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성지와 분쟁 사이, 예루살렘의 두 얼굴
이 글은 국제개발협력 프로젝트 수행자로 한동안 팔레스타인을 드나들면서 경험한 일들을, 오랜 세월이 지나 '웰다잉을 위한 웰빙의 삶'을 전하는 몫으로 삶의 방향을 다잡아 가면서 다시 정리하는 글입니다.
성지와 분쟁 사이, 예루살렘의 두 얼굴
수천 년의 신앙이 깃든 성지이자 치열한 갈등이 현재진행형인 예루살렘에 도착합니다. 하늘을 자유롭게 나는 새와 달리, 삼엄한 통제 속에 국경을 우회해야만 하는 이 땅의 역설적인 현실을 마주하며 팽팽한 긴장감 속에서 출장을 시작합니다.
신념과 세속이 부딪히는 팽팽한 각축장 예루살렘(Jerusalem)은 이스라엘의 수도이자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가 각자의 성소로 삼는 신앙의 집산지이다. 수천 년의 세월을 견뎌온 거룩한 장소들이 신을 향한 인간의 끝없는 간절함과 세속의 권력이 맹렬하게 부딪히는 지점이 된다. 이곳은 단순히 종교적인 경외감을 불러일으키는 과거의 유적을 넘어, 최근 팔레스타인과의 갈등이 더욱 격화되며 팽팽한 긴장감이 흐르는 치열한 신념의 각축장이다.
어제의 기억과 오늘의 현실 사이 최초로 프로젝트를 기획했던 4년 전과 비교해도 예루살렘의 상황은 너무나 많이 달라져 있다. 특히 팔레스타인에 있던 미국 총영사 업무를 위해 공관 자체를 이스라엘로 옮기면서, 겉으로 가라앉아 있던 갈등의 불씨는 다시금 선명하게 붉어진다. 이스라엘과 미국, 그리고 팔레스타인 사이의 문제는 단순한 영토 분쟁을 넘어 또 다른 차원의 복잡한 층위를 형성하며 깊어지고 있다.
중동의 문제는 어느 하나 명확한 인과관계로 설명하기 어려운데, 이는 모든 상황이 결론을 맺지 못한 채 여전히 현재진행형으로 요동치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방송 매체에 등장하는 파편화된 비극적 사정들을 보며 저마다의 방식으로 이 두 나라를 이해하려 애쓰지만, 막상 무거운 공기가 짓누르는 그 땅을 밟기 전까지는 정작 아는 것이 거의 전무했다는 뼈아픈 사실만을 확인하게 된다.
통곡의 벽에 새겨진 멈춰진 시간 예루살렘 성지의 가장 핵심적인 장소로는 통곡의 벽, 성묘교회, 그리고 오마르 사원이 손꼽힌다. 특히 통곡의 벽은 8개월 전 방문 때와 마찬가지로 여전히 거대한 비계에 둘러싸여 공사 중인 모습으로 자리를 지키고 있다. 좀처럼 변하지 않는 분쟁의 역사처럼, 낡은 성벽을 보수하는 손길 또한 멈추지 않고 끊임없이 이어진다.
거대한 석벽 앞에 선 사람들의 굽은 등 위로 예루살렘 특유의 무거운 공기가 내려앉고, 돌무더기의 좁은 틈 사이로는 수많은 이들의 간절한 기도문이 빽빽하게 꽂혀 있다. 성지라는 숭고한 이름 뒤에 가려진 이 도시의 진짜 얼굴은, 애절한 기도 소리와 삭막한 공사 현장의 소음이 뒤섞인 채 오늘도 위태로운 평화를 간신히 유지하는 모습이다. 사람들은 저마다의 신을 향해 경건히 고개를 숙이지만, 그 머리 위로 흐르는 공기는 평화보다는 언제 터질지 모르는 팽팽한 긴장감에 훨씬 더 가깝다.
경계 위의 자유와 역설적인 일상 올드시티의 견고한 성벽을 따라 걷다 보면 역설적이게도 가장 일상적인 활기가 넘치는 바자(Bazaar)와 마주하게 된다. 온갖 이국적인 기념품과 향신료가 즐비한 이곳에서, 사람들은 한 블록 너머의 국경 긴장을 잠시 잊은 채 물건을 고르고 열띤 흥정을 벌인다. 성벽 너머의 복잡다단한 정치적 사정과는 별개로 시장의 상인들은 억척스럽게 자신들의 삶을 묵묵히 이어간다. 이스라엘을 알리는 관광 자료들 속에는 팔레스타인의 정보가 당연하다는 듯이 포함되어 있으며, 두 나라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공존과 대립의 역사를 한 공간에서 공유하고 있다.
성벽의 견고함을 사진에 담던 중, 우연히 푸른 하늘을 가로질러 날아가는 새 한 마리를 포착한다. 어떠한 제약도 없이 자유롭게 경계를 넘나드는 저 새의 유려한 날갯짓은, 삼엄한 통제를 겪거나 버스와 비행기를 번갈아 갈아타며 요르단이나 카타르로 우회하여 국경을 넘어야만 하는 이 땅 사람들의 서글픈 처지와 극명하게 대비된다.
다시 쓰는 설계도 출장을 앞두고 수없이 들여다보았던 책상 위의 공부와 기초 조사들은, 현장의 생생하고 서늘한 공기를 직접 마주하는 순간 과업 범위(Job Scope)를 원점에서 다시금 정교하게 다듬도록 만든다. 일주일을 훌쩍 넘어서는 긴 일정의 출장은 조직의 입장에서는 쉽게 용납되기 어려운 기간이다. 하지만 수행해야 할 ODA 업무의 막중함과 중동이라는 원거리의 특수성 때문에, 현장의 생태계를 두 눈으로 확인하는 이 시간은 결코 소홀히 할 수 없는 결정적인 순간이다.
만감이 교차하는 예루살렘에서의 또 다른 날이 서서히 저물어간다. 척박한 땅에서 짬짬이 써 내려간 파편화된 기록들을 소중한 조각들로 삼아, 돌아가는대로 이 모든 복잡한 사정들을 가장 구체적이고 실효성 있는 설계도로 나열하고 정리하겠다는 굳은 다짐을 하며 예루살렘의 깊은 밤 속으로 침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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