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 산 것과 죽은 것, 그 찰나의 공존
도서관과 책상 앞을 지키며 활자와 씨름하고
세상 밖으로 나와 타인의 여정을 돕는 안내자로 분주한 시간을 보내던 어느 날, 무심코 길을 걷다 문득 시선을 빼앗긴 풍경이 있었습니다. 생과 사라는 무거운 철학적 화두를, 자연은 말없이 일상적인 장면 하나로 제게 건네주고 있었습니다. 그곳에는 싱그러운 노란 꽃 한 송이가 따스한 햇살을 머금고 화려하게 피어 있었고, 바로 곁에는 수명을 다해 갈색으로 바스러진 꽃 머리가 힘없이 고개를 숙이고 있었습니다. 더욱 경이로웠던 것은, 그 바싹 마른 죽은 꽃 머리 위에 푸른 날개를 가진 작은 잠자리 한 마리가 날아와 조용히 앉아 쉬고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살아 숨 쉬는 생명과 이미 숨을 거둔 잔해가 한 프레임 안에서 묘한 대비를 이루는 풍경이었습니다. 언젠가는 스러질 유한한 존재가 또 다른 죽음의 흔적 위에 내려앉아 있는 이 찰나의 장면은, 생과 사라는 두 그림자가 결코 분리되어 있지 않음을 보여주는 경건한 한 폭의 그림 같았습니다
우리의 인생도 이 풍경과 다르지 않습니다. 누구나 찬란하게 만개하여 빛을 발하는 순간이 있는가 하면, 조용히 고개를 숙이고 시들어가는 순간을 맞이하게 됩니다. 많은 이들은 어떻게든 죽음을 외면하고 눈부신 순간에만 머물고자 애를 씁니다. 그러나 저 꽃들의 모습처럼 삶과 죽음은 서로를 밀어내는 적대적인 관계가 아니라 한순간도 빠짐없이 공존하는 자연스러운 순환입니다. 삶의 유한함을 명확히 인식할 때, 비로소 우리는 현재 나에게 주어진 이 순간이 얼마나 경이롭고 소중한지, 무엇이 진정 가치 있는 것인지 온전히 깨달을 수 있습니다.
며칠 뒤 마주친 또 다른 풍경 역시 깊은 울림을 주었습니다. 수명을 다해 밑동만 남은 낡은 나무 그루터기였습니다. 거대한 나무로서의 생은 끝이 났지만, 놀랍게도 그 텅 빈 그루터기의 파인 틈새 위로는 푸릇푸릇한 작은 풀과 이끼들이 자라나고 있었습니다. 잘려나간 나무 자신은 더 이상 위로 자라지 못하지만, 그의 몸통은 여전히 숲속의 작은 생태계를 든든하게 지탱하는 생명의 터전이 되어주고 있었습니다. 죽음이 곧 완전한 소멸과 끝이 아니라, 다음 생명을 틔워내기 위한 비옥한 토양이 된다는 사실을 대자연은 묵묵히 증명하고 있었습니다.
이 그루터기를 보며 '웰다잉(Well-dying)'의 진정한 의미를 가슴에 새겼습니다. 웰다잉은 단순히 내가 숨을 거두는 마지막 순간을 평안하게 맞이하기 위한 기술이 아닙니다. 그것은 내가 이 세상에서 사라진 뒤에도, 누군가에게 남겨질 나의 자리와 흔적을 깊이 배려하는 일입니다. 죽은 나무 위에 돋아난 저 작은 생명들처럼, 우리의 삶 역시 앞서 떠난 누군가의 삶을 자양분 삼아 자라났고, 훗날 떠날 나의 삶 역시 남겨진 이들의 새로운 삶을 키워내는 밑거름이 될 것입니다. 죽음은 삶의 반대말이 아니라 가장 진실한 일부이며, 우리의 삶을 다른 방식으로 이어가게 하는 연결고리입니다.
이 찰나의 공존 앞에서 저는 스스로에게 묻습니다. '지금 이 순간, 살아남기 위해 내가 세상에 품어내는 빛은 어떤 결을 띠고 있을까? 나를 숨 쉬게 하는 색깔은 어떤 마음을 닮아 있을까?' 삶과 죽음이 매 순간 함께 존재한다는 사실을 깊이 자각할 때, 하루하루의 밀도는 완전히 달라집니다. 생과 사가 교차하는 자연의 경이로운 가르침 속에서, 저는 오늘도 유한한 나의 하루를 조금 더 다정하고 책임감 있게 살아가야겠다고 다짐합니다.
지금 이 순간,
살아남기 위해 내가 품어내는 빛은 어떤 결을 띠고 있을까 합니다.
지금 이 순간,
나를 살게 하는 색은 어떤 숨결로 번져오고 있을까 합니다.
지금 이 순간,
살아 있기 위해 내가 품어내는 색은 과연 어떤 마음을 닮았을까 생각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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