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죽음은 나뉘지 않는다

07. 엔딩코디네이터가 되다 : 삶을 다시 짜는 웰다잉의 지형도

by 기린

도서관과 헌책방을 오가며 홀로 활자와 씨름하던 죽음 공부는


점차 더 넓은 세상에 대한 갈증으로 이어졌습니다. 책에서 잠시 눈을 돌려, 나와 비슷한 고민을 안고 있는 사람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직접 듣고 싶어졌습니다. 그러던 중 운명처럼 '엔딩코디네이터' 양성 과정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2022년 늦은 봄부터 초가을까지, 매회 8시간씩 총 15주에 걸쳐 진행된 이 교육은 결코 가벼운 여정이 아니었습니다. 현장 견학과 깐깐한 시험까지 통과해야 하는 고단한 과정이었지만, 그 시간은 제 머릿속에 산발적으로 흩어져 있던 죽음에 대한 파편들을 하나의 선명한 '지형도'로 완성해 준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 치열한 배움의 과정을 통해 제가 얻은 가장 큰 깨달음은, 웰다잉(Well-dying)이 결코 임종의 순간에 국한된 기술이 아니라는 사실이었습니다. 많은 이들이 '잘 죽는 것'을 숨을 거두는 마지막 찰나의 평안함 정도로 오해하지만, 진정한 웰다잉은 내가 떠난 자리에 남겨질 '흔적'들을 책임감 있게 다루는 태도에 있었습니다. 즉, 웰다잉은 단순히 어떻게 떠날 것인가를 고민하는 것을 넘어, 남은 생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를 묻고 삶의 결을 다시 촘촘하게 짜 내려가는 적극적인 과정이었던 것입니다. 죽음을 깊이 생각하는 일이 역설적으로 더 건강하고 온전한 삶의 선택으로 이어진다는 진리를 저는 이 과정을 통해 온몸으로 실감했습니다.

교육을 통해 비로소 웰다잉 준비의 구체적인 세 가지 층위가 명확히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첫 번째는 '실질적 준비'입니다. 나의 재산과 문서를 정돈하고, 장례 방식과 사전연명의료의향서 같은 의료적 결정을 미리 명확히 해두는 일입니다. 이는 사후에 일어날 수 있는 혼란을 막고, 남겨진 가족들이 겪어야 할 무거운 결정의 짐을 덜어주는 가장 다정하고 현실적인 배려입니다. 두 번째는 '심리적·정서적 준비'입니다. 삶의 여정에서 맺힌 오해의 매듭을 풀고, 용서와 화해, 감사의 마음을 전하며 내면의 미해결 과제를 털어내는 시간입니다. 이는 단순히 감정을 정리하는 것을 넘어, 내 삶의 의미를 온전히 재구성하고 나다운 결을 되찾는 영적인 치유의 과정이기도 합니다. 마지막 세 번째는 '남겨진 사람들을 위한 여정'입니다. 상실의 거대한 충격을 껴안고 애도의 강을 건너 새로운 삶의 균형을 찾아가야 할 가족들을 위해, 떠나는 자가 미리 마음의 이정표를 세워두는 일입니다.


이토록 깊고 넓은 웰다잉의 지형도를 마주하자, 그동안의 배움을 저 혼자만의 깨달음으로 남겨둘 수 없다는 확신이 더욱 단단해졌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이 모든 경험과 철학은 하나의 뚜렷한 실천 방향으로 모였습니다. 저는 한국사회적기업진흥원의 사회적 기업가 육성팀에 '아름다운 하늘 소풍 이야기'라는 주제로 선발되면서, '한국형 웰다잉 플랫폼'을 구축하는 첫 삽을 뜨게 되었습니다. 막연했던 생각들은 '아하소풍'이라는 이름의 실물 엔딩노트로 세상에 나왔고, 저는 단 두 사람만 모인 자리라도 웰다잉의 지혜가 필요한 곳이라면 어디든 기꺼이 달려갈 준비가 된 온전한 '엔딩코디네이터'로 거듭났습니다.


돌이켜보면 오래전 낯선 타국의 병상에서 시작된 막연한 두려움이 기나긴 세월을 거쳐 지금의 저를 새로운 인생 2모작의 문턱으로 이끌었습니다. 죽음 공부는 결코 마지막을 대비하는 우울한 작업이 아니라, 나의 일상과 가치관을 가장 나답게 재정비하는 눈부신 동력이었습니다. 저에게 '하늘 소풍'은 이제 단순한 비유나 은유가 아닙니다. 삶과 죽음을 따뜻하게 이어주는 철학이자, 오늘 하루를 더 눈부시게 살아가도록 이끄는 가장 실천적인 언어입니다.

이제 이 단단해진 언어들을 품고, 기쁜 마음으로 여러분의 하늘 소풍을 돕는 친절한 안내자로서의 여정을 본격적으로 시작하려 합니다.



#웰다잉 #웰빙 #웰에이징 #아름다운하늘소풍 #아하소풍 #ahasopoong #죽음준비 #괜찮은죽음 #인간의존엄 #웰다잉을위한웰빙의삶


이전 06화삶과 죽음은 나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