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자에게 묻는다

05. 하숙집

by 기린

이 글은 한국국제협력단 파견 해외봉사단원으로 활동했던 33년 전, 죽음을 이겨내고 살아온 임지방문 등 15일 간 스리랑카 여정을 담는 글입니다.


첫 번째 하숙집 – 무슬림 교사 부부와의 인연

첫 번째 하숙집의 주인은 공립학교에서 근무하는 부부 교사였다. 체육교사인 남편과 영어교사인 아내, 그리고 1남 1녀의 단란한 가정. 무슬림 대가족이어서 집안 행사라도 있으면 함반토타의 유지들이 모여드는 북적한 풍경이 펼쳐지곤 했다. 현지어가 서툴렀지만, 초등학교 저학년이던 남자아이는 유난히 수줍음이 많으면서도 새 식구인 나를 신기해했다. 저녁이면 뒷마당에서 호수 너머로 지는 석양을 바라보곤 했는데, 그때마다 아이는 조심스레 다가와 벗이 되어주었다.

문이 없는 집, 그리고 한 달간의 방문 만들기

새로 지은 집이었지만 방마다 문이 없고 천으로 만든 커튼이 방문을 대신했다. 개인 욕실과 화장실이 따로 있는 건 다행이었지만, 커튼 방문은 시간이 지날수록 불편함이 커졌다. 무엇보다 주인 부부도 낯선 이방인과 커튼 하나 사이에 지내는 것이 편치 않아 보였다. 조심스레 방문 설치를 부탁했고, 비용의 절반을 부담하는 조건으로 작업이 시작됐다. 그런데 전통 방식으로 문을 만드는 과정은 상상 이상으로 오래 걸렸다. 못을 거의 쓰지 않고 나무를 깎아 맞춘 뒤 아교로 고정하고, 로프로 묶어 말리는 방식. 목수는 낮에는 다른 일을 하고 오후에 와서 조금씩 작업을 이어갔다. 그렇게 한 달이 지나서야 멋진 방문이 완성되었고, 그날은 작은 잔치라도 열린 듯 기쁜 날이었다.

퇴근길의 행복과 도난 사고

첫 번째 하숙집에서의 퇴근길은 늘 즐거웠다. 운동장에서 만나는 아이들, 수줍은 주인집 꼬마, 뒤뜰 호수의 석양, 영어교사 주인 아내의 맛있는 음식까지. 모든 것이 좋았다.

그러나 콜롬보 출장에서 돌아온 어느 날, 빨아 널어둔 옷가지가 모두 도난당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KOICA에서 지급한 티셔츠와 출장 때 입었던 옷들이라 더 눈에 띄었을 것이다. 경찰에 신고했지만 이미 다른 지역으로 넘어갔을 가능성이 높아 찾기 어렵다는 답만 들었다. 주인과 이웃들은 미안해했지만, 나는 경찰서를 지나 출근하는 길이 어색해졌고 결국 이사를 결심하게 되었다.

밤길의 개떼와 ‘지팡이·돌멩이’ 전략

하숙집이 버스터미널에서 멀어 콜롬보행 인터시티 버스를 타려면 늦은 밤 어두운 길을 걸어야 했다. 가로등도 없는 길에서 개들은 인기척만 나면 일제히 짖어대고, 처음엔 혼자 다니기 어려웠다. 몇 달 동안 주인아저씨가 자전거로 바래다주기도 했다. 그러다 나만의 방법을 찾았다. 튼튼한 배낭을 메고, 한 손엔 묵직한 나무 지팡이, 다른 손엔 돌멩이. 집을 나서며 지팡이로 땅을 ‘퉁퉁’ 찍어 소리를 내면 개들이 슬슬 물러났다. 처음엔 돌멩이를 챙겼지만 점차 지팡이만으로도 충분해졌다. 그 무렵 도난 사고가 터진 것이다.


두 번째 하숙집 – 다람쥐 ‘레나’, 뎅기열, 그리고 사파이어 반지

사무실 동료들의 도움으로 두 번째 하숙집을 찾았다. 무슬림 가정이었고, 주인장은 외항선 선원 출신, 아내는 두 아들을 키우는 따뜻한 분이었다. 뎅기열로 쓰러졌을 때, 이 부부는 발 벗고 나서 콜롬보 나왈로카 병원까지 함께 동행해 주었다. 한국에서 치료를 마치고 다시 함반토타로 짐을 정리하러 갔을 때, 주인집 아내는 울며 안타까워했고, 손가락에 끼고 있던 사파이어 금반지를 빼어 내게 건넸다. 나도 즉석에서 친구들이 마련해 준 반지를 답례로 끼워주었다. 지금도 잊을 수 없는 순간이다.

두 번째 하숙집에서는 뜻밖의 가족도 생겼다. 코워커 라타 씨의 친구가 엄마를 잃은 아기 다람쥐 ‘레나’를 데려왔고, 동네에서 다람쥐와 친하다는(?) 이유로 나에게 입양을 권했다. 방 안을 놀이터 삼아 뛰어다니던 레나는 어느새 가족이 되었지만, 뎅기열로 쓰러졌을 때 돌볼 수 없어 자연으로 돌려보내야 했다. 지금도 마음 한편이 따뜻해지는 기억이다.

도심의 풍경과 사파리의 기억

두 번째 하숙집은 도심에 있어 풍경은 덜했지만, 터미널 주변의 5일장과 새벽 수산시장은 늘 흥미로웠다. 항구에서 갓 잡아 올린 생선들이 거래되는 모습은 활기가 넘쳤다. 요리는 못했지만, 동기들이 방문하면 가재와 게로 포식하던 날도 있었다. 또 가까운 얄라(Yala) 국립공원 덕분에 코끼리를 자주 볼 수 있었다. 한편으로는 코끼리의 공격으로 집이 무너졌다는 소식을 들을 때마다 낯설었지만, 어느 날 행사에 가던 중 참혹한 현장을 목격하고, 길에서 코끼리 떼를 피한 경험을 하면서 그들의 야생성을 실감했다. 지금은 서식지 파괴로 먹이를 찾아 마을로 내려오는 사정을 이해하지만, 당시엔 꽤나 큰 충격이었다.


쓰나미 이후 사라진 첫 번째 하숙집

2004년 인도양 쓰나미는 그 아름답던 첫 번째 하숙집과 동네를 흔적도 없이 쓸어갔다. 이번 일정에서도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찾아봤지만, 일가친척은 물론 아이들의 소식도 들을 수 없었다. 두 번째 하숙집 역시 주인 부부는 이미 연로하셨을 것이고, 아들·딸의 흔적도 찾지 못했다.


하숙집에서 겪은 일들은 언젠가 또 마음이 움직일 때, 그 이어진 이야기들을 다시 꺼내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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