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항일지 001

파동

by 김어항 AHANC

어항일지 001 — "파동"

작은 어항 속에 물고기가 한 마리 있다.

꼬리로 유영하며 물결을 만든다. 파동은 투명한 벽을 몇 번이고 되돌아오고, 그 작은 파동이 다시 물고기의 몸을 건드린다. 물고기는 자기가 만든 파동에 다시 흔들린다. 세상의 시작이 이렇지 않았을까. 내가 만든 것이, 결국 나를 건드리는 구조.

나는 가끔 내가 나를 밀어낸다는 착각에 빠진다. 내가 만든 말, 내가 낸 표정, 내가 아닌 줄 알았던 나의 꿈이 어느 날 나를 마주 본다. 그럴 땐 어항 속 물고기처럼 잠깐 멈춰 떠 있다. 내 파동이 나를 건드릴 때까지.

오늘은 파란색 잉크를 떨어뜨려봤다. 어항의 중앙에.

잉크는 처음엔 또렷하게 퍼졌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 자신이 어디서 시작했는지도 모를 정도로 흐려졌다. 마치 사람의 마음 같았다. 분명 뭔가 시작은 있었는데, 흐르고 퍼지고 섞이다 보면 도무지 어디가 처음인지 모른다. 잉크는 결국 물의 색이 된다. 너무 진하지도 않고, 너무 연하지도 않게.

그걸 본 물고기는 처음엔 흠칫 놀랐지만, 곧 다시 유영했다.

물고기는 잉크를 기억하지 못한다. 사람은, 잊는다는 것을 능력이라 부르기도 한다. 하지만 나는 안다. 잊는 건 능력이 아니라 본능이다. 기억하기 위해선, 그 안에 자리를 잡고 버티는 의지가 필요하다. 물고기는 잉크를 기억하지 않겠지만, 나는 어항 바닥의 아주 연한 푸름을 보며 오늘을 떠올릴 것이다.

나는 자주 나를 잃어버린다. 이름도, 목적도, 감정도 다 두고 한참을 떠돌다가 다시 나를 찾는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나를 찾은 자리는 내가 떠났던 자리가 아니다. 마치 파동처럼. 시작했던 흔적은 끝에서 나를 다시 만나기 위해 존재했던 것일지도.

오늘은 내 마음속 어항에 잉크 한 방울을 떨어뜨렸다.

그걸 본 누군가가 이렇게 말했다.
“이건 그냥 물일 뿐이야.”
나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이건 바다야.”

그 누군가는 고개를 갸웃했지만, 더 이상 묻지 않았다.

어항은 어항일 뿐이지만, 어떤 날은 바다가 된다. 마음의 크기는 물리의 단위를 따르지 않는다. 나는 이 어항 속에서 매일 바다를 헤엄친다. 가끔은 눈물로, 가끔은 음악으로, 가끔은 그냥 조용히 숨 쉬는 걸로.

그 물고기가 오늘 한참을 멈춰 떠 있었다.

아마 그도 파동이 돌아오길 기다렸을 것이다.

나도 그렇다.
내가 만든 말이 나에게 돌아오길 기다린다.
내가 던진 온기가 언젠가 나를 감쌀 수 있기를.
그때, 나는 다시 유영할 수 있을 것이다.

그저… 나라는 작은 어항 속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