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죽음은 나뉘지 않는다

10. 더 많이 공부해야 할 수밖에

by 기린

살아가는 동안 '죽음'을 제외한 그 무엇에도


완벽한 끝이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끝이 있다고 믿을 때 우리는 조급해지지만, 삶의 유일한 마침표가 죽음뿐이라는 사실을 온전히 받아들이는 순간 삶은 조금 더 넉넉해집니다. 죽음만이 피할 수 없는 결말이라면, 그 마침표에 도달하기 전까지의 모든 시간은 결국 '어떻게 살아낼 것인가'의 문제로 남기 때문입니다.


그간 치열하게 죽음을 공부하기 시작한 이유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완벽히 없애기 위해서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내 안에 그 두려움이 존재함을 솔직하게 인정하고 싶어서였습니다. 죽음을 곁에 두고 생각하기 시작하자 역설적이게도 삶이 더욱 선명해졌습니다. 사소한 선택 앞에서도 '이것이 진정 나다운 결정인가'를 되묻게 되었고, 관계를 대하는 태도도 한결 정중해졌습니다. 이처럼 죽음 공부는 조용히 제 일상을 바꿔놓았습니다.

이제 저는 개인적인 사유를 넘어, 우리가 반드시 직시해야만 하는 한국 사회의 서늘한 현실, 즉 '연명의료'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려합니다.

저는 오래전부터 가족과 지인들에게 "회복 불가능한 상태가 되었을 때 무의미하게 기계에 내 몸을 맡기지 말아 달라"라고 거듭 당부해 왔습니다. 다행히 우리 사회도 법적 제도를 정비하여, 2018년부터는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제도가 전 국민을 대상으로 상시 운영되고 있습니다. 누구나 법의 테두리 안에서 존엄하게 삶을 마무리할 자기 결정권을 보장받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제도가 존재함에도 우리의 현실은 여전히 씁쓸합니다. 통계에 따르면 65세 이상 고령층의 무려 84%가 연명의료를 원치 않는다고 답하지만, 실제 임종 과정에서 이를 거부하거나 중단한 비율은 고작 17%에 불과합니다. 2023년 기준 사망자의 약 67%가 회복 가능성 없는 상태에서 연명의료 시술을 겪으며 생을 마감했습니다. 이로 인해 임종 직전 1년간 지출하는 평균 의료비는 1,088만 원으로 치솟았고, 이대로라면 2070년에는 관련 건강보험 지출만 17조 원에 달할 전망이라 합니다. 그뿐만 아니라, 연명을 위하여 사망 6개월 전 의료비의 90%를 사용하고 있다고 하는 자료에 놀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

왜 이런 모순이 발생할까요? 환자 본인의 명확한 의사 결정이 문서로 남겨져 있지 않다면, 남겨진 가족들은 옅은 희망과 치료를 포기했다는 죄책감 사이에서 결코 연명 기계의 전원을 끄는 선택을 하지 못합니다. 기계적으로 생물학적 시간만 연장하는 고통 속에서, 수천만 원에서 억 단위에 이르는 막대한 의료비는 오롯이 가족의 경제적 빚으로 남습니다. 이는 단순한 돈 문제를 넘어, 남겨진 가족의 삶 전체를 송두리째 무너뜨리는 비극이 됩니다.


그렇기에 죽음을 깊이 공부하는 일은 철학적인 사유를 넘어, 내 삶의 마지막 순간을 어떻게 맞이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주체적이고 실존적인 선택의 과정입니다. 건강할 때 미리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해 두는 것은 생을 포기하는 우울한 행동이 아닙니다. 그것은 나의 존엄을 스스로 지키는 동시에, 불필요한 고통과 막대한 비용으로부터 가족들을 보호하고 무거운 결정의 짐을 덜어주기 위한 가장 책임감 있는 결단입니다.

결국 죽음을 더 깊이 공부한다는 것은 "오늘 하루를 어떻게 살 것인가"를 거듭 묻는 일입니다. 자신의 유한함을 잊지 않고 죽음을 준비하는 사람일수록 삶의 마지막을 가장 인간적이고 품위 있게 마무리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무거운 죽음의 현실을 외면하지 않고 용기 있게 공부해야만 하는 가장 분명한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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