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 애도할 시간도 허락 안 되는
이 글은 국제개발협력 프로젝트 수행자로 한동안 팔레스타인을 드나들면서 경험한 일들을, 오랜 세월이 지나 '웰다잉을 위한 웰빙의 삶'을 전하는 몫으로 삶의 방향을 다잡아 가면서 다시 정리하는 글입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역사를 이해하기에는 너무나 많은 배경과 사건이 필요했다.
업무 관계로 몇 차례 방문한 이방인이 그 모든 것을 공부하고 이해하기란 아무래도 무리였다.
이 땅의 이야기는 성경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아브라함의 후손이라 믿는 이스라엘 민족이 약속의 땅으로 여겨 온 곳이자(창세기 12장), 아랍인들 또한 오랜 세월 삶의 터전을 일구어 온 자리였다. 로마 시대의 디아스포라와 그 뒤를 이은 정착의 역사 속에서 두 민족의 기억과 상처가 층층이 쌓였고, 서로가 ‘돌아갈 권리’를 주장하는 목소리가 겹치며 오늘의 갈등은 더욱 복잡한 결을 띠게 되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그 오래된 서사는 지금도 여전히 현재형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다만, 수시로 들려오는 크고 작은 분쟁 소식 때문에 군사력, 그리고 군사력과 연관된 무기에 대한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국경을 오가며, 이스라엘이 가진 무기가 장벽과 사선을 넘나드는 사람들에게 어떤 의미를 갖는지 자연스레 떠올리게 되었다. 특히 첫날 국경을 넘어갈 때부터 눈여겨보았던, 이스라엘 군인들이 늘 소지하고 있던 그 총. 마지막 텔아비브 공항에서 UZI로 무장한 군인들에게 정밀 수색을 받기까지, 이스라엘에서 가장 강렬하게 기억에 남은 물건이었다.
오래전 짧게 사격을 경험한 적이 있어 당시 사용했던 M16A1과 비교해 보니, UZI는 구조가 놀라울 만큼 간결했고(신뢰성도 매우 높다고 했다), 휴대성도 뛰어났다. UZI를 공부할 때는 복잡한 역사를 이해하기 위한 공부보다 훨씬 단순하고 흥미로워 금세 이해가 되었다. UZI는 이스라엘 군인을 강하게 했고, 동시에 국가를 강하게 하며 돈을 벌어다 준 ‘효자’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것이 아니었다. UZI(우지) 소총은 이스라엘 육군 장교 우지엘 갈(Uziel Gal)이 1940년대 후반에 개발했고, 약 10년 뒤 프로토타입이 완성되었다. 1954년 이스라엘 국방군에 최초 배치된 이후 일반 보병에게까지 확대되었고, 이후 세계 90여 개국 이상으로 수출되었다고 하니, 효자는 효자였다. 이 글에서 총사진을 직접 올리기는 어려워 참고 자료 링크만 남긴다.
지난 글에서 이어지는 이야기지만, 장벽의 역사를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그 애잔한 현실 위에 ‘창업’과 ‘취업’을 제대로 알리고 어떤 변화든 만들어내야 할 엄청난 프로젝트를 심어야 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스스로에게 묻고 묻고 묻게 되었다.
기업가정신은 기회를 발견하고, 혁신을 시도하며, 위험을 감수해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태도와 행동이다.
이렇게 설명하며 업무 성과를 내야 하는 이 일을, 과연 어떻게 펼쳐야 하는지.
삼엄한 경계, 숨 막히는 장벽, 의연하고 씩씩한 앳된 이스라엘 군인들, 그리고 간결하고 멋진 UZI 소총을 마주한 순간, 오랜 시간 프로젝트 수행을 위해 차곡차곡 준비해 온 것들이 하나둘 흔들리기 시작한 것은 도착 직후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무거운 하늘, 잿빛 도시, 온기 없는 사람들의 눈빛, 도착한 날 밤 호텔방의 시정 장치 고장, 예측할 수 없는 하루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까지… 어디서부터 무엇을 다시 정리하고 시작해야 할지 막막했다. 그러나 그것 또한 환경을 핑계 삼아 누린 잠시의 호사였다. 여기까지 오기 위해 얼마나 많은 날을 애쓰고 노력했는가. 정보를 수집하고, 제안서를 작성하고, 발표를 준비하고, 사업 수행을 위한 준비를 하고, 전문가들과 교류하고 소통했던 시간들….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를 기다리던 사람들의 모습.
시작과 동시에 너무 빠른 속도로 서로를 이해하고 돕기 위해 애쓰는 그들의 모습은 차라리 가여울 정도였다. 팔레스타인에서는 슬픔을 설명하는 말이 많지 않았다. 누군가 울고 있지도 않았고, 비극을 크게 이야기하지도 않았다. 정신없이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마음은 분주했고, 잠시라도 서로를 응원하며 웃고 나누었지만, 한켠의 무거움은 온전히 떨쳐내기 어려웠다.
그 무게는 어떤 사건에서 오는 슬픔이 아니었다. 몇 번의 사고나 상실로 생기는 감정이 아니라, 보이지 않게 쌓이고 축적된 상태에 가까웠다. 사람들은 슬픔을 말하지 않았다. 말하지 않는다고 해서 슬프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다만, 그들은 슬퍼할 시간이 없었을 뿐이었다. 일상 속에서 검문소를 지나야 하고, 하루의 동선을 계산해야 하고, 오늘 할 수 있는 일을 오늘 해내야 했으니 슬픔은 잠시 미뤄야 하는 감정이 되었다. 그렇게 미뤄진 감정은 사라지지 않고 생활의 일부가 되었을 것이다.
슬픔을 말하고 애도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하고 중요한 권리인지 깨닫게 되었다.
우리는 누군가를 잃었을 때 멈출 수 있었고, 그 슬픔 속에서 쉬기도 했고, 울기도 했고, 슬픔을 말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어떤 삶에서는 그 멈춤조차 허락되지 않고, 슬픔 위에 또 하루를 얹어야만 하는 삶이 있음을 이해하게 되었다. 때로는 그렇게 쌓인 날들이 사람의 마음을 단단하게 만들지만 동시에 무디게도 만든다. 그 무뎌짐은 냉정함이 아니라 생존의 결과였다. 우리는 종종 강하다고 말하며 그런 곳에서 견뎌낸 사람을 존경한다고도 한다. 그러나 그 견딤이 선택이 아니라 필연일 때, 그 강함은 전혀 다른 의미를 갖는다.
슬픔을 표현할 수 있는 사회와 슬픔을 삼켜야만 하는 사회는 전혀 다른 삶의 질을 만든다.
우리의 존엄은 어디서 비롯되는가. 존엄한 삶이란 항상 웃는 삶이 아니라, 슬퍼할 때 슬퍼할 수 있는 삶이다.
애도할 시간이 삶에서 제거되지 않아야 하고, 애도할 수 있는 삶이 존중되어야 한다.
잘 살아가면서 잘 죽는다는 것은 슬픔 없이 떠나는 것이 아니라,
슬픔을 충분히 살아본 후 떠나는 것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지금 슬퍼할 수 있는 삶을 살고 있는가.
아니면 슬픔을 미루는 데 익숙해진 삶을 살고 있는가.
외면할 수 없는 슬픔이 일상이 되는 순간, 삶은 조용히 존엄을 잃기 시작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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