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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원영 Jul 19. 2022

그것

어쩌면 나에게도

'그것'이 나를 쫓아오기 시작한지 삼일이 지났다. 처음에는 길고양이가 따라오는 줄 알았다. 부스럭 소리에 뒤를 돌아볼 때마다 검은 꼬리를 본 것 같기도 했다.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이어폰을 끼고 걸었지만 어쩐지 뒤통수가 근질대서 흘끗 고개를 돌렸다. 첫 날, 나에게 그것은 그냥 검은 털을 가진 길고양이였을 뿐이었다.


다음 날에도 뒷꼭지가 근질댔다. 아니, 어느 쪽이냐하면 뒷덜미가 선뜩한 것에 가까웠다. 쉬익대는 소리가 귓 속을 파고 들었고 쫓기는 기분마저 들어 발걸음이 빨라졌다. 나 말고는 아무도 느끼지 못하는지 출근길 같은 골목을 지나는 사람들은 아무렇지 않아 보였다. 나만 연신 뒤돌아보며 머쓱한 듯 손으로 뒷목을 쓸어내리고 있었다.


신경 탓이겠지. 요즘 스트레스가 좀 많으니까.


안 그래도 회사에서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있었다. 성격이 유난한 것도 모자라 인격장애가 아닌가 의심스러운 팀장은 나에게만 유독 삿대질을 하며 타박을 했다. 나는 아무 말도 못하고 그저 고개만 푹 숙이고 이 시간이 얼른 지나가기만을 바랬다. 어릴 적 설탕 그릇을 깨먹고 엄마에게 혼나던 때처럼 그냥 눈만 질끈 감고 있으면 모든게 다 끝나있을 것만 같았다. 실컷 혼나고 자리로 돌아가는 길이 오십 미터는 되는 듯 느껴졌다. 뒤통수에 팀장의 뱀같은 시선이, 뱀 혓바닥에서 나온 듯 독을 품은 말이 들러 붙는 것 같았다. 멍청이, 그것밖에 못하냐, 낙하산이냐 등등. 오십 미터를 고행하는 예수처럼 비장하게 걷는 동안 팀 동료들 그 누구도, 출근길에서 마주치는 이 사람들처럼 아무렇지도 않아 보였다. 회사 안에서도 밖에서도 나만 쫓기고 있었다.


삼일 째, 이제는 그것이 사무실까지 따라왔다. 흘끔대며 주변을 살피는 나를 동료들은 이상하게  쳐다보았다. 눈빛에는 경멸이 깔려있었다. 너희한테는 보이지 않는거야? 쉬익 소리가 이렇게나 큰데! 쉬익 소리는 거의 내 등 뒤에 붙어있는 것 같았다. 팀장의 잔소리도 미칠 것 같은데 그것이 사무실까지 따라올 줄은 몰랐다. 나는 조퇴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아니, 아예 사표를 내고 싶었지만 아들이 좋은 직장에 취직했다고 고생한 보람이 있다며 눈물을 훔치시던 엄마를 생각하니 그럴 수가 없었다. 엄마 얼굴을 떠올리자 귓가의 쉭쉭 소리가 더 커졌다. 나는 이를 악물었다.


지나가던 팀장이 끙끙대던 나를 보고 기가 차다는 듯 한소리 했다. 집중해서 해도 개판인데 그렇게 멍때리면 어쩌겠단거야. 오늘 철야근무 결재 대신 올려줘? 비릿한 웃음을 흘리며 비아냥대는 팀장의 말과 동시에 목에 차갑고 불쾌한 무언가가  닿았다.


악!


나는 단발마 비명을 질렀다. 모두 깜짝 놀라 나를 쳐다보았다. 나는 잔뜩 얼어 있었다. 팀장을 포함한 팀원들의 눈에는 걱정보다는 경멸이 담겨 있었다. 나는 이거 안 보이냐고 묻고 싶었다. 하지만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몸을 겨우 돌리니 사무실 한 켠의 거울에 내 모습이 비쳤다. 나는 그대로 굳어버릴 수 밖에 없었다. 내 목에 시커먼 뱀이 감겨 있었다. 쉭 소리를 내며, 뱀이 내 목을 조여왔다. 아무도 날 도와주지 않았다. 나는 공포로 기절할 것 같았지만 살고 싶었다. 그래서 눈을 감고 미친듯이 소리를 지르며 손톱을 세워 목에서 뱀을 떼어냈다. 그리고 책상에, 등 뒤에 서있는 서류함에 뱀을 패대기치듯 내리쳤다. 그제서야 모습이 보였는지 동료들이 비명을 지르며 도망쳤다. 용감한 몇은 도와주려는지 내게 뛰어와 내 손을 뱀에게서 떼어내려했다. 나는 도리질을 쳤다. 안돼, 이거 죽여야해.


그만해요! 이러다 죽겠어요!


누군가가 울 것 같은 목소리로 외쳤다. 당신 이거 안 보여? 이게 내 목을 조였잖아. 지금 뭘 걱정해주고 있는거야? 나는 사나운 눈으로 홱 고개를 돌려 동료를 노려보았다. 그가 흠칫했다.


정신차려요, 제발!


떨리는 목소리였다. 누군가는 전화를 걸며 울먹이고 있었다. 느릿하게 고개를 돌려 뱀을 쥔 손을 내려다보았다. 거기에는 피를 잔뜩 묻힌 팀장이 죽은 뱀처럼 축 늘어져 있었다. 늘 시크하네 어쩌네 하며 즐겨 입던 광택 나는 검은 자켓을 입은 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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