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브루타는 유대인의 탈무드·토라 공부법으로 알려져 있고, 보통 두 사람이 짝을 이루어 질문하고 논증하며 깊이 있는 토론을 하는 방식을 취한다. 나 역시 그렇게 알고 있었다.
그런데 하브루타를 조금 더 찾아보면서, 내가 떠올렸던 이미지와 실제 교육 현장에서 활용되는 방식 사이에 차이가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예를 들어 그림책 한 권을 놓고 여러 질문을 만들어 가는 수업을 보면, 질문 자체는 다양하지만 다소 산발적으로 흘러가는 경우가 많아 보였다. 그중 어떤 질문을 선택할지는 자유롭지만, 토론과 논박으로 이어질 수 있는 질문, 혹은 재질문을 낳을 수 있는 구조로 보이지 않는 경우도 많았다. 독후활동과 무슨 차이인지 모르겠는 질문도 많기는 마찬가지였다.
또 하브루타의 목표로
‘책을 잘 이해했는가’,
‘등장인물의 마음은 어땠을까’,
‘상대의 입장에 공감해 보자’
와 같은 것이 등장하기도 했다. 이런 접근이 의미 없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다만 이것이 하브루타의 핵심 목적과 얼마나 맞닿아 있는지는 개인적으로 궁금했다.
왜냐하면, 이런 질문들은 사고를 확장하기보다는 이해와 공감, 표현에 더 초점이 맞춰져 있기 때문이다.
물론 어린 아이들에게 쉬운 질문을 주어 생각하고 답하는 경험 자체를 제공하는 것은 충분히 가치 있다. 하지만 질문이 아무리 쉬워도, 사고가 한 방향으로 깊어질 수 있는 방향성은 필요하지 않을까. 질문이 꼬리를 물고 이어지지 않으면, 의견을 나누는 대화로는 남을 수 있어도 토론으로까지 확장되기는 어렵다고 느꼈다.
내가 이해한 하브루타는, 생각을 표현하는 데서 멈추지 않고 사고를 밀어붙이는 토론에 가깝다. 서로를 이해하고 공감하는 과정이 배제된다는 뜻은 아니지만, 그것이 중심이 되지는 않는다는 쪽이다. 그래서 독후활동처럼 보이는 질문들이 반복될 때면 ‘이게 정말 하브루타일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워밍업으로는 가능하겠지만, 그 단계에 계속 머무른다면 굳이 하브루타라는 이름을 써야 할까 하는 생각도 함께 들었다. 이것이 내 정보 부족인지, 아니면 한국 교육 현장에서 하브루타가 다르게 해석되고 있는 것인지 궁금해졌다.
이런 고민을 하다 보니, 눈앞의 사물 하나만 두고도 얼마나 많은 질문이 이어질 수 있는지 떠올려 보게 됐다.
예를 들어 손잡이는 불편하지만 모양은 예쁜 컵 하나를 보며 이런 질문들이 가능하다.
불편하지만 예쁜 컵은 쓸모가 있을까?
만든 사람은 아름다움을 편의보다 더 중요하게 여겼을까? 외적 아름다움을 우선하는 태도의 장점과 단점은 무엇일까?
사용자를 충분히 고려하지 않고 자기 색을 강조한 것도 예술이라고 할 수 있을까?
불편한데도 가치 있다고 평가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평가와 예술이 모두 주관적이라면, 왜 어떤 것은 예술이 되고 어떤 것은 그렇지 못할까?
유명해지면 무엇을 해도 가치 있다고 여겨지는 것은 타당할까? 그렇다면 가치는 어디에서 오는 걸까?
또 왕따를 주제로 하브루타를 한다고 하면서, 가해자와 피해자의 마음을 상상해 보는 활동에서 멈출 때도 비슷한 생각이 들었다. 의미는 있지만, 조금 더 깊이 들어갈 여지가 많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예를 들면,
상대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괴롭혀도 되는가?
내가 피해를 입은 경우라면 기준은 달라질까?
의도적으로 해를 가하는 것이 허용되는 경우는 있을까?
폭력은 왜 나쁘다고 여겨질까?
정당한 폭력이 있다면 그 조건은 무엇일까?
왕따 과정에서의 폭력은 어디에 속할까?
사람은 왜 타인을 악의적으로 괴롭히는가, 그리고 변화할 수 있을까?
이것이 엄밀히 말해 하브루타인지 아닌지는 모르겠다. 그냥 떠오르는 생각을 적었을 뿐이다.
다만 얼마 전, 딸아이와 알랭 드 보통의 책 일부를 함께 읽으며 이런 방식으로 이야기를 나눠 본 적이 있다. 답은 단순했지만, 자기 생각을 거리낌 없이 말하는 모습이 인상 깊었다. 아이는 분명 단순한 정보를 확인하지 않았고, 해보지 않았던 생각을 했으며 이를 나름의 논리로 설명하고자 했다.
내 생각에 위와 같은 질문들은 어휘만 조금 조정하면 아이들도 충분히 고민해 볼 수 있다.
하브루타는 부드럽고 온화한 대화라기보다, 논쟁과 논박이 오가는 다소 날 선 사고 훈련에 가깝다고 느낀다. 진짜 토론은 감정보다 주제에 집중하며, 그로부터 파생되는 문제들을 끝까지 밀어붙이기 위해 존재한다고 믿는다.
"마따호쉐프"
- 너의 의견은 무엇이니?
생각을 물으려면 생각할만한 질문이 주어져야 한다. 이해했는지, 기억했는지를 확인하는 질문은 의견을 묻는게 아니라 정답을 맞추는 일이다. 어쩌면 우리나라는 주입식 교육에 너무도 길들여져 있어, 질문자 조차도 질문을 한정 짓는지도 모르겠다.
마따호쉐프!
기억하고 또 기억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