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자에게 묻는다

06. 함반토타 시골장과 소금밭

by 기린

이 글은 한국국제협력단 파견 해외봉사단원으로 활동했던 33년 전, 죽음을 이겨내고 살아온 임지방문 등 15일 간 스리랑카 여정을 담는 글입니다.


시골장(지역마다 부르는 이름은 다르지만)은 어디서나 흥미롭다

호기심이 많아서일까. 세월이 지나 돌아보면, 일을 위해 방문했던 몽골·캄보디아·베트남·아프리카 등 여러 나라에서도 주말 시골장의 풍경은 늘 유난히 흥미로웠다. 이곳 스리랑카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오래전 동기들과 주말 나들이 겸 시장에 가면 우리는 많은 것을 배우고, 낯선 것들에 흥미를 느끼며 사고, 먹고, 작은 소품들을 챙겨 나누는 즐거움을 누렸다. 각 지역의 특산물을 하나씩 훑어보며 나누는 재미도 쏠쏠했다.

동기들과의 시장 나들이

남쪽 지역의 내 일터와 중간 산간 지역의 태환·미희·인영은 그나마 필요한 것을 쉽게 구할 수 있었지만, 선영의 활동 지역은 신속에 위치한 장애우 공예학교라 환경이 훨씬 열악했다. 그래서 새로운 먹거리나 물건을 발견할 때마다 우리는 선영을 더 챙기곤 했다. 미희·태환·인영이 활동했던 항구란케타(Hanguranketa)는 중부 누와라엘리야(Nuwara Eliya) 지구의 작은 고산 마을이다. 그들과 달리 나는 도심과 가까운 곳에서 생활해 시골 마을 곳곳에 서는 작은 장터들을 자주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우리의 5일장처럼 주말이면 터미널 한편에 큰 장마당이 펼쳐지곤 했다.

장을 ‘보는’ 것보다 ‘구경하는’ 재미

콜롬보 일정이 없는 주말이면 장을 보러 가기보다 장을 ‘구경하러’ 가는 재미가 더 컸다. 나들이 겸 현지어 훈련의 장으로 종종 방문하곤 했다. 혼자일 때와 달리 동기들이 함반토타를 방문했을 때는 온 시장의 관심거리가 되기도 했다. 나는 주로 구경에 치우쳤지만, 동기들은 떼로 몰려 이것저것 한 보따리씩 사기도 하고, 현지어에 능숙해질 무렵엔 농담을 섞어가며 가격을 깎고 덤을 얻기도 했다. 새로운 모양의 채소나 나물을 발견하면 즉석에서 조리 방법을 배우기도 했다. 돌이켜보면, 그곳 사람들은 생계를 위해 나온 자리였음에도 낯선 이방인 다섯이 현지어로 농을 던지며 다가가는 모습을 즐겁고 유쾌하게 받아주었다. 그 모습이 지금도 정겹다.

33년 만에 만나는 함반토타 주말시장, 아직 이른 시간이라 붐비지 않았다


소금밭에 얽힌 기억들

함반토타는 오염이 없는 소금 생산지로 유명하다. 소금 생산 농장은 이 지역에 많은 일자리를 제공해 왔고, 내 친구 Latha의 둘째 사위와 언니의 아들도 그곳에서 근무했다. 친구 남편 역시 그곳 출신이다. 스리랑카에서 가장 큰 광활한 소금 농장(염전, Salterns)은 햇빛과 바람을 이용해 바닷물을 자연 증발시키는 전통 방식으로 소금을 생산한다. 산업적·관광적 가치가 모두 높은 곳으로 알려져 있으며, 1938년경부터 본격적으로 생산을 시작해 지금까지도 스리랑카 전역에 소금을 공급하는 주요 생산지다.


소금밭은 내게 많은 추억을 담고 있다. 일상이 잠시 무료해지거나 사무실 직원·공무원들과 소통이 잘 되지 않아 답답할 때, 또 가족과 친구들이 그리울 때면 빨간 스쿠터를 타고 소금밭 주변 동네를 돌곤 했다.

소금밭 경계를 따라 달리다 보면, 평소 코끼리 출몰을 경고받았던 분달라 지역의 긴 낭만적인 길도 자주 찾았다. 그 길은 유난히 한적하고 좋았다. 사무실 직원들은 그 길을 다녀왔다고 하면 질색하며 다시는 가지 말라고 신신당부했지만, 그때의 나는 무슨 배짱이었는지 고요하고 한가로운 그 길이 함반토타 자연의 느낌을 가장 잘 보여주는 곳이라 자주 찾았던 것 같다.

끝없이 펼쳐진 함반토타 천일염 염전

소금농장에서 들려온 비보

그러나 그렇게 많은 추억이 담긴 그곳에서, 도착한 지 사흘째 되던 날 소금농장에서 발생한 사망 사고 소식을 듣고 잠시 혼란스러운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소금밭 근로자가 사용하던 소금 운반 기계가 분리되면서, 운전 중이던 근로자가 기계와 함께 넘어져 사망에 이르렀다고 했다. 고인은 친구 사위의 동료일 뿐 아니라 Latha 가족들과도 가까운 사이여서 장례식에도 참석해야 했다. 어린 두 자녀와 일 경험이 전혀 없는 아내를 남겨두고 떠난 고인의 사연은 더욱 안타까웠다. 무엇보다 이런 중대재해에 무방비로 노출된 회사였고, 공공 보험 혜택조차 전혀 없다는 사실에 놀라움과 슬픔이 더해졌다. 그 시절 가장 즐겨 다니던 드라이브 길을 떠올리던 중 들은 비보라 마음이 더욱 무거웠지만, 어떤 것도 도움이 되지 못했다. 그럼에도 소금밭은 곱씹을수록 오래도록 남을 추억의 장소다.

image.png 함반토타 소금밭은 여전히 명물이다

다행히 함반토타 소금밭은 쓰나미를 피해 살아남아 여전히 지역의 명물로 건재했다. 그러나 작업 환경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고, 사고 발생 빈도나 피해 정도도 줄지 않았다는 종사자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앞으로도 무거운 마음으로 기억하게 될 것 같다. 부디 사고의 후유증이 길어지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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