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죽음은 나뉘지 않는다

05. 혼돈의 흔적은 삶의 가장 소중한 기록 : 흔렬려도 괜찮다

by 기린

유서를 쓰고, 시신과 장기 기증을 약속하는 등


나름의 준비를 마치고, 얼마 전 동기의 소풍 길을 배웅하며 남겨온 흔적들을 차분히 정리하던 중 어쩌다 초점이 흐려진 사진 한 장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피사체는 명확하지 않고 흔들리는 빛의 궤적만이 담겨 있는, 흔히 말하는 '잘못 찍힌' 사진이었습니다. 하지만 한참 동안 그 사진을 들여다보면서, 저는 이 흔들리는 빛의 흔적이야말로 우리가 지나온 삶을 가장 솔직하게 대변해 주는 기록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흔히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완벽하게 정돈되고 계획대로 흘러가는 삶만을 '잘 산 삶'이라고 부르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실제 우리의 삶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대부분은 명확히 정리되지 않은 채 흘러갑니다. 굳게 세웠던 계획은 수시로 어긋나고, 영원할 것 같았던 관계는 복잡하게 엉키며, 확신에 차 있던 마음은 자주 길을 잃고 헤맵니다. 우리는 이러한 삶의 불완전함을 마주할 때마다 실패했다고 자책하곤 합니다. 하지만 사진 속 흔들리는 빛이 카메라가 치열하게 빛을 담아내려 했던 찰나의 흔적이듯, 우리 삶의 혼돈 역시 실패의 흉터가 아니라 우리가 온전히 살아 있었던 시간의 명백한 증거입니다.


죽음을 앞둔 사람들이 마지막 순간에 간절히 빌게 되는 '삶의 소원'을 가만히 살펴보면 한 가지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들의 소원은 결코 더 많은 부를 축적하거나 지위에 오르겠다는 '미래'를 향해 있지 않고, 언제나 자신이 지나온 '과거'의 시간을 향해 되돌아갑니다. 그것은 종종 미처 풀지 못한 오해를 마음속에서라도 내려놓고 끝내 미워했던 사람을 기꺼이 놓아주는 '용서'의 형태로 나타납니다. 어떤 이에게는 사랑했던 순간들과 나를 스쳐 지나간 모든 인연에 조용히 고개를 숙이는 '감사'로 발현되며, 또 어떤 이에게는 두려움 없이 평온하게 삶을 마무리하고 싶다는 '평화'의 소원으로 나타납니다.

이러한 마지막 '삶의 소원'은 우리가 평생을 바쳐 좇았던 수많은 '목적의 소원'들을 다시금 낯설게 바라보게 만듭니다. 그토록 애써 이루려 했던 세상의 성공과 성취, 기를 쓰고 붙들고자 했던 소유와 지위가 이 마지막 소원 앞에서 과연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는지 묵직한 질문을 던지게 되는 것입니다.


흔히들 삶의 정리는 죽음이 임박한 마지막 순간에 갑자기 이루어질 것이라 착각합니다. 하지만 진정한 정리는 결코 그때 시작되지 않으며, 언제나 '지금' 우리가 발 딛고 서 있는 이 혼돈의 한가운데에서 시작됩니다. 만약

지금 당신의 삶이 초점 잃은 사진처럼 흐릿하게 느껴진다면, 혹은 삶의 방향을 잃은 듯 보인다면, 그것은 결코 잘못 살고 있다는 적신호가 아닙니다. 오히려 삶이 한층 더 깊어지고 있다는 징후일 수 있습니다.


혼돈은 길을 잃은 상태가 아니라, 마침내 스스로에게 진실한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다는 증거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삶이 흔들려도 괜찮습니다. 그 흔들리는 시간 속에서도 우리는 이미 웰빙의 삶을 훌륭히 살아가고 있습니다. 길을 잃은 듯 막막한 터널 속에서 애쓰며 견뎌낸 그 하루하루가, 언젠가 우리 삶을 가장 평화롭게 마무리하게 해 줄 웰다잉의 가장 중요한 밑그림이 될 것입니다.


삶과 죽음은 결코 무 자르듯 나뉘지 않습니다. 우리는 이처럼 혼돈 속에서 흔들리고 부딪히며 살아가는 매 순간, 이미 가장 나다운 마무리를 조금씩 배우고 완성해 가고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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