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 죽음 공부에 빠지다 : 책과 도서관과 중고서적 책방의 날들
흔히 주변에서 ‘죽을 고비를 넘겼다’며
앞으로는 삶의 태도를 완전히 바꾸겠다고 다짐하는 사람들을 종종 만나게 됩니다. 하지만 그들은 하나같이 시간이 지나며 그 순간의 공포와 다짐은 점차 흐려졌고, 바쁜 생활에 쫓기다 보니 어느새 예전의 일상으로 돌아와 있다고 고백하곤 합니다. 어쩌면 죽음이라는 무거운 주제를 곁에 두고 오래 붙들고 살 수는 없기에, 어느 정도 잊고 살아가는 것이 인간의 자연스러운 본능일지도 모릅니다. 저 역시 남들과 다르지 않은 평범한 일상의 분주함을 만끽하며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2021년 봄, 스리랑카 봉사 동기의 하늘 소풍을 배웅하고 돌아오던 날은 저에게 전혀 다른 변곡점이 되었습니다. 단순히 나의 죽음을 준비해야겠다는 개인적인 차원을 넘어, 살아 있는 이 시간을 더 책임 있게 살아내며 ‘웰다잉을 위한 웰빙의 삶’을 타인과 함께 나누고 돕고 싶다는 확고한 목표가 생겼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결심과 달리 현실의 벽은 높고 막막했습니다. 저에게는 웰다잉의 철학을 타인에게 전할 만큼 체계적으로 정리된 지식도 없었고, 의료적이나 법의학적인 전문성도 턱없이 부족했습니다. 앞이 보이지 않는 채로 남에게 길을 안내하는 사람이 될 수는 없었고, 무엇보다 누군가에게 잘못된 방향을 가리키는 맹인이 되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어쩌다, 타인을 돕기 위한 첫걸음으로 ‘준비를 위한 준비’,
즉 본격적인 ‘죽음 공부’를 시작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먼저 집 근처 도서관을 찾았으나 하필 공사 중이었고, 이웃의 권유로 조금 떨어진 다른 도서관으로 발걸음을 옮겨 닥치는 대로 죽음의 이해를 돕는 서적들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처음 접하는 죽음의 철학과 법적, 행정적 개념들은 무척 낯설고 어려워, 어떤 책은 두 번 세 번을 거듭해 되돌려 읽어야만 겨우 맥락이 이해되곤 했습니다. 책을 읽는 속도는 점점 느려졌지만, 마음이 급해진 저는 책의 내용 자체를 넘어 ‘도대체 누가, 왜 이런 책을 썼는가’ 하는 저자의 깊은 의도까지 궁금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어느새 저는 마치 사냥꾼이라도 된 것처럼 도서관의 서가를 누비며 목차를 훑고, 이 책 저 책을 넘나들며 ‘죽음의 의미’를 찾아 헤매고 있었습니다. 도서관 책상 위에는 늘 책이 산더미처럼 쌓여 갔고, 주어진 시간 내에 다 읽지 못한 책들을 한가득 대출해 집으로 낑낑대며 들고 오는 날들이 이어졌습니다. 그럼에도 배움에 대한 깊은 갈증이 해소되지 않아, 결국 당시 집 근처 중고서적까지 찾아가 죽음과 관련된 중고 서적들을 닥치는 대로 사 모으기 시작했습니다. 무거운 중고 서적을 양손에 들고 땀 흘리며 집으로 돌아온 날, 이미 온라인으로 주문해 두었던 똑같은 책이 문 앞에 덩그러니 도착해 있어 헛웃음을 지었던 웃지 못할 해프닝도 여러 번 있었습니다.
그렇게 죽음이라는 화두에 깊이 빠져들어 치열하게 공부하던 어느 날, 책상 한편에서 아주 오래전인 1997년에 작성해 두었던 자필 유언장과 1999년의 시신기증 서약서를 조용히 다시 꺼내 보았습니다. 낡은 서류 종이 위에 고스란히 내려앉은 시간의 두께가 새삼스럽게 다가왔습니다. 과거에는 그저 막연한 두려움 속에서 도망치듯 작성했던 그 종이들이, 사실은 단순한 법적 장치가 아니라 지금의 단단한 나를 만들어온 내 삶의 소중한 한 켜였다는 사실을 깊이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수많은 책을 읽고 고민하며 제가 내린 결론은 하나입니다. 죽음은 결코 책상물림 공부만으로 완벽하게 이해되거나 정답을 찾을 수 있는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잘 죽기 위한 삶’, 즉 지금 당장 내게 주어진 ‘웰빙’을 온전히 영위하는 것을 삶의 목적으로 삼는다면, 죽음 공부는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 반드시 해야만 하는 가장 가치 있는 필수 과목임이 틀림없습니다. 도서관과 헌책방을 숨 가쁘게 오가며 활자와 씨름했던
이 치열한 날들은, 훗날 저만의 웰다잉을 넘어 타인의 하늘 소풍을 기꺼이 돕는 전문적인 안내자로 나아가기 위한 가장 튼튼한 징검다리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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