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자에게 묻는다

02. 고향 함반토타 හම්බන්තොට (Hambantota)

by 기린

웰빙과 웰다잉_스리랑카 편

이 글은 한국국제협력단 파견 해외봉사단원으로 활동했던 33년 전, 죽음을 이겨내고 살아온 세월을 돌아보며 활동당시의 임지방문 등 15일 간 스리랑카 여정을 담는 글이다.


33년 전 생일날, 드디어 함반토타에 내렸다

1992년 5월 어느 날 수원 화서역 주변 10층 짜리 농민회관(지금은 다른 용도로 쓰이고 있다 한다) 넓은 마당에 집결했던 3기 단원들의 모습이 선하다. 1992년 KOICA 제3기 해외봉사단 파견 인원은 총 38명으로 파견국은 7개국(네팔, 스리랑카, 인도네시아, 필리핀, 태국, 피지, 파푸아뉴기니)이었다. 당시만 해도 국가명도 낯선 Fiji, PNG는 훈련 당시에도 유난히 관심을 더 받았던 기억이 남아있다. 8주간의 국내 훈련은 정신교육, 현지어 교육, 직무 및 소양 교육으로 채워졌고, 특히 군대식 교육으로 매일 훈련소를 출발해 대로까지의 아침 구보와 체조로 하루를 시작하는 등 군대식의 엄격한 규율 속에서 진행되었다. 당시 단원들에게 주입했던 내용의 기억으로는 대한민국을 대표한다는 '민간 외교관'으로서의 사명감 고취와 인성 교육을 강조했던 것 같다. 이후 각국 사정에 따라 파견 일정을 맞춰 현지에 도착 후 4-5주간 다시 현지 적응 및 직무 교육 훈련이 이어졌었다. 스리랑카 3기의 경우 현지훈련을 따로 할 수 없는 내부 사정이 있었다. 짧은 일정으로 현지 공관을 방문하고, 파견단원의 주무관서(정부 부처)에 인사하고, 또 며칠은 스리랑카 유명 명소나 관광지를 둘러보는 정도로 마치고 다른 국가와 달리 이르게 임지에 도착하게 되었다. 5명의 단원 중 정선영(특수교육 분야/장애인 직업교육훈련센터)의 임지와 함반토타(중소기업관리 분야)가 다른 지역보다 특히나 척박한 환경이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두 곳은 유난히 교통사정이 좋지 않았고, 특히 함반토타는 남쪽 해안으로 가장 더운 곳으로 알려졌었다.


현지 훈련을 마치고 임지로 향한 날이 하필 생일날,

그때도 그랬지만 생일이 내겐 그리 큰 의미가 있다기보다 오히려 부모님께 감사하는 날임을 교육받았던 터라, 내겐 어릴 쩍 친구들의 생일을 특별하게 챙기는 버릇으로 유명했던 사건이 있기도 하다. 친한 몇몇 친구 생일날 선물로 마련한 것들이 빨간 고무장갑, 버선, 어른 양말 등으로 준비한 선물은 친구에게 전한 것이 아니라, 친구 부모님께 전해드리며 '좋은 친구를 낳아주시어 감사하다'라고 인사했었다. 한동안 잊고 지내다, 어른이 되어 친구 부모님 환갑잔치 등에 인사드리러 갔다가 그 옛날의 기억을 살려내 주시며 안부를 물어 주시던 기억이 있다.

임지로 가는 날 특별히 짝지어 준 2기 선배가 안내를 맡았다. 선배는 이미 1년이나 먼저 익힌 너무 익숙한 문화였지만, 도착한 한 날 명암정도만 구분되었던(익숙지 않아서 더했으리라) 칠흑 같은 야밤에 미리 연락된 안내대로 함반토타 시 공무원 '수실라 미스'(33년이 지난 지금도 함반토타 총무부서 담당 공무원을 그렇게 불렀다) 댁으로 안내되었다. 도착하자마자 간단히 선배의 소개로 인사를 나눴고, 오는 길에 저녁식사를 마쳤다고 하자, 하룻밤 묵을 방을 안내해 주었다. 야심한 밤 대강 씻기라도 했는지 기억도 없는데, 밤새 모기들의 손님 접대를 피하지 못한 기억은 생생하다. 현지 도착 후 맞았던 첫날 최악의 모기떼 공격, 그것도 생일날을 지냈는데, 언제 잠이 들었는지 8시간 이상 꼿꼿이 앉아 흔들리는 대중교통수단인 버스의 요동과 모기들의 떼공격을 이길 수 있는 체력이 아니었음이 분명했다. 그날 이후 그런 고통과 아픔은 일상이 되었다. 33년 전 그 밤, 낯선 한국 봉사단 둘이나 재워주신 '수실라 미스'는 함반토타에서 조금 먼 곳 다른 지역에서 생존해 계심을 알게 되었지만, 이번엔 못 뵙고 돌아왔다.


