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자에게 묻는다

04. 동기들

by 기린

웰빙과 웰다잉_스리랑카 편

이 글은 한국국제협력단 파견 해외봉사단원으로 활동했던 33년 전, 죽음을 이겨내고 살아온 임지 재방문 등 15일 간 스리랑카 여정을 담는 글입니다.


KOV 3기 들이 궁금하다

지난 글에 나눴지만, 1992년 3기 파견 8개국의 단원 중 스리랑카는 태환(토목) 선영(특수교육_분야가 정확한지 모르겠다) 인영 그리고 미희(영양사) 그리고 중소기업관리 분야까지 5명, ‘비 내리는 호남선‘을 열창하던 오목다리? 인영은 2021년 4월, 뭐가 그리 바빴던지 저 먼저 하늘로 소풍을 떠났다. 인영은 훈련 때는 미처 알지 못했었다. 현지 파견 후 모두의 언니처럼 우리 3기의 필요를 먼저 챙기던 든든하고 착한, 임기를 마치고 사회복지를 더 공부해 사회복지사로 열심히 일하며 이후 동기들의 만남도 적극적이던 지금도 짬짬이 보고 싶은 동기다. 이후 태환과 미희는 부부의 연을 맺었고 태환은 활동을 마치고 계속 건축업무를 수행하는 멋진 대표님으로 경기도 일원에서 사업이 분주하다는 소식을 들은 지 벌써 10년도 더 지난 듯하다. 선영은 캐나다로 이주해 살고 있는 소식까지 듣고 지금은 어찌 살고 있는지 알 수 없어 아쉽다. 이번 일정에서도 가장 먼저 떠오른 사람들이 동기들이었고, 어디서든 KOV정신?으로 무어든 다 잘 해낼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는다.


당시 단원들은 분기별 또는 코이카 출장자가 있을 때

각지에서 활동하다가 (당시 임기는 2년으로 한해에 두 기수가 활동하니 첫해는 선배 기수와 먼저 다음 해는 후배기수와 함께 활동하게 되었었다. 수도 콜롬보에 위치한 호스텔에 모여 회의 및 활동 보고도 하고, 코디네이터를 통해 활동 상황에 대하여 보고를 겸해 어려움을 호소하거나 무엇보다 임지에서는 먹기 어려운 한국 음식을 콜롬보 소재 한국식당에서 원 없이? 먹는 기회를 갖기도 하고 동기와 선후배들과의 즐거운 수다로, 동기들과는 새로운 세상을 만나는 즐거운 에피소드 등으로 밤을 새기도 했다. 호스텔에는 코디네이터(코이카와 단원들의 중간 역할)가 항시 대기하고 있어 언제든 단원들의 방문에도 대처할 수 있도록 준비하곤 했던 것 같다. 그러던 중 ‘김치바라기’ 단원 몇의 청에 동기 인영이 김치 담기를 시도했다. 양배추 김치를 시작으로 파김치 향수를 기대한 누군가의 청에 못 이겨 머리가 작은 양파(뭐라 부르는지?)를 몽땅 사다가 파김치 흉내?를 내기도 했다. 문제는 그날 밥보다 맛있게 버무려진 양파김치를 덥석 욕심을 내던 사람들은 익지도 않은 생양파 김치를 너무 많이 먹고 결국 그 밤에 배탈이 난 사태를 맞았고, 그중 어릴 때부터 장이 시원찮은 내겐 치명적인 밤을 보냈던 추억이 생생하다.


