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 함반토타는 곡절도 많구나
웰빙과 웰다잉_스리랑카 편
이 글은 한국국제협력단 파견 해외봉사단원으로 활동했던,
죽음을 이겨내고 살아온 세월을 돌아보며 활동당시의 임지방문 등 15일 간 스리랑카 여정을 담는 글이다.
일이 너무 즐거웠던가? 한 주는 늘 ‘월화수목금금금’으로
함반토타 전역의 52개(현재는 99개로 늘었다고 한다)의 마을금고에서 여성들이 주체가 되어 소액 저축을 하고, 그 저축액을 기반으로 창업 범위에 따라 대출 및 창업지원을 하는 방식으로, 사업의 범위나 종류는 마을 단위의 소규모로 마을 주민과 인근 상가를 대상으로 빵을 굽고, 양계를 하고, 벽돌을 찍고, 봉제를 하고, 코뿔소 우유로 요구르트를 생산하고, 비누를 만드는 등 다양했다. 개별 또는 그룹 단위별 사업을 서로 지원하는 일을 살피고 응원하던 일이니 딱 적성에도 맞는 일이었으니 얼마나 신나고 즐거웠던지~
52개 마을금고(JB)를 다니며 창업자 및 창업자의 사업타당성, 당시에도 제품을 생산하는 업종이면 생산하는 과정과 원가대비 수익은 얼마나 창출할 수 있을지, 누구를 대상으로 판매할지(고객과 채널)를 같이 점검하고, 응원하는 일이 주 업무였다. 특히 각 금고의 창립기념식(주로 주말에)을 겸하며, 성과를 많이 낸 지역의 창업자를 포상하고 응원하는 일, 그러니 주말이 따로 있을 리 없었고, 행사 날은 마을의 잔치나 다름없었다. 그러니 사업 성과를 보고하며 대출금을 상환하고, 또 청구한 금액을 받아오는 일이 기대될 수밖에, 상환액을 적은 수표를 갖고 콜롬보 본부에 가서 1주간 머물며, 한국에서는 구경도 못했던 Lotus123이라는 프로그램을 배워가며, 마을마다 정리해 온 보고서를 다시 입력해 총금액의 상환액을 정리하곤 했었다. 상환 정도에 따라 추가로 배정받는 대출액이 조금씩 달랐지만, 만약 요청한 금액이 많이 줄어들어야 한다면 본부의 담당자와 상급자를 통해 어떻게든 맞추려고 애썼던 날들.... 참, 무슨 생각으로 그런 떼를 썼던지......
* 스리랑카 정부에서 강하게 추진했던 마이크로크레딧 제도를 수행하면서
함반토타에서 운영한 조직의 체계도로 사업 이해를 돕기 위한 조직표
적성에 딱 맞는 창업지원
다행히 목표한 금액의 수표를 발행받아 함반토타로 돌아오는 날은 너무나 기분 좋았고, 대출을 기다릴 WDF 직원들은 물론 소액이지만 사업자금을 기다릴 마을 사람들을 상상하며 콜롬보를 떠나 마을로 내려갈 준비를 했던, 일반도로로 에어컨 바람을 구경도 못하는 훈훈한? 날씨를 견디며 가야 하는 8시간 이상 달려야 하는 일반형과 4-5시간 인터시티(새벽 12-1시 출발해야 하는) 중 콜롬보를 올 때는 주로 인터시티를 다시 함반토타로 향할 때는 아침녁에 출발해 저녁에 도착하는 일반형(차가 중간에 고장이라도 나면 10시간)으로, 그래도 늘 즐거웠던 것은 그들과 한마음으로 동화된 때문이었던 것 같다. 이후 주 초가 되면 발행받은 거금의 수표를 지정 대표 은행에 입금해, 각 지역 금고에서 요청한 금액으로 다시 나눠 한 주간 마을의 대표와 재무 담당을 통해 분배했다. (더욱 신나는 때였다.) 때로는 사고 금고가 생기는 경우(사업이 안 되어 부도를 내기도 하고, 야반도주를 감행하기도 하고, 여러 가지 사정상 사업을 계속할 수 없는 경우 등)는 지침에 따라 토론하고 의결했다. 사고 시 처리할 예비비도 보험처럼 따로 모으고, 그때마다 회의에 회의를 거듭하고 재발방지를 다짐해도 어쩌랴, 거기도 사람 사는 곳인데......
