이다. 지켜보는 것도 사랑이라 했던가. 나는 건방지게도, 아이가 스스로 경험하며 배우는 모습을 보는 심정으로 아빠도 스스로 포기할 것을 하나씩 내려두며 고통스러워하는 것을 보고 있다. 좋은 말로 설득하지도 않는다. 가끔씩 쓰다듬고 안아주며 그래도 내가 있다, 아빠는 정말 감사할 일이 많다는 이야기만 한다. 아빠의 행위를 판단하는 일체의 이야기를 금하고 따스함만 전달하려고 노력한다. 그럴 때의 아빠는 각성된 신경계가 조금 안정이 되는지 가만 있고 또 긍정적인 이야기도 한다. 혹은 어린 시절 이야기를 들려달라 한다. 살면서 가장 잘한게 뭐냐는 등 긍정적인 기억을 호출하는 질문도 한다. 그런 이야기를 할 때 아빠는 당신의 묘사와 달리 기억도 잘 하고, 말도 빠르며, 눈빛이 빛나고 두뇌가 명민하게 돌아간다. 결국 모든게 마음의 문제다. 극도의 불안이 두려움, 자기애적 분노, 자기연민, 남탓 등 온갖 부정적인 형태로 드러난다.


행주의 행방으로 실랑이를 벌인 것은, ‘삶’ 속에서 입지가 좁아진 가련한 노인이 영역 싸움이라도 하듯 사그라드는 ‘힘’의 상실을 투사해 강짜를 놓은 일이었다. 실제로 늘 익숙한 곳에 물건이 있어야 하는 면도 있지만, 분노는 언제나 과했고, 울분 속에는 두려움이 늘 배어 있었다. 삶에서 자기가 하나씩 지워져가는 것만 같이 느껴지는 것은 죽음의 공포, 실존적 공포와 맞닿아 있었다. 그러니 감정이 걸핏하면 널을 뛰어 폭발을 할 수 밖에. 그렇다고 다 받아줘야한단 생각은 하지 않는다. 단, 대하는 순간에 이를 차분히 지켜보고 드러난 말이나 사건 이면에 있는 ‘불안한 인간’을 보는 것만큼은 해야한다고 감히 주장한다. 그럴 때 조금 여유가 생겨, 잘 대응할 수 있게 된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마치 상대가 날 의도적으로 괴롭게 하기라도 했다는 듯 책망하며 서운해할 때, ‘내가 일부러 괴로우라고 그랬겠수? 하나라도 먹어보고 입맛에 맞으면 좋으니까 그런거지. 아빠도 불쌍하고 나도 불쌍해. 우리 서로 불쌍해하자. 나말고 아빠 이만큼 생각해줄 사람이 또 어딨어.’같은 식이다. 적의가 없음을 명시하고, 안전하고 싶은 욕구(보살핌이나 걱정을 받고 있다는 것)를 충족시키면서, 연결감을 느끼게 하는 말로 마무리한다. 과하게 교과서적이지 않으면서도 적당히 따스하게 타박하는 것 같은 생활감도 묻어 있어서 괜찮은 것 같다.


불안상태로 사는 사람들은 늘 긴장되어 있고, 예민하고, 타인이 날 무시하거나 공격할거라 생각한다. 공감이나 이성적 판단보다 위기 경보를 발동하는 뇌의 시스템이 최우선으로 작동하는 것이다. 그래서 도둑을 만났을 때에나 발휘해야할 공격성, 의심, 분노, 두려움 등등을 일상에서도 쉽게 표출해서 ‘몹시 짜증나고 피곤한 성격’이 되어 버린다. 그러다보니 사람들과 관계가 안 좋아지고, 이것이 본인의 두려움을 더욱 자극하여 악순환에 빠진다. 하지만 본인도 도저히 어떻게 할 수가 없다. 자기 지옥에 빠진 상태가 있다면 불안감옥에 빠진 것을 의미하는게 아닐까? 그러니 감정도 왜곡되고, 판단도 온전치 않다. 상대를 경계모드로 보니 적개심이나 불안, 분노 등의 감정이 먼저 치고 올라오고, 판단 또한 엉뚱한 쪽으로 흐른다. 쟤가 날 무시해서 그렇다, 내가 이제 노인이라고 괄세한다 등 주로 피해의식에 사로잡힌다. 나이 상관없이 흔히 ‘자존감이 낮다’고 하는 경우도 이 상태와 크게 다르지 않다. 결국 모두, 불안해서, 사랑을 받지 못해서 그렇다.


그런 차원에서, 뇌의 불안 경계 경보를 무력화하고(공격이 아님을 명시), 이성적인 이유를 알리고(전두엽에 새 정보 입력), 우리를 언급하여 감정적인 연결을 시도하는 식의 멘트가 도움이 될 수 있다. 인정해주고 싶지 않아도 상대가 원하는 상태의 감정을 읽어주는 것도 도움이 된다. 불쌍하고 고통스럽다는 등의 멘트를 나는 개인적으로 싫어하지만, 그게 당장 안정감을 준다면 이야기해 줄 수도 있다. 단, ‘나도 그렇다’며 무게를 덜어낸다. 유머러스하게 말하기도 한다. 에너지가 많이 드는데, 익숙해지면 습관처럼 할 수 있을까 기대한다. 아직은 스트레스 받아가며 시도하고 있다.


이걸 하려는 이유가 뭘까 생각해봤다. 내가 족쇄를 풀지 못해 질질 끌려가는 어리석은 상태일까? 어떤 이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부모에게 인정 받고픈 욕구가 안 채워져서 내 경계를 제대로 긋지 못하고 계속 애써서 맞추려는 것일까? 건강치 못한걸까? 난 아니라고 생각한다. 분명 참고 인내해서 언뜻 건강치 못해 보이는 구석이 있을게다. 그런데 정작 나는 아빠와 그런 시간을 보내고 나면 기분이 좋아진다. 사랑하는 마음이 바탕이 되어 지켜보고 인내한 날은 기분도 좋고 탈도 안난다. 하지만 짜증나는데 억지로 참은 날은 소화가 안되고 배가 아프다. 머리가 아프기도 하다. 몸의 신호는 정직하다. 그리고 이런 날은, 아빠의 언행이나 표정이 아니라, 그 뒤에 웅크리고 앉은 ‘작고 늙어진 인간’을 본 날이다. 행주는 늘 있던 곳에 두고, 일회용 용기라도 물어보고 버리는 일 정도는 감정이 들썩이는 가운데에서도 아빠의 육체 안에 있는 영혼과 마주하는 일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다. 어쩌면 이런 공부를 할 수 있으니 고마운 일이다. 내가 내 안정감 속에서 상대를 볼 수 있으면, 상대도 불안을 거두고 봐주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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