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미하지만 내 손끝에 남아있던 것은
그래, 모든 순간이 음악이었다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원망과 슬픔, 나약함에 물든 좌절 속에서
나는 살아남기 위한 간절함으로
건반을 누르기 시작했다.
그게 나의 첫 시작이었다.
피아노를 배운 적 없기에
그저 이 음 저 음 눌러보며
손가락으로 조잡한 연주를 외우듯 익혀갔다.
그렇게 한 곡씩, 내 방식대로 곡을 만들어 나갔다.
그건 음악이 좋아서라기보다는
살기 위해서였다.
그 순간만큼은
안 좋은 생각을 멈출 수 있었기 때문이다.
언제부턴가 피아노는
내 감정이 숨 쉴 수 있는 작은 구멍이 되었고,
감정을 쏟아내는 낙서장이 되었다.
누구에게도 쉽게 털어놓을 수 없는
응어리진 어두운 감정들을
그 위에 풀어놓으며, 나는 비로소 숨을 쉴 수 있었다.
고독은 나를 더 깊고 어두운 곳으로 데려갔지만
그곳은 나에게 차분함을 가르쳐주었다.
건반을 연주하는 일은
내 마음속 거리를 천천히 산책하는 것 같았다.
‘그래, 이 거리는 많이 아파하고 있구나’
‘저 거리는 참 힘들고 쓸쓸하구나’
‘여긴... 많이 슬프고 가슴이 찢겨졌겠구나’
내가 눌렀던 건반은
어느새 또 하나의 인격이 되어
조용히 나를 위로해주곤 했다.
진실로 위로받는
유일한 순간이었다.
그래, 나는 늘 그 속에 살고 있었다.
살다 보면 음악이 멈춘 것 같은 순간도 있었지만
그 쉼표조차도 음악이었다.
나를 비추던 모든 불빛이 꺼지고
전부였던 것들이 사라진 날들조차
내 인생의 ‘쉼표 구간’이었다.
모든 게 멈춘 게 아니라
당당히 다음 마디로 넘어가기 위한
자연스러운 쉼표였을 뿐이다.
그래, 모든 순간이 음악이었다.
사랑도, 이별도, 기다림도,
심지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던 그 날조차도.
나에겐 모두
한 편의 음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