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 오늘도 밥을 지어야 하는 삶
이 글은 국제개발협력 프로젝트 수행자로 한동안 팔레스타인을 드나들면서 경험한 일들을, 오랜 세월이 지나 '웰다잉을 위한 웰빙의 삶'을 전하는 몫으로 삶의 방향을 다잡아 가면서 다시 정리하는 글입니다.
결핍 속에서 지켜지는 삶의 리듬
팔레스타인에서의 하루는 늘 불확실했다. 입·출국장에서 작은 거짓이라도 해서는 안 되고, 거짓이 통할 리 없으니 애매할 때는 사실대로 말해야 한다는 점까지, 공공기관과 함께하는 사업 수행을 위해 출장 전 나름 충분히 공부를 했었다. 그런 체험 학습은 이전에도 이후에도 다시없을, 아주 특별한 경험이었다.
이스라엘이 외국인의 ‘팔레스타인 방문’을 달가워할 리 없었고, UN의 법적·정치적 지위가 아니면 상상하기 어려운 팔레스타인 내 청년 취·창업 지원 사업이었으니, 그 경계의 삼엄함은 충분히 이해되고도 남았다. 더구나 팔레스타인 국민은 텔아비브를 통한 입·출국 자체가 불가능한 상황이었으니 말이다.
외국인에게도 몇 가지 예외가 있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기관에서 준비해 준 서류를 들고 입국한 우리 일행은 개인 짐과 여권에 동일한 번호표가 붙었고, 일종의 관리가 이루어지는 듯했다. ‘78’이라는 번호의 의미를 굳이 알려고 하지는 않았지만, 무사히 짐을 찾아 대기하던 차에 오르는 순간까지도 모두는 이미 몇 차례 학습된 절차를 떠올리며 방심할 수 없었다. 그럼에도 밤하늘의 공기와 입국장의 긴장감에서 잠시 벗어나 맛보았던 그 짧은 순간의 자유가 지금도 선명하다.
첫날밤, 삼엄한 경계를 지나 도착한 ‘PALESTINE PLAZA HOTEL’은 당시만 해도 꽤 이름 있는 호텔이었지만, 늦은 시각임에도 손님의 흔적이 거의 없어 고요한 정적이 흘렀다. 다행히 온수는 잘 나왔지만, 열흘간 머무는 동안 이 호텔은 평일에는 거의 숙박객이 없고 주말에야 조금 사람들이 찾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독일 등에서 온 몇몇 손님과 우리 일행을 포함해 고작 5~10명 남짓이 그 넓은 호텔을 이용했고, 이후 일정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또 하나 잊을 수 없는 것은 이스라엘의 의무 군복무였다. 공항과 검문소에서 가장 먼저 마주한 군인들은 청소년처럼 앳된 얼굴이거나, 조금 노련해 보인다고 해도 여전히 청년층이었다. 유대인 남녀 모두에게 부여되는 의무복무(남 36개월, 여 24개월)를 통해 그들은 끊임없는 질문을 능숙하게 처리하는 능력과 단단한 훈련을 갖추고 있었다. 이스라엘의 군인정신이 어디에서 비롯되는지 알 수는 없었지만, 이스라엘 사회에 흐르는 ‘창업가 정신’과 맞닿아 있는 ‘후츠파(chutzpah)’ 정신이 떠올랐다.
(*후츠파 정신: 히브리어에서 온 개념으로, 두려움 없이 대담하게 도전하고 기존의 틀을 깨며 때로는 뻔뻔할 정도로 용기 있게 행동하는 태도를 의미한다.)
잠시 라말라 시내를 둘러볼 기회가 있었다. 그중 생일을 맞은 정부통신부 직원의 초대로 평범한 가족의 일상을 가까이에서 만났다. 내일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에서도 사람들은 여전히 밥을 짓고 있었다. 가스불 위에 냄비를 올리고, 야채를 다듬고, 식탁을 정리하는 일상이 반복되고 있었다. 그 모습이 유난히 마음에 남았다. 먹는다는 것은 가장 기본적인 생존 행위지만, 그곳에서의 식사는 단순히 배를 채우는 일이 아니었다. 그들은 밥을 지으며 ‘오늘이 아직 끝나지 않았음’을 확인하고 있었다. 손님을 맞느라 분주한 가족들, 아이들에게 먼저 먹으라며 숟가락을 내려놓던 어른의 따뜻함, 넉넉하지 않은 식탁이었지만 최선을 다해 손님을 대접하는 질서 있는 모습. 그 질서는 돈이나 제도가 아니라 ‘관계’에서 만들어진다는 사실을 깨닫게 했다.
팔레스타인은 여러 면에서 결핍이 있었다. 결핍은 많은 것을 빼앗는다. 선택의 폭을 줄이고, 미래 계획을 어렵게 만들고, 때로는 말할 힘마저 앗아간다. 그럼에도 그들이 끝까지 놓지 않는 것이 있었다. 바로 ‘하루의 리듬’이었다. 밥을 짓는 시간, 함께 앉는 순서, 식사가 끝난 뒤의 짧은 대화. 이 사소한 반복이 그들에게는 삶의 중심을 지키는 일이었다. 행정 중심지인 라말라가 이럴진대, 정치적 분쟁지역인 가자지구는 말할 것도 없었다.
출장 중 어느 금요일, 종교적으로 가장 중요한 정오 무렵 검문소 주변에서 사제폭탄을 들고 시위하던 시민을 만나 일행의 발이 잠시 묶인 적도 있었다. 그곳에서는 작은 일상조차 쉽게 막히는 상황이었고, 그 사소한 반복 속에서 죽음을 떠올렸던 기억이 오래도록 남아 있다.
그때 나는 '어떤 삶이 끝까지 지켜지고 싶은가'를 보았다.
우리는 종종 ‘잘 죽고 싶다’고 말한다. 그러나 정작 ‘잘 살고 싶은 모습’은 구체적으로 상상하지 않는다. 일상 속에서 만난 사람들의 삶은 거창하지 않았다. 조용했고, 반복적이었고, 눈에 띄지 않았다. 그러나 그 반복이 삶을 삶답게 붙잡고 있었다.
마지막까지 남고 싶은 기억은 아마도 이런 장면일 것이다. 특별한 날의 성취가 아니라, 평범한 날의 식탁. 함께 먹었던 밥의 온기. 평온함은 삶의 끝에서 갑자기 만들어지지 않는다. 평온은 매일의 식사처럼 이미 쌓여 가는 것이고, 그 평온함을 지키고자 하는 사람들의 바람은 크지 않지만, 그래서 더 눈물겹다.
그래서 그들은 오늘도 밥을 지어먹을 것이다. 작은 나눔도 주저하지 않을 것이고, 누군가를 불러 함께 나누며 일상을 이어갈 것이다.
내일이 불확실해도, 오늘의 삶만큼은 자신들의 손으로 지켜내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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