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자에게 묻는다

01. 방콕을 너머 콜롬보로

by 기린

웰빙과 웰다잉_스리랑카 편

이 글은 한국국제협력단 파견 해외봉사단원으로 활동했던 33년 전,

죽음을 이겨내고 살아온 세월을 돌아보며 활동당시의 임지방문 등 15일 간 스리랑카 여정을 담는 글이다.


1992년, 한국해외봉사단 3기 단원으로 스리랑카에 파견되었다

해외 봉사단원으로의 활동은 인생의 가장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고, 활동 중 예상치 못한 상황에서 만난 풍토병인 뎅기열(Dengue Fever)은 삶의 궤적을 크게 바꾸어 놓았다. (* 뎅기열은 동서남 아시아, 중남미 등에서 자주 발생한다고 보고되고 있고, 당시만 해도 예방 백신이 없었다고 전해졌었다). 뎅기열로 인해 생과 사의 고비를 넘기고 회복하면서 생명의 유한성을 깊이 체감했었다. 그러나 그런 체감도 잠시, 분주한 삶을 이어오면서 한결같이 '삶과 죽음'의 사유의 끈을 놓치지 않으려 발버둥거렸지만 사람인지라 수시로 '죽음'은 멀리 떠나보내고, '삶'만 누리며 살아왔었다.

어느덧 흰머리숱이 절반을 넘기면서, 여러 죽음을 대하면서 슬며시 지난날 고뇌를 떠올리게 되었고, 점차 ‘웰빙(Well-being)’뿐 아니라 ‘웰다잉(Well-dying)’에 대해서 스스로 진지해짐을 깨닫고, 앞으로의 삶은 단순히 건강하게 살아가는 것에서 나아가, 의미 있게 삶을 어떻게 마무리할 것인가에 대한 질문이 잦아지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깨달음을 이해하게 되면서 틈틈이 글로 정리하며 삶과 죽음에 대한 생각을 기록해 왔다.

기록을 이어가면서, 인생의 전환점이 되었던 곳 스리랑카 나의 고향 함반토타를 찾게 되었고, 물론 33년 전 활동지는 이후 여러 차례 방문을 거듭했었지만, 코로나와 개인적인 사정으로 만 7년 만에 다시 찾게 된 것이다. 이제부터 연재하는 글은 그곳에서 시작된 짧은 15일간의 여정을 통해 그때 함께 했던 오랜 인연들과의 만남과 지난 흔적을 더듬으며 산자들을 찾았다. 그리고, 그들에게 물었다. 그간 안녕하셨는지? 어떻게 살아왔는지? 그리고 평안한 지를 물었다. 앞으로도 웰빙과 웰다잉을 함께 고민하며 비록 글 솜씨가 뛰어나지 않아 걱정하면서도 이렇게 열린 공간을 통해 이야기를 나누고자 시작한다.


방콕에서 콜롬보까지, 다시 시작된 여정

방콕 ‘수완나품 국제공항(Suvarnabhumi Airport)은 여전하다.

전 세계 명품 브랜드가 즐비하게 늘어져있었지만, 어차피 명품과는 거리가 먼 내겐 여전히 낯선 풍경이었다. 방콕의 추억으로 잠시 돌아가 본다. 1997년 이후이니 벌써 27~28년 전쯤일까. 해외 봉사단 활동을 정리한 후 '국내산 원단'으로 무역상을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부터이다. 다양한 종류의 옷감 중 하필 가장 빠르게 오더로 연결된 아이템이 아프리카 전통 의상에 쓰이는 Damask JQD(다마스크 자카드)와 여성들이 머리에 두르는 화려한 천 장식으로 사용되는 헤드타이(Head Tie), 꽤 값나가는 자수 원단 등의 국내산 원단으로 주로 아프리카 베넹(꼬또누), 말리(바마코)로 실어내기 시작하면서, 방콕은 아프리카 시장의 교두보가 된 것이다. 아프리카 바이어들은 선금으로 유로화로 대체되기 전 사용하던 프랑스 프랑(French franc (FRF))을 007 가방에 담아 방콕으로 날아왔고, 우리는 수출서류를 만들어 스쿰빗 거리의 아프리카 타운에서 거래를 이어갔다. 한국 중개상들이 초기엔 아동·여성 속옷 가공과 디자인 아이디어로 신뢰를 쌓으며 아프리카-한국-태국 BIZ를 응원했지만, 어느 순간 우리는 더 이상 그 무대에서 주연 노릇을 할 수가 없었다. 원단 무역을 할 당시출장지로 다녀왔던 서남아프리카와 2025년 다시 찾은 르완다, 우간다는 전혀 다른 아프리카로 여겨졌다. 물론 벌써 이십 년도 훌쩍 지났으니 당연했을 터이다. 새로 만난 아프리카 시장 풍경도 너무 많이 달라졌고, 또한 아프리카 무역 거래의 대부분도 중국이 주도하고 있음을 쉽게 발견할 수 있었고, 인도와 태국 등 동남아 각지에서도 여전히 활발히 거래가 이어지고 있다고 한다. 그 당시 이웃집처럼 수시로 드나들던 방콕(Bangkok), 이제 곧 문을 나서서 콜롬보행에 오르면, 늦은 밤 그리도 그리던 가장 정겨운 고향에 내릴 것이다.


