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 스쿠터와 미-키리(Meekiri)
33년 전 그때 함반토타에는 외국인이라고는 딱 둘, 한분은 당싱 국제개발 전문가로, 쿠바에서 오신 의료 관련 여성 전문가, 그분은 큰 키에 엔진 소리도 큰 중고 오토바이를 해변가를 달리곤 했는데, 그리 오래지 않아 다른 곳으로 이동하는 바람에, 결국 관광객을 제외하고 숙소를 가진 외국인은 한 사람인셈,
내게는 ‘효성스즈키’(한국기업이라고 했었다)가 어떤 경로를 통해 스리랑카 정부에 기증을 했는지 알 수 없지만, 스쿠터 40여 대 중 한대를 '현지에서 활동하는 '한국 봉사단원'이 속한 기관에 다시 기증하는 좀 이례적인 이벤트가 있어, 얼떨결에 콜롬보 출장을 갔고, 현지 TV방송 등에 소개되었었다. 어찌어찌 트럭을 렌트해 스쿠터를 싣고 함반토타로 돌아오던 기억이 다시 생생하다.
느닷없는 지원이라 면허가 있을 리 없으니 도착하면서 죽시 오토바이 면허를 취득하고(통역을 붙여 면허 시험을 치렀었다) 필기는 물론 수신호 시험도 치러야 했다. 수신호 시험은 시험관의 지시에 따라 수험생들이 직접 수신호 동작을 해야 해서 나도 예외가 아니었다. 무슨 배짱이었던지 틀려도 싹씩 하게 동작을 해댔고, 그 어설픔으로 시험관은 물론 수험생들에게 웃음을 선사했었다. 절대 부족했겠지만 당당히 면허증을 내 준 함반토타주 교통국에 감사했었다. 당시 봉사단은 자동차나 오토바이를 사용하지 못하는 금지? 사항으로 교육 훈련 때 사고의 위험을 강조하면서 사례를 들었던 기억이 있다. 다만, 내 경우는 상황상 오토바이가 외근 업무를 더 잘 수행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을 것이고 그리고 국내 기업가의 관계, 어쩌든 현지 면허를 취득한 사정 등 특별한 허락을 청해 스쿠터를 사용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빨간색의 스쿠터를 타던 '미키리'는 함반토타에서 눈에 띄지 않을 수 없었다. 'miki Lee'는 호주에서 공부할 때 주임교수의 청에 의해 짧고 기억하기 쉽게 지은 이름이었고, 특히나 함반토타 사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아는 가장 유명한 특산물이니 나름 유명하지 않을 수 없었다. * 함반토타의 특산물 중 ‘미-키리(Mee-kiri)’, 즉 전통식 버팔로 요거트(커드, Curd)로, 한국어로는 ‘미키리 요거트’ 또는 ‘버팔로 우유 요구르트’ '미-키리'로 부르고, 이는 점토 도자기에 담아 만드는 전통방식으로 제조되는 요거트 인 것이다. 함반토타는 특히 물소가 많고, 요구르트 가공에 필요한 적당한 기후가 맛난 '미-키리'를 생산하고, 이곳을 다녀가는 휴양객, 관광객은 지방도로 곳곳에서 판매하는 '미-키리'를 사가곤 했다. 이름 미키-리와 요거트 미-키리는 발음도 갖고 스리랑카 아꾸루 글자로 같은데, 어느 부분을 길게 (장음) 소리 내어 읽는 것만 달랐지만, 그런 고려까지 배려받았을리 없다. 무조건 난 커드 '미키리' 였던 것이다. * 아쉽게도 그 오래 전의 사진은 찾을 수가 없다. 뎅기열로 한국에서 치료를 마치고 돌아갔을 때 빨간 스쿠터는 이미 주인이 바뀌어 있었다.
한국에서 온 봉사단원 '미키리'가 빨간색 스쿠터를 타며 온 마을을 다니기 시작하니 그야말로 지역의 유명? 인사로 입소문이 돈 것은 그리 오래지 않았다. 처음에 소개할 때 왜 사람들이 그리 웃는지 몰랐다가 곧 사정을 알고는 소개할 때마다, 재미난 에피소드를 곁들여 더 쉬 기억하게 한 듯하다. 업무상 이용하는 수단으로, 스리랑카에 파견된 다른 선후배 봉사단과 다르게 JTF본부에서는 매월 기름 값으로 1,200루피 정도(기억이 희미하다) 지원을 받았고, 그 당시 사무원의 급여 수준 정도라 충분하다 여겼지만, 짬만 나면 대중교통보다 스쿠터를 이용해 쉴 새 없이 근처 마을금고 은행들을 찾아다니고, 친구네를 찾아다니니 그렇게 바쁠 수가 없었다. 근처 빵집에서 썰지 않은 식빵을 사거나 바나나 한송이, 손 씻는 비누(한국에서도 한 때는 사용했던 다이얼 비누 같은 크기), 설탕(차를 마시는 가정에서 반기는 선물이다), 파파야를 스쿠터에 싣고 선물로 전하면, 바나나 받은 곳은 파파야를 내어주고, 파파야를 받은 곳은 몇 알 안 되지만 캐주넛 등 또 다른 것들을 내어주는 인심을 늘 잊을 수가 없다.
어디서든 반찬투정도 않고(못하고) 닥치는 대로 잘 먹고, 대접하는 이도 받는 이도 그리 즐거울 수가 없는데, 미키리를 대접이라도 받으면 어찌나 부담이던지, 이만하면 시골집의 성찬이다. 지난 방문 때 WDF교육생들과 나누던 점심식사를 담았다. 밥과 커리(생선, 닭&쇠고기 등) 우리의 부각같이 바삭한 빠빠담, 쌈볼, 무엇보다 렌틸콩과 강황으로 색을 낸 달커리는 최애 음식으로 매 끼니마다 얼마나 맛나게 먹었던지,
물론, 경우에 따라 스쿠터가 일반 오토바이 달라 훨씬 안전한 도구지만, 어느 날 서둘러 이동하다 모래밭에서 미끄러지면서 오른쪽 팔뚝 전체를 깊이 긁히는 사고를 내기도 했다. 그 상처에 작은 모래알이 박혀 오래도록 치료를 하며 동료들을 애타게 한 기억도 이번 일정에서 오래된 친구가 들려줬다. 봉사단들에게는 파견 당시 꽤나 큰 구급상자를 지급해 줘, 파견 시 선배들의 조언대로 추가로 더 많은 약품을 구해와, 약품상자는 활동 중 가장 소중한 도우미 역할을 톡톡히 했었다. 내게도 물론 소중했고, 동네 꼬마친구들, 지역 은행 방문 때, 동네 어른들의 상처를 치료하는 무면허 전문 치료사? 노릇을 했고, 특히 외상에는 만병통치?로 ‘마데 ㅇㅇ‘분말, 과산화수소?, 빨간약(아까징키)을 최고의 명약으로 알고 치료? 에 사용하곤 했었다.
#웰다잉 #웰빙 #웰에이징 #아름다운하늘소풍 #아하소풍 #ahasopoong #죽음준비 #괜찮은죽음 #인간의 존엄 #웰다잉을위한 웰빙의삶 #KOICA #kov #WFK #srilanka #hwdf #kov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