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죽음은 나뉘지 않는다

02. 끝내지 못한 하루의 기록

by 기린

누구나 한 번쯤 그런 날이 있을 것입니다.


계획했던 일들을 무사히 다 끝마쳤고, 종일 바쁘게 움직였으며, 사람들과의 약속도 어김없이 지켜낸 하루,. 실수 없이 완벽하게 돌아간 것 같은 날임에도 불구하고, 잠자리에 들기 전 이상하게 마음 한쪽이 텅 비어 있는 듯한 허전함을 느끼는 때 말입니다. 도대체 어디에서 무엇을 놓치고 온 것일까 되짚어보지만, 뚜렷한 답을 찾지 못한 채 허전함에 쫓겨 마음만 더욱 분주해지곤 합니다.


젊은 시절, '마지막'이라는 단어는 저와는 아주 먼 이야기, 아직 떠올리기에는 턱없이 이른 단어라고만 생각했습니다,. 눈앞에 닥쳐오는 현실을 살아내는 것이 먼저였기에, 죽음이나 끝이라는 화두는 마음속 깊은 곳으로 미뤄두고 살아왔습니다,. 하지만 분주한 일상 속에서 문득문득 밀려오는 이 정체 모를 허전함은 저에게 조용히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습니다. 바쁘게 쌓여가는 이 하루들은 과연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 것인지, 그리고 내 삶의 하루가 완전히 멈추는 그 지점은 어떤 모습일지 말입니다.

'웰다잉(Well-dying)'이라는 단어를 처음 접했을 때도 저는 비슷한 감정을 느꼈습니다,. 마치 먼 훗날 닥쳐올 불행이나 죽음을 억지로 미리 준비하라는 무거운 경고처럼 들려 의식적으로 멀리하려 했고, 나와는 상관없는 이야기라고 여겼습니다. 하지만 삶의 마지막을 진지하게 대면해 본 그날 이후, 웰다잉은 제게 전혀 다른 의미로 다가오기 시작했습니다. 내 삶에 끝이 있다는 사실을 의식하자 역설적으로 '오늘'이라는 시간이 다르게 보였습니다. 누군가에게 건네는 말 한마디를 신중하게 고르게 되고, 일상의 사소한 순간들을 함부로 흘려보내지 않게 되었습니다.


오늘 하루를 그저 소모하듯 다 써버리지 않으려는 조심스러운 마음이 생겨난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흔히 웰다잉을 '죽음을 앞두고 무언가를 거창하게 준비하는 일'로 오해하곤 합니다. 그러나 진정한 의미의 죽음 준비란, 나의 마지막 순간을 상상해 봄으로써 반대로 '지금 당장의 삶'을 더욱 소중하게 여기고 의미 있게 채워나갈 기회를 얻는 과정입니다. 우리는 나이가 들어가며 주변에서 점점 더 많은 죽음을 목격합니다,. 뜻밖의 재앙이나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이유로 세상을 떠나는 이들을 보며, 우리는 죽음이 결코 삶의 반대편에 있는 낯선 타자가 아님을 천천히 이해하게 됩니다. 죽음을 삶과 분리하여 불길한 것으로 밀어낼 것이 아니라, 우리 삶의 자연스러운 일부로 온전히 받아들일 때 비로소 우리는 늘 두려움 없이 오늘 하루를 더욱 단단하고 풍요롭게 살아낼 수 있습니다.


제가 이 연재를 시작하게 된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살면서 두어 차례 생사의 고비를 넘기며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어느 정도 극복했다고 자부했지만, 어느새 또 삶의 의미를 찾겠다며 무의미한 분주함 속을 헤매는 스스로를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누구나 언젠가 맞게 될 그날의 소풍을 위해 지금 어떤 노력이 필요할지, 그리고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웰다잉의 다양한 방법들을 함께 나누면서 남은 삶을 더 잘 살아보고 싶었습니다,.

우리는 자신의 수명이 얼마인지, 언제 어디서 어떻게 마지막을 맞이할지 아무도 알지 못합니다. 어쩌면 숨 가쁘게 달려온 삶을 마치는 그 마지막 순간에도, 오늘 밤 느끼는 이 원인 모를 허전함이 가득할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저는 텅 빈 마음으로 끝맺은 이 하루의 허전함을, 아직 다 쓰지 못한 '하루의 유언'으로 여기며 기록으로 남깁니다.

분명한 것은 단 하나입니다. 웰다잉은 결코 먼 훗날을 기다리는 우울한 준비가 아니라, 오늘을 대하는 가장 지혜롭고 따뜻한 삶의 태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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