내 고향 함반토타, 그리고 WDF

선배는 다음 날 바로 이른 아침에 주 활동지며 근무지인 Hambantota WDF(Women Development Federation)로 이끌었고, 함반토타 GA(시장)께 신고를 하게 하고, 사무실에 들러 직원들에게 소개하고, 인수인계를 마치고는 이내 콜롬보를 지나 자신의 임지로 가야 한다며 반나절 만에 함반토타를 떠나버렸다. 우선 사무실에 자리를 지정해 주었고, 이때 코워커로 소개받은 옆자리 짝꿍이 Mrs.Latha 씨다. 라타 씨와의 인연은 다음으로 미루어야 할 것 같다. 첫날 어설픈 현지어를 통해 해야 할 업무를 전달받았고 그간 한국에서 직무훈련 시, 또 콜롬보 본부의 신고식에서 업무를 조금 이해는 하고 왔지만 이해가 될 리 없었다. 점심시간이 되자 각자 싸 온 점심을 먹으며 손님 몫으로는 자기들 몫을 조금씩 손으로 나눠 한 끼의 점심을 마련해 주었다. 이미 손으로 밥을 먹는(손으로 밥을 먹다-අත්තින් කෑම කෑම (attin kæma kæma) 연습은 다른 동기보다 원숙하게 익히고 왔으니, 동료들의 놀라움을 온몸에 받으며 맛나게 점심을 해결한 역사적인 시작이 되었다. 첫날 사무실에 도착한 낯선 한국인이 자기들과 얼마나 점심을 맛있게 먹었는지 지금까지도 내려오는 전설 같은 이야기가 되어있다. 오후 3시경 지난밤 방을 내어 주었던 '수실라 미스'가 간밤에 보관했던 짐과 공관 차를 준비해, 미리 얻어 놓은 하숙집으로 안내해 주는 것으로 임지에서 첫날을 맞았다.


이튿날부터 시작된 업무는,

한국 봉사단원으로서는 처음으로 마이크로크레디트 사업 운영 총괄본부 격인 재무부 산하 JTF_Janasavia Trust Fund와 25개 행정지역 (시) 구 중의 나름 남부주의 큰 함반토타 District(Southern Province/남부 주의 구)가 감독기관으로 WDF는 하위 여성조직의 코디네이터로서의 일을 시작했다. 스리랑카 남부 해안지역의 척박했던 함반토타의 마을 단위에서 같은 마을 여성들 자치기구를 통해 5명이 팀을 이루는 (5 members group) 그룹 책임제로 엄격한 서열을 정해(그룹 금고 재무담당-마을(금고) 대표) 소액으로 저축을 시작하도록 돕고 일정기한이 지나면 그룹에서 정한 약속대로 대출 목적과 금액에 대출이 이루어지는(대출 목적에 따라 다른 이율_ 결코 낮지 않았다)제도로, 당시 다른 시중 은행 대출과는 은행 문턱이 낮은 차별화가 있었다. 이름하여 스리랑카형 Janashakti Bank(Micro Credit), 이후 우리나라 새마을금고연합회 및 새마을 운동중앙본부의 사업 등을 벤치마킹 했던 사정으로 보아 우리나라의 마을금고와 닮은 꼴이라고 여겨도 크게 다르지 않을 듯하다. 이와 관련한 제도는 *무하마드 유누스 박사에 의해 너무나 잘 알려진(유누스 박사는 2006년 노벨평화상을 수상했음) 방글라데시로부터 시작된 그라민뱅크 Micro Credit(한국에서는 ‘미소금융’으로 알려져 시행했다. 다만 그 배경과 운영 방식은 저개발국 모델과는 많이 달라, 학업 중 논문으로 관련 내용을 연구했었다) 이론적인 배경을 벤치마킹해 스리랑카식으로 변형한 제도로 보면 틀리지 않을 것이다.


Micro Credit, 소액금융제도를 제대로 배우다


한 달 기준 3주 간은 함반토타에서, 나머지 한 주는 콜롬보를 오가며 함반토타 WDF의 대출 및 상환 실적을 JTF에 보고한다. 이미 집행되어 각 지역 단위의 JB금고에서 WDF에 상환한 금액을 합산한 금액으로 발행한 수표(상환금)와 상환서류를 제시하고, 일주일 동안 콜롬보에 머물면서, WDF가 최종 정리해 다음 달에 집행을 청구한 금액을 대출해 오는 방식이었다. 본부 JTF는 World Bank와 아시아개발은행의 지원을 받아 대출 자본금으로 사업을 수행하는 제도로, 지나고 나서야, 당시 정부는 나름 고리대금을 하고 그 대금으로 엄청난 일자리를 만들었던 것으로 이해되었다. 당시 함반토타 WDF는 기타 다른 지역보다 월등한 회원수와 대출 실적과 사업수행 실적이 높아 가장 모범되는 조직이었다.


* 무하마드 유누스(Muhammad Yunus) 박사는 방글라데시의 경제학자, 사회 운동가이자 은행가로, 빈곤 퇴치를 위한 ‘마이크로크레디트(소액대출)’과 그라민 은행 설립으로 2006년 노벨 평화상을 수상한 인물이다.

* 그의 저서 'Banker to the Poor_빈곤 없는 세상' 에서는 1974년 방글라데시를 덮친 기근을 겪으며, 가난한 사람들이 고작 몇 달러 때문에 고리대금업자의 횡포에 시달리는 현실을 보게 되면서 그는 빈곤의 원인이 게으름이 아니라 금융 접근성 부재라는 것을 깨닫고, 빈민들에게 담보 없이 소액을 빌려주는 마이크로크레디트 개념을 정리하고 시행했던 분으로 공부했었다.

* 함반토타(හම්බන්තොට)는 스리랑카 남부에 위치한 항구 도시로, 2017년 12월, 스리랑카는 함반토타 항구의 99년 조차권을 중국에 양도했다. 스리랑카 항만공사가 중국 항만기업으로부터 11억 2000만 달러를 받고 이 항구의 운영권을 99년간 중국에게 주었던 일로 세계의 관심을 받기도 했던 사건이 있었으나, 현재의 상황은 잘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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