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죽음은 나뉘지 않는다

04. 더 이상 외면할 수 없다

by 기린

‘웰다잉(Well-dying)’이라는 단어를 마음속에 품고 살아온


시간이 어느덧 십 년을 훌쩍 넘겼습니다. 그 시간 동안 저는 자연스럽게 강의실에서, 상담 현장에서, 혹은 지인들과의 일상적인 대화 속에서 ‘죽음’을 자주 이야기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렇게 죽음이라는 화두를 꺼낼 때면 사람들은 종종 의아한 표정으로 제게 묻곤 합니다.


“왜 그렇게 죽음을 자주 이야기하나요?”

그 질문 앞에서 저는 늘 단번에 대답하지 못하고 잠시 숨을 고릅니다. 타인에게 설명하기 이전에, 저 스스로에게 먼저 되묻게 되기 때문입니다. ‘내가 정말 하고 싶은 이야기가 죽음이 맞을까?’ 하고 말입니다. 하지만 오랜 시간 사유하며 제 안에 분명해진 진실이 하나 있습니다. 제가 말하고자 하는 웰다잉은 결코 ‘죽음’ 그 자체에 대한 우울한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오히려 ‘우리는 지금 삶을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가’를 묻는 가장 치열하고 정직한 질문입니다. 우리가 무엇을 중요하게 여겨왔는지, 어떤 관계를 맺고 살아왔는지, 그 모든 일상의 선택과 태도가 결국 삶의 마지막 얼굴을 빚어내기 때문입니다.


제가 이 무거운 질문과 처음 마주했던 것은 청년 시절이던 1992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당시 저는 스리랑카에서 해외봉사단원으로 활동하던 중 이름 모를 병에 걸려 낯선 타국의 병상에 꼼짝 없이 누워 있어야만 했습니다. 내 마음대로 몸을 움직일 수 없다는 뼈아픈 무력감 속에서, 태어나 처음으로 생의 끝자락이 그리 멀지 않을 수 있다는 현실적인 두려움이 찾아왔습니다. 그때 제 머릿속을 스친 단 하나의 질문은 이것이었습니다. “만약 지금 내 삶이 여기서 멈춘다면, 나는 어떤 준비가 되어 있을까.”

다행히 고비를 넘기고 일상으로 돌아왔지만, 그 질문은 제 마음 깊은 곳에 단단히 닻을 내렸습니다. 이후 1990년대 후반, 저는 또 한 번 원인 모를 고열과 수족 마비로 응급실을 오가며 결국 불명열 진단을 받기까지 기약 없는 투병 생활을 해야 했습니다. 당시만 해도 ‘죽음’을 입에 올리는 일은 대단히 불길한 것으로 여겨졌고, 굳이 유언을 남기거나 기증을 약속하는 것은 아주 특별한 소수의 선택으로만 치부되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그 질문을 도저히 외면할 수 없었습니다.


삶이 언제 멈출지 모른다는 짙은 불확실성 속에서, 저는 아무에게도 크게 알리지 않은 채 조심스럽게 저만의 준비를 시작했습니다. 대학병원 해부학실을 찾아가 가족을 설득해 시신기증 서류를 작성했고, 자필로 유언장을 남겼으며, 장기기증을 서약했습니다. 돌아보면 그것은 대단한 용기나 비장한 결단이 아니었습니다. 혹시라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작별 인사조차 남기지 못한 채 훌쩍 떠나게 될까 봐, 정리되지 않은 마음을 남긴 채 사라질까 봐 두려웠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한 인간으로서 나의 마무리에 대한 최소한의 책임을 다하려는 몸부림이자, 불안한 삶을 계속 살아내기 위해 반드시 필요했던 ‘작은 숨 고르기’였습니다.


그렇게 서류를 작성해 둔 채로 또 한동안 일상의 분주함에 파묻혀 살았습니다. 그러다 2021년 4월, 스리랑카 봉사 시절의 동기였던 인영이의 갑작스러운 하늘 소풍 길을 배웅하게 되었습니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저는 30년 전 스리랑카 병상에서 품었던 그 서늘한 질문을 다시 꺼내 들 수밖에 없었습니다. “지금, 이제 나는 어떤 준비가 되어 있을까.”


더 이상 머뭇거릴 수 없다는 묵직한 자각과 함께 저는 본격적인 ‘죽음 공부’에 뛰어들었습니다. 그리고 깨달았습니다. 어떻게 살아가는가, 어떻게 늙어가는가, 어떻게 마무리되는가는 결코 분리된 세 개의 질문이 아니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삶의 태도가 곧 죽음의 모양을 만듭니다. 웰다잉은 죽음을 대비하는 일이 아니라, 미뤄두었던 질문을 오늘 다시 꺼내어 나의 삶을 정직하게 바라보는 일입니다. 저는 이제 거창한 정답을 말하기보다, 여러분과 함께 묻고 싶습니다. 지금 우리의 삶은 어떤 마무리를 향해 걸어가고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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