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자에게 묻는다

07. Gayan 그리고 동생 들

by 기린

가족 같은 인연


33년 전, 굳이 누가 ‘코워커(Co-worker)’라고 지정해 주지 않았어도 함반토타 WDF의 모든 직원들은 이미 한마음이었다. 그중에서도 내 옆자리가 비어 있었다는 이유로 자연스럽게 절친이 되어 준 사람이 바로 Latha De Silva 씨였다. 세 살 터울의 내 친언니와 같은 나이라 금세 언니처럼 느껴졌지만, 당시 라타 씨는 이미 다섯 자녀의 엄마였고, 막내 Dinneth은 갓 태어난 젖먹이였다. 지금은 다섯 자녀에 손주, 손녀까지 둔 대가족의 중심이 된 라타 씨. 남편은 염전에서 벌써 오래전 퇴직했지만, 소금밭에서 일하던 당시 오른팔과 머리를 크게 다친 이후로 걸음도 행동도 느리지만, 여전히 집안의 모든 일을 묵묵히 해내는 만능맨이다. 느릿한 행동이 맘에 걸려 몇 차례 혹시 사고 외에 다른 병이 있는 건 아닐까 걱정되어 물었지만, 다행히 큰 문제는 없다고 했다. 다만 여전히 불낫을 씹는 습관 때문에 치아는 많이 상해 있었다.


불낫(Bulath)은 빈랑나무 열매(아레카넛), 석회(라임), 향신료, 약초, 담배 잎 등을 베텔 잎(Betel leaf)에 싸서 씹는 기호품으로, 씹으면 붉은 침이 나오는데, 스리랑카 거리에서 붉은 침 자국을 종종 볼 수 있고, 카페인처럼 정신이 맑아진다고 믿고? 있어 피로를 풀어준다고 생각한다고 한다. 세계보건기구에서는 구강암, 잇몸 질환, 치아 변색 등 위험이 높아 스리랑카 정부도 규제와 경고 문구를 강화하고 있다고 하나 여전히 길에는 불낫 씹어 뱉은 자국이 많이 눈에 띈다.

잔치잡이나 손님을 대할 때도 선뜻 불낫'을 권하곤 한다.


열세 살에 만났던 Gayan이 어느새 성인이 되어 결혼식에 초대를 받게 되었다

라타 씨의 맏아들 Gayan은 열세 살 때 처음 만났다. 성인이 될 때까지 누구보다 아끼고 응원했던 아이였다. 지금은 영어 교사이자 교육부 공무원으로 교사 훈련 업무에 집중하고 있다고 한다. 무엇이든 성실하게 해내는 Gayan을 늘 응원했고, 지금도 그 마음은 변함없다. 그런 Gayan이 어느새 성인이 되어 결혼 소식을 전해왔다. 당시 나는 대학 교양학부에서 겸임으로 강의 중이었고, 결혼식 날짜를 언제로 하면 좋겠냐고 물어와 2학기 종강과 성적 처리가 끝나는 12월 중순을 추천해, 결국 결혼식은 12월 24일로 정해졌다.

Gayan은 진로 상담을 할 때도 늘 누구보다 진지했고, 그때도 그랬고, 지금도 대가족의 맏아들로서 역할을 훌륭히 해내고 있다. 올해 98세가 된 외할머니, 점점 연로해지는 부모님, 두 남동생과 두 여동생, 그리고 조카들까지, 그 많은 가족을 품고 살아가는 Gayan에게 착한 아내와 건강한 딸이 있다는 사실이 참 다행스럽고 기뻤고, 무엇보다 함반토타 교육공무원으로 열정을 더하며 지역 학생들의 교육을 위해 힘쓰는 모습에 감동했다.

image.png 절친 Latha 씨네 아들 삼 형제 (Gayan, Lahiru, Dineth)_30년 전의 기념사진


막내 Dineth 부부의 첫 창업, 작은 아이스크림 가게

이번 함반토타 일정 중 가장 반가웠던 소식 중 하나는 막내아들 Dineth의 아내가 초등학교 맞은편에 작은 아이스크림 가게를 오픈했다는 것이었다. 초·중·고가 모두 모여 있는 학교 바로 길 건너, 3평 남짓한 공간에 냉장고 한 대, 냉동고 한 대로 시작한 소박한 가게였다. 하지만 센스 넘치는 막내의 아내가 직접 꾸민 매장은 아기자기하고 따뜻했다. 방문한 날에는 오프닝 세리머니도 함께할 수 있었다. Dineth은 처음에는 농업 관련 전공을 공부했지만 졸업 후 건축 분야로 방향을 바꿔 지금은 스리랑카 중견 건설업체에서 중간 책임자로 일하고 있다. 한국에서 창업 도우미로 활동하는 ‘이모(aunt)’로서, 나는 상권 분석부터 메뉴 구성, 마케팅까지 여러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image.png 셋째 Dineth의 아내가 오픈한 아이스크림 가게

두바이에서 꿈을 준비하는 둘째 Lahiru

둘째 Lahiru는 스리랑카 전통 춤꾼으로 활동하다 지금의 아내를 만났고, 아내는 이후 몬테소리 교사가 되었다. 현재는 두바이에서 열심히 일하며 사업자금을 모으고 있다. 그의 꿈은 이발소와 뷰티숍을 겸한 작은 가게를 창업하는 것이다. 한국으로 돌아가면 두 형제가 사업을 시작하는 데 필요한 정보들을 꾸준히 모아 전달하고, 든든한 ‘랑카형 멘토’가 되어주기로 약속했다.


학교 방문, 그리고 아이들과의 즐거운 시간

셋째네 아이스크림 가게가 자리한 상권을 이해하기 위해 인근 학교도 방문했다. 마침 방과 후 군사훈련과 운동 연습이 한창이던 학생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며, 그들의 활기와 에너지를 가까이에서 느낄 수 있었다.

image.png 초중고 공립학교의 교장선생님께 허락을 받아 아이들과 한판 수다도 ~~
image.png 마침 군사훈련(졸업 후 군인으로 직업을 선택한 경우 ) 중인 고등학생들


33년의 인연이 이어준 따뜻한 여정은 단순한 여행이 아니라, 33년 전 시작된 소중한 인연들이 어떻게 자라왔는지를 확인하는 시간이었다. 아이들은 어른이 되었고, 부모는 할머니·할아버지가 되었으며, 나는 여전히 그들의 ‘아우’, ‘이모’, ‘멘토’로 남아 있었다.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마음이 있다는 사실이 참 따뜻하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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