호스텔은 남녀 구분된 방에서 전국각지에서 활동하던 단원들이 모여 밤새 수다도 하고,

아마도 금지 항목이었을 터지만, 선배 중 놀이에 능한 이의 주도로 고스톱도 치고(내 경우도 그때 배워 익혔었다)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고, 초보 실력을 발휘? 해 돈을 잃곤 했지만 뜻하지 않은 기회도 있어, 엉뚱한 결과를 내기도 한 별별 기억이 다 스쳐간다. 남자 단원 몇몇은 아락(Arrack)을 마시는 등 (*아락은 코코넛 꽃의 수액(토디, toddy)을 자연 발효시킨 뒤 증류해 만드는 스리랑카의 전통 증류주로 알코올 도수는 33–50% 정도로 꽤 높은 편 스리랑카 전통주로 알려져 있다) 작은 일탈도 했을 터이다. 그러나 또 그런 즐거움이라도 없었더라면 청년의 때에 그 먼 나라에서 무엇으로도 달랠 수 없는 각자의 외로움과 어려움을 어떻게 견뎌냈을지, 요새야 다양한 볼거리가 있고, 언제 어디서든 소통이 되는 시대니 말해 무엇하랴.


내 경우야 의무적으로 최소한 월 1회 콜롬보를 향해 오는 일정이 있으니,

콜롬보의 변화나 도시와 시골의 변화를 빠르게 적응하며 살고 있었었지만, 당시 동기들 중 대부분이 시골 생활에 푹 젖었다 분기별 또는 코이카 출장자나 대사관 행사 때 일정을 맞춰 콜롬보행을 하곤 했다. 올 때마다 그 반가움으로 하고 싶은 것들이 참 많았던 것 같다. 눈요기를 위해 majestic city 나 unity plaza 등 쇼핑몰에서 생필품을 구매하는 것이 일상이 되었었다. 그리고 교민들과 부딪히지 않도록 (당시 왜 그랬는지, 봉사단원들이 호텔 출입은 금기였던가?) 정확하지는 않지만 코이카의 지침 사항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하긴 지금 생각하면 조금 억지스러운 훨씬 많은 지침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렇지만, 아주 가끔 동기들끼리 호텔 커피숍을 들르기도 했었다.

우리 기수의 유난함은 여러 가지로 유명했다. 모든 동기들이 현지 언어(싱할라)가 능해 임지에 배치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활동 임지 동네에서는 모두 유명 인사가 되어있었고, 동기들은 서로의 임지와 하숙집을 돌아가면서 방문해 응원하는 끈끈한 힘을 보여주곤 했다. 임지에 가서는 은연중 ‘우리 동기 잘 봐줘라!’‘동기에게 무슨 일 있으면 우리가 달려온다’ 등의 세를 보여주기도 했고, 지역에서 은근 단단하게 자리 잡도록 힘을 보여주곤 했다. 서로의 임지에서는 지역 특산물이나 음식으로 이웃들과 나누는 일도 벌이곤 했었다.

또 다른 추억하나는 그리 잘 뭉쳐 다니다 당시 여행주의 지역인 ‘트린코 말리’를 보고 없이 감행하는 바람에 동기 전체가 ‘주의’를 받기도 했었다. 돌이켜 보니 '주의'를 받았음에도 마치 전시 같은 지역 분위가, 그와는 상반된 열대어를 수출하는 지역산업 현장 방문 등 그때만큼 흥미진진한 여행은 없었던 것 같다.


또 하나 정말 신나는 일 중에 하나가, “AYUBOWAN” 소식지를 발간하는 것이었다.

3기였지만, 이미 귀국한 상태로 임기를 마치고 현지에 머물거나 다시 랑카를 찾은 선배 기수인 1기, 그리고 함께 활동하는 2기와 3기의 소식을 모아 발간하는 일로, 먼저 하늘 간 인영이가 편집위원이 되어 1, 2, 3기의 글을 모아 “AYUBOWAN” 소식지를 발간하곤 했었다 아마도 분기별로 발행했던 것으로 기억하고, 스리랑카를 시작으로 이후 다른 나라로 전파되어 각 나라 봉사단원들의 소식을 전달하는 매개체의 역할이 된 듯하다. 그 이후 새해의 연하장으로 진화했고, 코이카는 이후 단원들의 현지생활을 담아 정리하는 책을 발간하는 등의 지원도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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