랑카의 수도 콜롬보에 도착했다

한국에서 이것저것 챙겼는데도 역시 구멍은 언제 어디서든 만날 수 있어야 제맛이지?

랑카행을 정하고, 십수 년 동안의 인연을 이어오던 오랜 벗과 소통하여 스케줄의 일부를 같이 짰고, 조카뻘 벗이 공항으로 마중을 나와 반가운 해후를 시작으로 다시 정리한 스케줄을 꼼꼼히, 너무나 꼼꼼히 챙겼는데도 공항 근처에서 고속으로 향하는 함반토타행을 놓치고 말았다. 공항 근처(공항은 그 옛날의 그 공항이 아니었다)의 작은 호텔에서 1박으로 여독을 제대로 풀지도 못하고 아침을 열었다. 차를 놓쳤으니 만사 제치고 부지런히 콜롬보 시내에 위치한 버스터미널 '뻬따'로 향했다. '뻬따'의 기억은 또 몇 날을 나눠도 부족한 고향의 관문이다. 늘 붐비던 터미널은 제법 정갈하게 정리된 상태였고 콜롬보를 중심으로 주요 도시를 잇는 고속버스들이 손님을 기다리고 있었다. 다행히 너무 늦지 않게 함반토타를 향하는 고속버스 시간에 맞춰 탑승했다. 마침 옆좌석에 앉은 학생은 '켈라니 대학'에서 컴퓨터공학을 전공하고, 이제 졸업을 6개월 앞두고 있다 한다. 함반토타를 지난 '디싸(Tissa)'라는 지역에 살면서, 대학 내 기숙사 생활을 하고 있고, 주말을 맞아 집을 찾는다 했다. 이런저런 대화를 하면서 출발도 하기 전 SNS로 서로 연락처를 주고받았는데, 학생은 데이터 용량이 모자라 나눔이 이어지지 못했다. 졸업 후 취업을 위한 대화를 잇다가 스리랑카에서 사업을 하는 한국 지인과 연결해 만남을 주선하기로 했다. 착하고 성실한 이 친구가 졸업 전 좋은 일자리를 얻길 바라지만 이후 진행과정을 SNS 연결이 안 된 탓에 살펴볼 수 없었지만, 지인의 연락처를 남겨 둬, 그곳 현지 직원과 소통이 된 것 정도로만 듣게 되었다.


스리랑카 버스 기사들의 운전솜씨는 여전하다

터미널 근처 2022년에 공개되었다는 남아시아 최고라고 소문난 명물 '로터스 타워(Lotus Tower)'는 새로웠지만, '뻬따'를 수대에 걸쳐 지키고 있는 고양이와 까마귀도 그대로였고 '뻬따' 터미널 도매시장의 사람들도 여전했다. 상인들의 호객소리, 바자지 තුක් තුක්” (thuk thuk)와 버스에서 내지르는 경적소리, 길거리 쓰레기까지. 무엇보다 운전기사들의 운전테크닉은 어쩜 하나도 달라지지 않았다. 아는 사람들은 너무나 잘 아는 '랑카'기사들의 운전 솜씨는 가히 묘기에 가깝다. 스리랑카 운전석을 원래보다 높게 만들어 도로를 잘 보게 하는 특징도 있지만, 마치 왕좌처럼 만들어 위엄과 존재감을 뽐내기 위해 기존 차량의 구조를 그대로 쓰지 않고, 정비소에서 철재와 나무 등을 활용해 운전석을 고치고 주변에는 온갖 부처님 형상의 사진, 싸구려 비닐 장식 술, 플라스틱으로 만든 다양한 장신구가 흔들거린다.

차창 밖의 청명한 하늘, 무언가 쌓고 부수는 건설 현장, 언제 만나도 세상에서 가장 친절한 사람들이 있는 곳!


어쩌든, 모로 가도 함반토타로 향한다.


도착한 그날은 하필 음력 생일날. 33년 전 그날 그 캄캄하던 밤도 생일날이었다. 정말 우연일까?

33년 전 뎅기열로 지치게 하고 사지로 몰아댄 그곳, 다행히 이른 출발로 점심시간을 훌쩍 지난 때에,

스리랑카 남부해안 항구도시인 함반토타 හම්බන්තොට (Hambantota)에 내린다.

그리고......., 이제 천천히 산자들을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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