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자에게 묻는다

16. 스리랑카에 중소기업 관리는 무슨?

by 기린

이 글은 한국국제협력단 파견 해외봉사단원으로 활동했던 33년 전, 죽음을 이겨내고 살아온 세월을 돌아보며 활동 당시의 임지방문 등 15일 간 스리랑카 여정을 담는 글이다.


1990년대 ‘중소기업관리’라는 이름의 퍼즐

1990년대 초, ‘중소기업관리’라는 말은 지금처럼 명확한 전문 분야로 자리 잡기 전이었다. 당시의 나에게도 그 의미는 흐릿했다. 그저 한국국제협력단(KOICA)에서 그 분야의 인재를 모집한다는 공고가 있었고, 나는 사전 지식 ‘제로’ 상태로 지원서를 냈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 선택은 내 인생의 방향을 크게 틀어놓은 조용한 분기점이었다. 아마도 1988년 상공부 장관 명의로 처음 시행된 국가자격 ‘경영지도사’ 취득이 결정적이었을 것이다. 첫해 합격자였던 나는 행정 절차가 미비해 기수조차 늦게 부여받았고, 지금도 ‘1988년 인적자원관리’라는 표기가 따라다닌다. 당시 지원자 중 그 자격증을 가진 사람은 나 하나였으니, 선발 과정에서 영향이 없었을 리 없다. 그 경험은 훗날 창업학으로 이어지는 긴 공부의 에너지원이 되었다.


짧은 공직 생활을 마치고 호주에서 3년 간의 공부한 경험도 당연히 도움이 되었다. 해외 경험이 흔치 않던 시절, 영어로 소통이 가능하다는 사실만으로도 경쟁력이 있었다. 스리랑카라는 나라에 대해 아는 것이라곤 ‘Ceylon’이라는 옛 이름, 차(Tea), 그리고 ‘인도양의 눈물’ 정도였다. 최종 면접에서 “추운 나라만 아니면 어디든 좋다”라고 말했던 기억이 어렴풋하다. 그 말이 스리랑카로 이어졌는지 알 수 없지만, 결과적으로 내 파견 지는 그곳이었다. 당시엔 지금처럼 정보가 넘쳐나는 시대가 아니었다. 스리랑카에 대해 어떻게 공부했는지조차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인도 남부 해안의 섬나라, ‘인도양의 진주’라는 별명 정도가 머릿속에 남아 있었다. 봉사단 활동을 마친 뒤 무역중개업을 시작하면서 인도는 주요 거래국이 되었고, 그 인연은 오래 이어졌다.


1997년 창업 이후 나는 인도, 중국, 홍콩을 오가며 원단·원사·자동차 등 한국산 제품을 수출하는 작은 무역상으로 성장했다. 터키와 동유럽, 동·서남아시아로 거래처가 확장되면서 회사도 안정적으로 자리 잡았다.


그러던 어느 해, 스리랑카에 봉제 공장이 많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곳에도 원단을 중개해 보라는 조언을 받았다. 오랜만에 찾는 콜롬보 출장. 공장 리스트를 준비하고, 시장에 맞는 샘플을 정리해 들고 갔다. 미팅을 이어가던 중, 봉사단 시절부터 알고 지내던 현지 교회 목사님에게서 급히 연락이 왔다. 스리랑카에서 이미 원단 무역을 하고 있는 선배 중개상이 나를 만나고 싶어 한다는 것이었다.


그를 만나 샘플 보따리를 풀자, 그의 태도는 순식간에 달라졌다. 처음엔 반가운 듯하더니, 이내 표정이 굳고 목소리의 온도도 낮아졌다. 어떻게 이곳까지 오게 되었는지, 누구의 소개인지, 어떤 거래처를 만났는지—꼬치꼬치 캐묻는 질문이 이어졌다. 마치 시장을 지키는 문지기라도 된 듯한 태도였다.

그리고 곧, 스리랑카 시장은 까다롭고, 봉제 공장은 규모도 작고, 구매 권한도 없고, 경제력도 부족하다는 말이 흘러나왔다. 겉으로는 조언처럼 들렸지만, 그 말의 결은 분명했다. 여긴 내 구역이니 들어오지 말라는 경고였다. 말끝마다 은근한 압박이 묻어 있었고, 그 기류를 모를 만큼 내가 순진한 것도 아니었다.

미팅을 마치고 나오자마자, 속이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그동안 쌓아온 원단 무역상으로서의 자부심이 한순간에 무너져 내리는 듯했다. ‘내가 뭘 잘못했나?’라는 생각보다 ‘왜 그래야 하지?’라는 분노가 먼저 치밀었다. 스리랑카는 내게 봉사단 시절의 추억이 깃든 곳이었는데, 그곳에서 이런 씁쓸한 경험을 하게 되리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그날 밤, 호텔 방에 홀로 앉아 있자니 억울함과 분함이 뒤섞여 도무지 잠이 오지 않았다. 머릿속에서는 낮에 들었던 말들이 계속 되감기듯 반복됐다. 그동안 쌓아온 경험과 자부심이 한순간에 무너져 내린 듯했고, 스스로도 예상치 못한 깊은 상처가 남았다. 결국 마음속 깊은 곳에서 오기가 불쑥 치밀어 올랐다. 다시는 스리랑카에 오지 않겠다. 그때의 나는 그렇게 다짐하며 상처받은 자존심을 겨우 붙들고 있었다. 마치 마지막 남은 방어막을 스스로 세우는 심정으로. 그러나, 인생이란 참 묘하다.

그렇게 등을 돌리겠다 다짐했던 나라가, 시간이 흐를수록 오히려 더 강렬한 애정을 품게 만든 곳이 되었으니. 그날의 분노와 상처는 결국 ‘랑카사랑’을 더 뜨겁게 불태우는 연료가 되고 말았다.


그랬음에도, 이후 랑카산 홍차를 수입하거나, 코코피트 중개무역을 놓지않고 이어가면서 마음을 고쳐 잡았다. 스리랑카 SME 정책 프레임워크에 대한 학습할 기회가 그때는 없었다. 스리랑카는 국가 중소기업 정책 프레임워크(National Policy Framework for SME Development)를 통해 여러 분야를 중점 추진함을 알게 되었다.

- 금융 접근성 개선, 기술·R&D 역량 강화, 시장 접근성 확대, 지역 균형 발전, 기업가정신 및 역량 개발

그때도 알았더라면.......,




#웰다잉 #웰빙 #웰에이징 #아름다운하늘소풍 #아하소풍 #ahasopoong #죽음준비 #괜찮은죽음 #인간의 존엄 #웰다잉을위한 웰빙의삶 #KOICA #kov #WFK #srilanka #hwdf #kova


월요일 연재
이전 15화산자에게 묻는다