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 크리스마스는 전부터 다소 요란했다. 연말에 출장을 간 남편이 무려 내년에 귀국할 위기에 처해 있다가 어찌저찌 일이 잘 풀려(?) 예정대로 귀국하게 되었다. 며칠 전 아이에게 비보를 전하니 아빠 올 때까지 선물을 풀어보지 않고 기다리겠다고 해서 마음이 찡했더랬다.
<타임라인>
• 23일. 밤에 초를 켜고 산타에게 소원을 빌었다. 산타 할아버지, 마법을 써서 아빠가 일찍 올 수 있게 데려다 주세요. 사실 아빠는 이미 비행기에 탑승한 상태였다.
• 24일 같은 시각. 공항에 도착한 아빠, 회사 선배에게 부탁하여 발신자 제한 전화로 산타 통화를 시도했다. 선배분이 기똥찬 산타 목소리로 아빠를 빨리 보내주신다고 하셨고 아이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네..네. 감사합니다. 작은 소리로 수줍게 통화를 마친 녀석의 얼굴이 활짝 폈다.
• 약 세 시간 후 아빠 도착. 선물과 함께.
• 엄마는 박스 하나 터서 2층 집 만들어줌. 시트지로 벽지 바르고 바닥은 아이가 아크릴물감으로 페인트칠.
• 갑자기 혼자 뚝딱대며 보지 말라고 하더니 재료 꺼내어 쿠키 반죽 만들기 시작.
•엉망이 된 식탁을 보고 한숨을 참고 만들었다는 누덕누덕한 쿠키를 구워주자 꺼내어 상을 차리기 시작.
산타할아버지용 접대상. 제사처럼 차린다나.
집에서 몇 번 부모님 제사를 간단하게나마 했더니 따라하는 모양이었다. 아빠를 보내주어 정말로 고마웠는지 편지를 앞뒤로 두 장이나 써두고 자기가 만든 쿠키 올리고 우유도 전자렌지에 데워 내었다.
할아버지가 드실까? 기대하며 잠자리에 드는 녀석의 눈은 초롱초롱 그 자체였다.
그리고 어른의 작전이 시작되었다. 칭얼대는 9개월 둘째를 한 팔에 안고, 다른 팔로 준비한 선물 꺼내고 우유 마시고 쿠키 남기고. 아이가 치덕대며 만든 쿠키는 밀가루가 너무 많아 거의 딱딱한 건빵같아져서 차마 먹을 수가 없었다. 그래도 우리 산타 할아버지는 무려 네 개나 드시고 반쪽짜리 두어 조각 남기신걸로!
산타 사진 합성하는 어플도 있더라만 내 눈에는 조악하고, 유치원에서 산타를 만나 선물도 받았으니 이야기가 있는 판타지가 더 나으리라 생각했다. 우유와 쿠키 먹은 흔적에, 아이 편지에 짤막하게 답장이 있는 편이 더 근사하지 않은가. 나는 정자체를 열심히 써서 메모를 남겼다. 우리 산타 할아버지는 카드나 편지에 궁서체를 쓰시는 조선인이시다.
아이를 키우니 겨울 눈은 골칫거리고 크리스마스는 이벤트 업체 직원 체험 기기간다. 아이에게는 너무나도 신나는 나날이니 동심 잃은 어른과 더 비교가 된다.
그래도 너 아니었으면 이런 즐거움을 어찌 누렸겠니. 어릴 때 생각도 나고. 트리 꾸미고, 아래에 카드와 선물을 놓던 기억이 난다. 부모가 마음을 담아 즐거워하며 함께 웃는 추억을 만들어주는 일이 얼마나 소중한지... 돈이나 엄청난 노력이 필요한 것도 아니다. 초를 켜고 다같이 앉아 감사했던 일, 소원 등을 말했던 일, 함께 산타 줄 쿠키 만들고 선물 뜯고 노래했던 일 등이 아이의 기억에 많이 남지 싶다. 활짝 웃고 즐거워했던 순간이.
나는 작년에, 아이가 다니는 발도르프 기관에서는 올해에 성니콜라우스에 대해 알려주었다. 가난한 보육원의 아이들에게 필요한 물건을 몰래 준 것에서 비롯된 선물 주기 풍습. 이를 행했던 세인트 니콜라우스가 미국에 전해지면서 산타클로스가 되었다는 썰도 있다. 네덜란드계 프로테스탄트들이 아이들에게 축일에 작은 선물을 주는 것이 퍼졌다나. 역시 자본주의의 나라에서는 상업적으로 잘도 변모시킨다. 발렌타인데이도 초콜렛 장사하는 날이 아니지 않나. 자본주의는 행위의 의미는 죽이고 가벼운 즐거움만 남기는 마법 필터를 끼우는데에서 위엄을 뽐내는 것이 분명하다. 어쨌거나 이런 날 기원에 대해 알려주고 이야기를 인형극으로 들려주는 원에 다녀서 다행이다 싶다.
그리고 크리스마스인 오늘, 아이와 함께 작년에 이어 연탄은행에 연탄 기부금을 보낼 예정이다. 환경문제로 저소득층에 지급하던 석탄보조금이 줄어 연탄값이 상대적으로 오르고 배달료 부담까지 생겼다고 한다.
한 장이 무겁다보니 연탄배달 봉사도 많이들 한다. 여기저기 기부 후원 등이 많은데 연탄이 그리 부족한가 싶었다. 한 가구당 2,300장이면 겨울을 난다는 기사도 있고 400,600장, 1200장까지 말이 다 다르다. 기사 등을 보다보면 운영비일까 중간에서 해먹은 것일까 싶은 부풀린 수치 등이 보이고 계산도 된다. 할 말은 많지만 하지 않을만한 뭔가가 있으나 일단 아이에게는 좋은 뜻만 알리고 있다. 아직 산타 판타지를 아름답게 누릴 나이이니 선의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기부해야겠다.
기부는 돈 벌면서부터 해왔던 일이라 나에게는 특별한 일은 아니다. 그래서 다행이다. 신념도 기부도 악세서리처럼 착용하고 어필하는 시대라 20여년 해온 행위인 것에 일종의 안도감 비슷한 것을 느낀다. 이 정신은 아이에게 정말로 전해질거라는 안도감. 경제적 자유를 외치는 시대이지만 정말 물려주는 것은 정신이다. 크리스마스의 즐거움 속에서도 정신이 살아있게 이끄는 일은 부모의 몫이다. 의식의 흐름대로 적다보니 다소 심각해졌지만 연구와 고민은 어른의 몫이고 즐거움은 아이들의 몫이지. 정신의 불씨를 살려내는 즐거움은 어른이 받을 보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