하루하루를 일과 마을 친구들과 너무 친해져 오른손으로 밥과 카레를 비벼먹고(맛난 음식을 서로 한 입씩 떠 넣어줄 줄 정도의 친밀함이 형성되던 때) 현지어로 소통이 자유로워지면서 나름 유명해졌을 그때쯤인가 보다. 봉사단 파견 역사의 초기였던 터라 코이카나 선배들이 경험하지 않은 일을 요구받게 되었다. 스리랑카 함반토타 GA( Government Agent_District Secretary)와 WDF 회장, 부회장, 사무장까지 4명과 현지 봉사단원을 통역 요원으로 구성한 총 5명이 한국의 '새마을금고연합회'와 '새마을운동중앙본부'에 견학단으로 이끌고 1년 남짓 활동 후 한국을 오게 되는 봉사단 파견 짧은 역사상 최초 '국내연수?'를 기획하고 만들어 냈다. 아무래도 이 과정은 더 길어질 것이라 다음에 소개해야 할 것 같다.
WDF 역사에 남은 한국견학단
한국에서 파견된 봉사단원 기획한 '견학'프로그램은 함반토타를 일약 스타도시로 만들어 버렸다. 이미 마이크로크레디트 사업을 스리랑카에서 가장 잘하는 곳으로 유명한데, 한국에서 '새마을운동'과 '새마을금고' 시스템을 더한 견학 결과물을 묶어서 '국내연수 프로그램'기획하고 홍보를 하니 엄청난 파급효과가 바로 나타나기 작했다. 스리랑카 동서남북 전국 각지에서 2박 3일, 또는 3박 4일 일정으로 함반토타로 연수를 오게 되는, 그야말로 시청 강당은 날마다 사람들로 넘쳐나고, WDF연수 프로그램을 운영하기 위해 전 직원들은 물론 추가로 선발된 임시직원들까지 바빠지기 시작했고, 지역에는 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동안 만든 식당과 숙소확장 등 크고 작은 일자리들이 계속 늘어나기 시작했다.
이번 일정에서도 가장 먼저 방문한 곳은 함반토타 WDF, 방문한 날이 주말임에도 지역 JB은행 여성들의 거래를 하고 있는 창업자, 영세상인, 예비창업자들의 역량 강화 훈련과 금고 직원들의 직무 훈련이 있었다. 잠시 인사를 하러 들렀다가 교육생들과 점심을 나누고, 1991년 함반토타 GA로 WDF 설립자의 사망 소식과 더불어 마침 교육관에 설치된 영정을 대하며 그간의 노력에 감사를 전하기도 했다. 현재는 설립 당시 함반토타 여성부 행정 책임자였던 분과 만나게 되었고, 함반토타에 머무는 일정 간 특강을 제의 받기도 했다.
현지어를 잊지 않으려 출발 2주 전부터 유튜브를 통해 스리랑카 영화와 드라마를 보고 익힌 것이 도움이 된 듯한데, 강의? 형태일지 아니면 예전처럼 짧은 인사가 될지 몰라 조금 준비를 해야 했었다.
사실, 이 글을 다시 정리하면서, 초기 봉사단 OB들이 단체(KOVA)를 만들면서, 파견 후 30년이 지나면 ‘고향 보내주기’ 프로젝트를 만들자 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KOVA의 초기 활동과 이후 전국을 10개로 쪼개어 봉사단원 OB회원들의 활동은 천천히 다시 알릴 기회가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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